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잊고 지낸 오랜 친구의 흔적을 발견했다.
“찰스!”
빛바랜 상자에서 튀어나온 쪽지가 소리친다. 찰스! 오랜만이야.
먼지를 털어내고 겹겹이 접힌 쪽지를 펼친다. 가을 낙엽처럼 바짝 마른 잉크가 익숙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다.
에스더.
눈을 감고 조용히 너를 떠올리자 순식간에 나는 스무 살이 된다. 서울의 뜨거웠던 여름과 밴쿠버의 포근했던 가을에 그녀가 있었다. 어두운 밤을 맞이한 나의 시간을 환한 달처럼 비춰주었던 친구.
빛바랜 상자에서 튀어나온 쪽지가 소리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재수학원에서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재수학원은 고등학교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기 반을 배정받았고, 각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시간표에 맞게 각 반들을 돌아가며 들어가 수업을 하는 형식이다. 한 번 정해진 반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기에 정말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학원 수업이 끝난 후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집이나 학원 대신 호프집으로 향한다는 것이랄까.
어느 조직이나 중심이 되는 세력이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겁 없고 싸움 잘하는 아이들이 세력의 중심이 된다면, 재수학원은 입시 생활 경험이 많은 삼수생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삼수가 무슨 자랑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당당하게 반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인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어쨌든.
나는 고등학교 때 그러했듯 재수학원에서도 위치가 애매했다. 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의 성적은 개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맨 앞 줄은 부담스럽고, 둘째 줄 보다 뒷 줄은 나의 의지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선택 같아 보였다. 그런 애매하고 이상한 정신상태로 공부라는 걸 좀 해보겠다고 끙끙대고 있는 모습을 보던 삼수생 형이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애쓰지 마. 넌 내 과야. 보면 알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달가량 뭔가 중간에 낀 것 같은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공부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이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왁자지껄해지는 삼수생 중심의 패거리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딱 한 번 술자리에 초대를 받았을 때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미운털이 박혔던 듯싶다. 아니, 아니면 그냥 좀 이상해 보이는 놈이니까 피해 가자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고.
이를테면 이런 느낌이었다. 술자리의 꽃은 누가 뭐라 해도 뒷담화다. 그날도 대여섯 명의 재수생과 삼수생들이 한데 모여 수학선생을 까고 있었다. 아, 맞다. 아직도 생각난다. 그 선생님은 아주 맑은 주말 아침에 한 주간 뽀얗게 바랜 이불과 베개를 빨랫줄에 걸어 먼지를 털어내듯 학생들을 두들겨 팼다.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 된 학생들을, 문제 하나 틀릴 때마다, 혹은 숙제를 안 해올 때마다, 활짝 웃는 얼굴로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게 참 희한한 게, 한 두 명이 두드려 맞을 때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지다가도 한 스무 명 정도가 몇십 대씩 시원하게 두드려 맞는 광경을 하루가 멀다 하고 보고 있다 보면,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잘 반죽된 시루떡 같은 정신상태가 된다. 왜 때리고 왜 맞는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몽둥이가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내리 꽂히는 모습과 찰진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는다.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웃고 있다.
맞다. 모두 함께 반쯤 미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모두가 합심하여 수학을 까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미친것 같아. 가르치려고 패는 게 아니라 패려고 가르치는 것 같아. 뭐 이런 이야기를 술기운 가득 올라 벌게진 얼굴로 떠들고 있다가, 한 녀석이 내 팔을 덥석 잡고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걔 미친것 같지? 그러면 나는 태연하게 맥주잔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답은 늘 그런 식이었고, 그럴 때마다 자리는 싸늘하게 식곤 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내 의견을 물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마땅히 그들이 원하는 답이 있었고,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해 나는 그 대답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내겐 그런 요령이 없었다. 누군가의 분위기나 비위를 맞출 수 있을 만큼 눈치가 생긴 것은 한참이나 더 지나 서른이 넘어서였다. 스무 살의 나는 어림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중간에 끼인 존재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 합법적으로 술과 담배를 즐길 수 있게 된, 무늬만 재수생인 망아지 무리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학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범생이들이 있었다. 망아지들은 내가 또라이라고 생각했고, 범생이들은 바닥을 치는 성적을 받는 나를 망아지의 변종 같은 존재로 보았다. 나는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한 채 우주와 지구 사이에 놓인 어둠 속에서 홀로 부유하고 있었다.
에스더가 학원에 왔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에스더가 학원에 왔다.
그녀는 나의 바로 앞 줄, 그러니까 맨 앞 줄에 꼿꼿이 앉아 칠판과 책 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동글동글 통통한 인상과 다르게 쌍꺼풀 없이 또렷한 눈동자로 상대를 보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몸이 좋지 못해 2월까지 요양을 하다가 남들보다 한 달 늦은 3월에 합류했다는 뉴페이스의 등장에 범생이 무리는 긴장했다. 하지만 3월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자 모두 그녀의 존재감을 지웠다. 그녀는 나와 비슷했다. 그녀도 나와 함께 우주와 지구 사이 어둠 속으로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너무 넓어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이 학원에 와서 만난 것이다. 시원하게 웃으며 몽둥이를 후려치는 저 선생님을 먹여 살리는 나의 동료.
하지만 궁금해졌다. 나와는 달리 맨 앞 줄에 앉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토록 열심히 공부만 함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별 다르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는가.
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녀는 무척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그녀는 제2 외국어인 일본어를 무척 좋아했다. 그 외의 공부는 그녀의 흥미를 당기지 않았다.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너도 나처럼, 중간에 끼어버리고 말았구나. 반가운 마음에 소리치고 싶었다. 선생님, 여기 있어요. 나 같은 애!
그녀는 3월부터 7월까지 학원에 나왔다. 그리고 나는 자리를 옮겨 그녀의 옆에 앉았다. 어떻게 해서 그녀와 가까워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있었고, 항상 함께 수다를 떨었다. 수업시간에는 쪽지를 주고받았고 쉬는 시간에는 캔커피를 뽑아 마셨다.
이 정도로 친해지면 연애 분위기가 생길 법도 하건만, 우리 사이에 이성적인 어떤 긴장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내게 ‘찰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내가 왜 찰스야? 문득 궁금해졌던 내가 묻자 그녀가 답했다.
“스누피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이 찰스야. 널 보면 딱 걔가 생각 나. 완전 딱이야. 찰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게이스러운 이름이기도 하고.
무척 말도 안 되는 오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그냥, 게이스러운 이름을 가진 친구를 갖고 싶었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내가 옆에 있었던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단짝처럼 지내던 그녀는 7월이 끝나갈 때쯤부터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보지 못한 지 일주일 정도가 되었을 때였을까.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였다.
“자고 있었어?”
“아냐, 괜찮아. 무슨 일이야? 왜 학원에 안 나오는 거야? 어디 아파?”
방금까지 꾸던 꿈의 흔적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발음을 흐트러트린다. 응, 조금. 하고 그녀가 답한다.
“왜, 엄마가 없어서 슬퍼? 우리 찰스, 엄마가 보고 싶었쪄요?”
우쭈쭈. 이제 나 없으면 누가 너랑 놀아주니. 쯧쯧. 혀를 차는 그녀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꽤 자주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새벽을 함께 했다. 그녀는 내게 남자 친구와 다툰 이야기나 자신이 최근에 빠져있는 소설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내게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나는 그녀의 친근한 목소리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캐나다로 건너갔다.
이듬해 봄이 되었을 때, 그녀는 캐나다로 건너갔다.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캐나다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간간히 이메일을 주고받는 펜팔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했고, 나는 대학이라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고받던 통화는 계절이 바뀌거나 해가 바뀔 때 주고받는 안부 메일 정도로 바뀌어갔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의 공통분모는 사라져 갔다.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막 낙엽이 지기 시작한 밴쿠버에서였다.
“그런데 왜 캐나다야? 일본이 아니고?”
미소라멘의 달짝지근한 국물을 후루룩 삼키며 물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나를 보며 이렇게 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사람 사는 게 어디 맘처럼 되겠니.”
몇 년 만에 만난 그녀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학생이 되어있었다. 캐나다 서부에서 명문으로 손꼽는 대학이었다. 한국에서는 영 기를 못 펴던 그녀의 특이한 성향은 캐나다에 다다르자 우기를 만난 대나무처럼 끝 모르고 쭉쭉 다리를 뻗어나갔다.
“아들. 이 엄마가 여기 와서 제일 놀랐던 게 뭔지 알아? 여기 사람들이 나보고 예쁘대. 솔직히 내가 한국에서 예쁜 얼굴은 아니었잖니?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칭찬을 수도 없이 듣는 거야. 예를 들면, 당장 지금 내 머리색을 봐. 한국에서는 이렇게 튀는 핑크 염색을 하면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거든. 예쁘지도 않은데 이렇게 개성 넘치는 뽀인트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게 보였어. 그런데 나, 오늘 여기 나오면서 세 번이나 이런 말을 들었어. 아이 러브 유어 헤어. 헤이, 댓 컬러 룩스 그레잇 온 유. 뭐 이런 말. 심지어 아는 사람도 아닌데.”
여기는 그래. 처음 보는 사람들도 타인이 뭘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크게 관심이 없고, 그냥 좋게 좋게 받아들여줘. 기본적으로 뭔가 타이트하지 않아. 느긋하고 헐렁헐렁한 느낌이랄까? 품이 가득 남은 옷을 입고 온 몸을 펄럭이면서 옷과 내 몸 사이의 공간에 여유를 두는 거야. 그 여유가 타인을 헐렁하게 보게 만들고, 그럼 아주 쉽게 칭찬이 나오지. 그녀가 말하며 젓가락 가득 면을 들어 올렸다. 후루룩.
“미국이 멜팅팟이라면, 캐나다는 샐러드 보울 같은 곳이야. 미국은 재료가 한데 녹아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돼. 하지만 샐러드 보울 안에 든 재료들은 달라.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갖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 그냥 섞여있을 뿐이야. 건져서 입에 넣으면 그대로 그 재료의 맛이 나지.”
타마고를 젓가락 끝으로 톡, 누르자 반숙이 된 노른자가 천천히 국물에 퍼진다. 후루룩.
식사를 마치고 밴쿠버 시내를 걸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해 질 녘의 잉글리시 베이를 본 적 있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밴쿠버에 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대체 뭘 하고 다녔던 거야.
우리 두 사람은 석양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 두 사람은 해변가에 서서 석양이 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모래사장에 놓인 바삭하게 마른 통나무에 걸터앉아 그녀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나, 만나는 사람이 있어. 한국계 캐나다인이야. 얼마 전에 프러포즈받았어.
“그리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거야. 이제는 불어도 공부하고 있어.”
그거 알아? 나 벌써 4개 국어 구사자야. 한국어, 일본어, 영어, 거기에 불어까지. 이러다 중국어랑 스페인어까지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녀는 밝게 웃고 있었다.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정기적으로 그녀를 만났다. 나의 영어 실력 향상을 돕기 위해, 그녀는 캐나다에서 단 한 번도 내게 한국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나 또한 그녀의 배려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영어를 고집했다. 처음의 어색했던 순간도 잠시였고, 우리는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소통 방식을 익혀나갔다. 언어가 바뀐 것 하나 만으로 우리의 대화 양상은 크게 변했고, 서로를 대하는 말투와 태도까지 달라졌다. 우리는 한국과 캐나다 사이에 놓인 드넓은 태평양의 중간 그 어딘가에서 뗏목을 젓고 있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몇 번인가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녀와 주고받았던 수많은 쪽지와 편지들은 그렇게 낡은 상자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바로 오늘, 내가 집 청소를 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기 바로 전까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내 소중한 그 친구는, 어느 해변에 닿았을까. 그리고 그녀는, 과연 몇 개 국어까지 할 수 있게 되었을까. 그 언어 중에, 그녀의 영혼을 대변할 단 한 가지를
그녀는
찾을 수 있었을까.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어디에서 어떤일을 하고 있던지, 그 친구는 야무지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을 믿습니다.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의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자신감에서? 경험에서? 사랑하는 마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