08 게으름뱅이의 담배 끊는 법
2018년 7월 여름의 열기가 짙어져 가던 어느 날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외진 그늘을 찾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등줄기에 진한 땀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누군가의 강요도 아니었고, 특별히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그 계기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는 것이다.(간접흡연으로 고통받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은 별도로 하고...)
나는 그다지 부지런하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게으른 편에 더 가깝다. 스포츠보다 독서를 더 좋아했고 술보다 음악을 더 좋아한다. 클럽보다 드라마가 더 좋고 맛집보다 오후의 늘어지는 낮잠을 더 사랑한다. 굳이 움직이기보다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20년 가까이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 있다. 담배를 피우는 것. 하루 한 갑에서 한 갑 반을 매일, 정말 꾸준하게 태우며 그 연기를 마시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자랑스러울 것 까지는 없겠지만, 나는 스스로 게으른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에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일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성과가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게으름뱅이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게으르기 때문에. 그 방법의 참신함과 효율성을 들여다보면 부지런한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 나 자신이 게으른 한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특성을 사랑하고 적극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20년 넘도록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폭염으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이건 혹한으로 눈썹에 서리가 내려앉는 날이건 따듯하고 안락한 실내를 떠나 꾸역꾸역 거칠고 열악한 환경 속으로 기어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담배가 떨어졌을 때는 홍수나 지진이 난 상황이 아니라면 밤 12시가 넘어서도 거침없이 외투를 걸쳐 입고 몇 백 미터나 떨어진 편의점까지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부지런함과 열정은 다른 곳에 쏟아야 옳은 것이 아닐까? 나는 왜 이 찜통 같은 여름 햇살과 에어컨 실외기의 짙은 열기를 맞으며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게으름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하지 않는 ‘멈춤의 상태’를 선호하는 성향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하는 것보다 피우지 않는 멈춤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10월을 기준으로 금연을 유지한 지 1,200일을 넘겼다. 과거에도 몇 번 금연 시도를 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출발점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다. 바로 ‘금연’을 하겠다는 마음을 버렸다는 것. 나는 게으른 만큼이나 쉽게 뭔가에 중독되는 사람이니, 내가 니코틴과 타르가 주는 즐거움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고 이 유혹에 나는 다시 빠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 인생에 다시는 담배가 없을 거라는 좌절감을 끌어안지 않기로. 대신, 딱 100시간만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딱 100 시간만 참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생각했다. 담배를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음 담배를 미뤘다 피우는 것이라고. 딱 100시간만 뒤에. 그리고 담배를 미루는 것이 내게 줄 이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앞으로 100시간 동안 나는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는 사무실과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옷과 머리에서 나는 찌든 담배 냄새 때문에 향수를 뿌리고 수시로 이를 닦는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100시간 동안 줄인 담배 값으로 스타벅스 커피 네 잔은 거뜬히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어쨌거나 한 대라도 담배를 덜 피우면 그만큼 내 건강에 좋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상상해보라. 100시간의 기다림 후 피우는 담배의 맛은 어떨 것인지. 그렇게 100시간 담배 미루기가 시작되었다.
첫 3일간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싶은 충동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런 충동을 억눌러준 것은 100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이었다. 85시간 후에는 피울 수 있다, 80시간 후에는 피울 수 있다…. 이렇게 미루고 미뤄 100시간이 되었다.
의외로 3일간의 변화는 컸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휘몰아치던 흡연 욕구는 다소 참을 만한 것이 되어 있었고, 담배 없이 맞이하는 아침의 가벼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욕심이 더해졌다. 100시간 미뤘는데, 딱 100시간만 더 참아보자고. 200시간 동안 아낀 담뱃값으로 200시간이 될 때 치킨 한 마리와 피자 한 판을 동시에 시킬 수 있다. 200시간 금연 기념 파티를 열어보자.
시간은 점점 늘어 3년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담배 미루기는 200시간에서 한 달, 한 달에서 1년이 되었다. 2년이 넘은 어느 날부터는 내가 담배를 피웠었다는 기억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내 생활의 디폴트 값은 고작 2년 만에 흡연자에서 비흡연자로 전환되었다. 20년 가까운 습관의 관성이 고작 2년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시시하고, 또 어찌 보면 내가 가진 진성 게으름의 승리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금연 자체는 내게 많은 부작용을 남겼다. 금연 첫 3개월 간은 엄청난 피부 트러블, 우울함, 무기력증, 그리고 극도의 예민함을 안겨주었다. 3개월이 지나 6개월이 될 때까지는 급격한 체중 증가가 이어져 처음으로 고도비만 몸무게 수치를 기록했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가지 나와의 약속으로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2년 금연으로 모은 돈으로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자고. 노트북이건 카메라건 뭔가 쉽게 살 수 없는 가격의 선물 하나를 마련하자고.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부작용의 대부분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 내가 담배값을 모은 돈은 400만 원을 넘겼다. 그리고 내 앞에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하고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새 맥북에어가 있다. 이 노트북을 사고도 남은 적립금 300만 원이 있으며, 5년 금연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시계가 흐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날 때 냄새에 신경 쓰지 않으며, 쉽게 숨이 차지 않는 건강한 폐와 한결 가벼워진 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궂은 날씨와 싸워가며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다시 100시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아주 가끔, 정말 뜬금없이 어느 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때리며 “야! 담배 피우러 가자!” 하고 부르는 것처럼 저항하기 힘든 충동이 올라오곤 한다. 그래서 여전히 생각한다. 나는 언제라도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굳이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시 100시간부터 시작하면 되니까. 대신 지금까지 쌓은 적립금 400만 원을 잃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다시 냄새를 신경 쓰며 이를 닦고, 간접흡연으로 고통받는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나의 게으름이 좀 더 이기도록 두기로 마음먹는다. 이 적립금이 언젠가 라이카 카메라가 되고, 포르셰 계약금이 될 때까지.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언젠가 포르쉐를 계약하는 그날까지...!”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욕망에 충실하고 부지런해야 악당이 될 수 있죠. 그런 점에선 저도 착한 영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