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06화

확찐자가 되었다

06. 히키코모리가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

by Kyle Lee

현관문을 지나 막 집에 들어서던 차에 핸드폰이 울린다. 까톡. 신발을 벗으며 메시지를 확인한다.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하지만 한 때 무척이나 익숙했던 이름 석자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결혼식에 와줄 수 있을까?


석사과정을 밟던 시절, 그러니까 지뢰밭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던 바로 그때 대학원에서 만났던 한 살 터울의 누나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차이는 있었지만 같은 지도교수님 밑에서 행정실과 연구실의 조교 업무를 교대로 하던 사이. 해외 학회를 나가면서 2주 3주를 한 숙소에서 지내며 볼 꼴 못 볼 꼴 보여주던 애증의 관계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걸까. 나를 많이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고, 동시에 배울 점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주 수줍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다. 혹시, 결혼식에 와줄 수 있을까, 하고. 당차기로는 타노스도 한 주먹으로 팰 기세였던 사람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아, 이 누나도 연락을 돌리면서 꽤나 상처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몇 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결혼식이라고 하며, 나 또한 그 과정을 거쳤다. 정말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과 빈정거리는 반응에 상처 입기도 하고, 정말 의외였던 사람의 진심 어린 축하와 어려운 발걸음으로 감동받기도 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것이 있다. 축하와 위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조심스러운 제안에 화답했다. 당연히 가야지요. 정말 축하드려요. 기분 좋게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입으려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결혼식엔 뭘 입고 가야 좋을까. 아니, 그러니까, 뭘 입을 수 있을까?


살이 쪘다. 그것도 끔찍할 정도로


봄 꽃 피는 결혼식 소식의 간질간질한 감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가 짝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기까지의 살랑이는 봄바람 향기가 묻어나는 이야기의 환상은 아주 현실적이고 단순한 문제 앞에 빙산을 만난 타이타닉처럼 순식간에 침몰했다. 입고 나갈 옷이 없다. 끔찍할 정도로 살이 쪘기 때문에.


코로나가 시작되고 1년이 지나던 시점에 나는 그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 계절을 특별한 활동 없이 휴식을 취했다. 몸보다 마음이 지쳐있었기에 아무것도 손에 담기지 않았다.


말이 좋아 휴식이지, 실상은 히키코모리였다. 일주일에 한 번이나 나갈까 말까 싶었다. 한 번은 집 밖에 나가 분리수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비실거리는 웃음이 났다. 그때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나섰던 것이 일주일 전 분리수거를 할 때였고, 그 사이 나는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현관문을 나서 분리수거장에 나간 것만으로도, 쓰레기를 버리는 동네 주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스스로를 고립하고 있었다.


코로나와 퇴사의 합작품은 내게 10킬로그램 이상의 체중 증량을 선물했다. 인생 최고 중량을 찍은 거울 속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 생명체 같아 보였다. 늘어진 뱃살과 투실 해진 볼살, 나이가 들어 조금씩 실금이 가기 시작한 눈가의 피부까지. 아내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저 여자, 정말 대단하다. 이런 나를 보면서 웃어줄 수 있다니. 이건 찐 사랑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잘하자. 내가 잘해야지. 응. 잘하자.


어떻게 지내?


결혼식장은 차분했다. 하객의 수가 정해져 있었기에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좌석도 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다. 참 다르구나. 코로나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신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누나 잘 지냈죠? 오늘 정말 예뻐요. 결혼 축하드려요. 누나는 결혼생활도 잘하실 거예요.


신부와 인사를 마치고 나온 나의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다. 뒤 돌아본 그곳에는 대학시절 가장 진한 추억을 함께 했던 후배가 서있었다. 이게 얼마만이야. 이런 날 아니면 이젠 정말 보지도 못하는구나.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어떻게 지내?


으레껏 하는 이 단순하고 평범한 한 문장에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지냈더라. 나는. 그러니까,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호기롭게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몇 년 동안 주말이고 새벽이고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걸 불태웠어. 분에 넘치는 성공이 손에 잡힐 듯 희망에 차오르던 때도 있었는데. 원래 하던 일을 벗어나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도 많이 했어. 연예인은 쳐다도 보지 않던 내가 연예기획사 임원이 됐다니까? 심지어 오디션 심사도 보고 앨범 프로덕션 디렉터도 하면서 아이돌 데뷔도 시켰어. 너도 어이없지? 그런데 여러 건의 소송과 채무 독촉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 그렇게 내 마지막 남은 희망이며 믿음까지 다 태운 후에, 빈 손으로 회사를 나왔어. 도전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쌓은 빚도 꽤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다 갚았어. 한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꽤 살만해. 글은 띄엄띄엄 계속 쓰고 있고 일도 하고는 있는데, 잘 모르겠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어서. 아니, 혹시 더 망가져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아.


6화_확찐자가 되었다.jpeg instagram : @maywithmayday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풍파는 많았지만.”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후, 후배와 후배의 와이프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후배는 한동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돌아온 차분한 그의 목소리. 나도. 그럭저럭. 잘 지내.


후배는 여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그룹의 한 계열사에 입사했던 그는 결혼하던 때와 같은 집에서 살고,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며, 여전히 같은 패턴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반복한다. 한결같은 삶이 조금씩 쌓아 올린 눅진한 고단함이 묵은 기름때처럼 그의 말 끄트머리에 눌어붙었다.


후배는 급한 일이 있어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가야 한다며,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거든 커피라도 한 잔 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잘 지내, 형. 건강 잘 챙기고. 조만간 꼭 보자.”


그가 말했다. 힘주어, 꼭, 보자,라고.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너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수레바퀴에 묶여 정해진 속도로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고, 나는 세상을 단단히 묶어놓은 시스템에서 튕겨 나와 느슨하게 늘어진 뱃살을 이루고 있는 지방 그 어딘가에 고여있다.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 뿐이다.


불어난 몸뚱이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아갈 방향을 잡을 조타를 놓친 탓이다. 선택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며, 결정에 대한 기준을 상실한 것이 문제다. 나의 부끄러움은 지금 상황에 대한 것이 아닌, 미래에 대한 나의 희망과 자신감의 상실 탓이다. 그래서, 차마 진심으로 잘 지낸다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또 부끄러워지는 것이리라.


풀리지 않는 숙제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다. 서둘러서 될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해결될 문제였다면 이미 해결했겠지.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갖고, 여기 앉아 내게 주어진 몫만큼의 헤맴도 감내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언젠가 답을 찾게 되면, 이 바로 뒷 장에 적어줘야지.


일단은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스스로를 늪에서 건져내기 위한 작은 승리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쌓기 위해서. 그것이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 가라앉지는 않으려고 한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살을 빼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첫날 줄넘기 10분 하고 3일 동안 기어 다녔어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어푸 어푸! 거기는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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