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역대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네가 원래 어려서부터 뭔가에 의존하는 성향이 있었어.”
그게 중독으로 빠지기 쉬우니까 조심해야 돼. 한창 게임에 빠져들었던 학창 시절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었다.
맞다. 나는 쉽게 중독되는 편이다. 호기심 삼아서, 치기 어린 마음에 시작했던 담배가 20년을 넘겼고 한창 찬란하게 빛나는 십 대와 이십 대의 꽤 많은 시간을 나는 어두컴컴한 방에 틀어박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그리고 삼국지와 플레이스테이션에게 바쳤다.
어린 시절 들었던 어머니의 날카로운 이야기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닌 체중계 위에서였다. 몇 달 만에 아무 생각 없이 올라선 체중계는 내 인생 최고 중량을 가리키고 있었다. 앞자리가 9다. 7도 아니고 8도 아니고, 9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의 몸무게는 부침이 컸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활동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랬던 것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정점을 찍었더랬다. 집에서 쉬었던 몇 달 동안 심각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분리수거를 하러 겨우 나가곤 했다. 한 번 찐 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활동량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현상유지가 될 뿐, 몸무게가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보잘것없는 몸뚱이는 주인을 잘못 만난 덕에 부침이 참 많았다. 전생에 단식으로 깨달음을 구하던 인도 수도승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음식 대하기를 돌같이 하던 나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몸무게 63kg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키 180에 60 초반대의 몸무게. 당시의 사진을 보면 뼈 위에 바로 가죽을 바른 것 같은 못난이 인형이 웃고 있다. 외모 콤플렉스가 무척이나 심했던 시절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아들의 식사에 대해 아직도 독기 어린 이야기를 쏟아내신다.
“밥상에 앉혀놓으면 한 숟가락 뜨기가 무섭게 주의가 다른 곳으로 가. 한 숟가락 입에 물고 오물오물거리기만 하고 삼키질 않는 거야. 어떻게든 한 끼를 먹이고 나면 2, 3시간은 족히 흘러있어서, 다시 다음 끼니 준비를 해야 돼.”
너 어릴 땐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어머니의 이야기에는 여전히 꽤나 짙은 원망이 서려있다. 지금의 거대해진 몸집은 그때 안 먹던 밥을 몰아서 채워 넣느라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게 어머니의 가설이다. 결국 다 돌아오게 되어있다며, 조금은 고소해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군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었다. 나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지켜야만 하는 일상의 규칙이었다. 시간이 흘러 선임이 되어서는 먹성 좋은 군대 후임들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군대 월급과 사비를 들여 부대 BX를 털었다. 그 결과, 전역 시기의 나는 앞자리 7과 8을 오가는 꽤나 건장한 체구가 되어있었다.
이후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몸무게는 이 수준을 유지했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잦은 술자리와 회식으로 인해 약 5kg 정도가 추가되어 고정적인 80대의 몸무게가 되었지만 대단히 눈에 띄게 뚱뚱해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직을 하고 금연을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20년 넘도록 꾸준히 보충되던 니코틴과 타르, 일산화탄소의 부재는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했다. 갈피를 못 잡고 미쳐 날뛰는 몸안의 화학물질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폭식을 유발했고, 나의 몸무게는 난생처음 90kg대로 진입했다. 최종 스코어는 94kg. 초등학생 몸뚱이 하나가 대학생 시절의 내 몸에 들러붙은 수준이었다.
약 8개월에 걸친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로 한 때 77kg까지 감량에 성공했다. 그 상태로 약 1년을 버텨냈는데, 코로나와 퇴사는 나를 예전으로 돌려놓았다. 살을 빼고 기분 좋게 새로 샀던 옷들을 모두 버려야 할 판이었다. 정말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거울 속 내 모습이 역겹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나는 게으름에 중독되었다.
자기혐오를 느낄 정도의 큰 충격이 있었지만, 나는 그 후로도 꽤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몸에 새겨진 생활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운동을 해야지. 움직여야지. 매일 밤 자기 전 되뇌는 ‘내일부터는…’이라는 생각에도 다음 날 아침 무겁게 끌어당기는 중력에 이끌려 침대에, 소파에 몸뚱이를 뉘울 뿐이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패턴화 된 나의 게으름은 한 때의 편안함을 넘어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갔다. 나는 게으름에 중독되어있었던 것이다.
“너 왜 이렇게 뚱뚱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거대해졌어? 몇 달 만에 만난 부모님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씀하셨다. 갑자기 살이 찌면 건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며, 건강검진은 받아보았냐는 두 분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덜떨어진 아들이 말한다. 그냥 찐 거예요. 내가 좀 게으르거든요. 살만한 거죠, 하고.
이번에는 다를까?
다시 살을 빼기로 마음먹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언제고 병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가족과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그다지 의지가 강한 편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웅대한 목표를 향해 비상하는 영웅이나 용사는 아닌 것 같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과연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어진다고. 지난 다이어트는 좋은 핑곗거리 하나로 보기 좋게 무너져버렸으니까.
맞다. 나는 중독에 약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점을 이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중독에 약한 사람은 습관에 끌린다. 그러니, 하루의 습관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자. 작은 것에서부터 너무 부담스럽지 않도록. 그래서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그러니 일단은 쉬운 것부터 하자.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사이클을 타야지. 유산소 운동이 익숙해지면 집에 있는 아령과 푸시업 바를 이용해서 간단한 근력운동도 해야지. 운동에 중독되고 매일의 습관이 될 때까지, 하루에 딱 한 번씩만 노력을 유지해보자고 생각했다. 하루에 한 번만 마음먹고 움직이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것 같아서. 누가 그랬던가.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 때는 단순화시키라고. 나의 문제는 이제 하루에 한 번 찾아오는 승부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쌓아온 나의 망가진 몸뚱이를 하루하루의 노력으로 바꾸어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새로운 중독을 만들고 있다. 나는 중독에 약한 편이다. 기왕 중독될 거면, 좀 좋은 거에 되어보자고.
구체적인 목표 숫자는 없다. 그저 매일,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쌓을 뿐이다. 남보기 부끄러운 지경까지 내몰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2022년을 기점으로 다시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을 하니 느리긴 하지만 빠지긴 빠지네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가끔 낯선 나를 마주치면, 도망치고 싶었던 게 저 뿐만은 아니었나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