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집값이 미쳤다
“집값이 미쳤어. 반년 후에 재계약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좋냐.”
1년 만에 만난 친구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허탈한 표정으로, 잘 지냈냐는 그 흔하고 식상한 인사말도 생략한 채 속사포처럼 말을 터뜨린다. 2억이야, 2억. 전세가가 1년 사이에 무려 2억이 올랐다고. 이런 젠장.
집값이 미쳤다.
집값이 미쳤다. 이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와 재수생 시절을 함께했다. 집안이 넉넉하고 여유 있었던 친구였지만 사치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과제와 발표 준비를 하기 위해 필수인 노트북 하나를 사면서도 손을 벌벌 떨 만큼 친구의 부모님은 장남의 씀씀이에 엄격하셨다.
변호사가 되던 해, 친구는 오랫동안 만나오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여자 친구도 나름 메이저급 공기업을 다니는 능력자였다. 고시생 신분으로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던 친구는 일단 여자 친구가 모은 돈과 부모님에게 약간의 지원을 받고 모자란 돈은 은행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준비했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던 것과 아내의 출퇴근을 고려하여 서울에서 조금 외진 지역에 전세로 터를 잡았다. 전세가와 매매가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전세를 들어갈 이유가 있느냐는 주위의 목소리에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급할 것 없지. 일단은 작게 전세로 시작해서 열심히 빚 갚고, 그다음에 더 불려서 그때 내 집을 살래."
지금도 이렇게 빚이 많은데, 어떻게 지금 사. 성실하게 벌어서 얼른 갚고 다시 생각할래. 6년 전에 이렇게 말했던, 그 친구는 오늘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병신이 맞는 것 같아. 미쳤지. 미친 거야."
그때 그냥 몇 천만 원 만 더 빚을 내서 아파트를 샀으면 못해도 4, 5억은 벌었을 거라는 친구의 말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패배자의 푸념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선택’이라는 이름의 도박을 하고 있었다.
요즘 우리 같은 사람을 벼락 거지라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파르게 오르는 부동산 가격을 보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바닥을 향해 고꾸라져가는 나의 상황이 보인다. 이상하지. 마약은커녕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푼돈도 아껴가며 성실하려 노력했는데, 그 결과는 점점 참담해져만 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실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몇 년을 통해 깨닫기 시작했다. 성실하고 착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던 우리 뇌리 깊숙이 박힌 교육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자본주의 경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도심보단 조용한 외곽이
아파트보단 아늑한 단독주택이 좋았는데
친구가 느낀 배신감은 남의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나 또한 결혼을 하면서 호기롭게 선언했었다. 양가 부모님께 신세 지지 않겠노라고. 우리가 가진 힘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노라고. 성인으로서 진정한 독립을 이루려면 경제적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아내의 성숙한 인성에 감동하며 12평 남짓한 오피스텔 원룸에서 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번화가 한가운데의 원룸 오피스텔은 그다지 좋은 휴식처가 아니었다. 시끄러운 취객들의 소음과 사건 사고들이 일에 지쳐 보금자리로 돌아온 우리의 아늑한 휴식을 방해했다. 채 2년이 다 차기도 전에, 우리는 같은 전세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경기도의 어느 외진 지역 빌라로 들어갔다. 무려 2개 층을 단독으로 쓸 수 있는 넉넉하고 평온한 집이었다. 아직 아이가 없었던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새소리와 햇살이 풍부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주말에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펜션이나 휴양지에 나들이를 나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가질 준비를 시작하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에게 행복한 환경은 아이를 키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린이집은커녕 차가 없으면 장도 볼 수 없는 환경은 어린아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고심하고 논의한 끝에, 결국 우리는 처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한 초대형 아파트 단지에 반전세로 입주하게 된다. 상당한 액수의 대출과 집안 어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부동산은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그렇게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새로운 집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우리가 입주한 아파트 전세 시세는 1억이 넘게 올랐다. 원래대로라면 올 해에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던 아내는 무섭게 치고 오르는 부동산 시세를 보며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할까? 최대한 대출을 받고 모자란 돈은 신용대출이랑 부모님께 말씀을 좀 드려서 도움을 좀….”
경제적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던 아내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날의 아내 목소리는 무척이나 작고 가냘팠다. 10대 때부터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를 쉰 적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던 아내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미루는 것 밖에 답이 없었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과 논의 끝에 3년을 더 기다려본 후 집 구입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를 갖는 것은 1년 후로 미뤄졌다. 그 외에는 오르고 있는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에도 한계가 있는 데다가, 대출을 받을 방법도 거의 막힌 상황이다. 길바닥에 나앉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으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힘들게 우리를 성인으로 키워주신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독립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던 우리의 결정은 어리석고 나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친구와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3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3년이 지난 후, 우리의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아끼고 노력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더라도, 과연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할 수 있을까? 7년 전 우리가 결혼을 하며 선택했던 단 한 번의 결정이 우리의 삶에서 너무 많은 가능성을 박탈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1년 후에 아내를 닮아 사랑스럽게 웃는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기에,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우리의 선택이 옳았노라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우리의 막연한 믿음은 아침을 맞이한 새벽 물안개처럼 허공으로 흩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결정일까. 옳다고 믿던 것들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답을 찾아 헤맨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이 글을 쓴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우리 집 전세가는 또 3천만 원 정도가 올랐네요. 반면에 집값 폭락 조짐이 보인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100살이 넘어서 '세상에 최선을 다한 불행은 없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호호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