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20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어요

20. 나의 프랑켄슈타인을 안아줄 수 있게 되기를

by Kyle Lee
“석사 논문은 꼭 프랑켄슈타인을 만드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말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남겨둔 채 취업했던 후배는 뒤늦게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얼마 되지도 않는 자투리 휴식시간을 쥐어짜고 있었다.

“일단 석사 논문에는 저의 생각이 들어가면 안 돼요. 여기저기 이미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조각 퍼즐 맞추듯이 가져와서 맞추는 거예요. 누더기를 기워 맞추는 것처럼요.”

그녀가 말한다. 프랑켄슈타인. 너를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주마. 자, 여기 롤랑 바르트가 만든 팔이 있구나. 오 저런, 저기에는 움베르트 에코와 레비스트로스가 만든 다리가 있구나. 어머나, 그리마스가 만든 뼛조각이 여기 있었네?

“그러다 아주 조금, 저의 생각을 1 밀리그램쯤 갖다 붙이면 지도교수님이 귀신같이 알아보고 이렇게 말씀하셔요. 어이쿠 이런. 아현아. 이건 발가락이 아닌 마카롱이잖니. 자, 이건 떼어내고 다른 데 가서 발가락의 형상을 한 것을 찾아오지 않으련?”

왜 굳이 마카롱이야? 하고 물으니 그녀가 답한다.

“제가 마카롱을 좋아해서요.”


KakaoTalk_Photo_2022-04-17-20-49-08.jpeg instagram: @maywithmayday




대학원 논문만큼 거추장스러우면서 가소로운 게 또 있을까.


대학원 논문만큼 거추장스러우면서 가소로운 게 또 있을까. 쓰기 전까지는 세상 다시없을 것처럼 골치 아프고 손도 많이 가는데, 다 쓰고 나면 가소롭고 하찮아진다. 논문도 하나의 작품이라면, 결코 내 것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그런 졸작을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대문짝 만하게 박제하여 볕이 가장 잘 드는 광장에 걸어두는 느낌이다.


나의 석사 논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번을 뒤집어엎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결국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 중간에 취업준비와 회사생활을 했던 기간이 있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길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졸업은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뭔가 끝을 제대로 맺지 않은 느낌이에요. 학비도 모두 냈고, 수업도 모두 들었어요. 내가 논문을 안 쓴다고 해서 그동안 배웠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논문이라는 게 그다지 큰 의미는 없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찝찝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뭔가 끝을 맺지 않은 느낌이지. 2년 동안 대학원생 생활을 하며 노력했던 많은 것들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이상한 그 느낌. 잘 안다. 나 또한 그랬다. 졸업이냐 수료냐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지난 시간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결국 좀 더 고생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지도교수님을 찾아갔고, 9개월 후 나는 석사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마라톤의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처럼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졸업장을 따기 전과 후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자체로 뭔가를 끝냈다는 느낌이 있었다. 성취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라톤의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처럼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감각이 중요한 거야. 끝났다는 것. 그 끝났다는 감각이 다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거든.”


어떻게든 석사 논문을 꼭 마무리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면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회사 생활이 힘들더라도 자투리 시간을 잘 만들어서 꾸준히 진행해봐. 일단 가닥이 잡히면 또 술술 써지는 게 논문이거든. 그녀는 나의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끝을 알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사실 뭔가를 마무리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고 느끼곤 한다. 어디까지 해야 충분히 한 것일까. 세상엔 졸업장이나 합격증처럼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선택했던 직무, 회사, 경력은 어디까지 해봐야 내가 충분히 해본 것이고 마무리가 되는 것일까. 답이 나오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아직 충분히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작한 일에 책임을 지고 마무리는 지어야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스스로의 끈기를 의심했고, 부족한 것은 나의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이제는 조금 상황을 유연하게 보게 되었지만, 단 1년 전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경력은 마디마디 끊겨버렸고, 쥐 파먹은 치즈처럼 듬성듬성 비어버렸다. 어설픈 집착이 맺고 끊는 결정을 매끄럽게 만들어주지 못한 탓이다.


“그거 아세요? 이렇게 논문을 써서 프랑켄슈타인이 완성되고 나면, 언젠가 이 녀석이 나에게 돌아와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후배는 자신의 프랑켄슈타인이 찾아오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을 상상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잊고 지내면서, 이런 형편없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햇살 따듯한 그런 날에 이 친구가 찾아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주인님, 제가 왔어요. 당신이 저를 만들었답니다. 자, 저를 보세요. 군데군데 기워진 부분이 헤지고 뜯겼어요.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말이 아닐 지경이지 뭐예요.”


프랑켄슈타인은 반드시 돌아와요. 어느 경전의 한 구절을 읽는 것 같은 표정의 후배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지도교수님 석사 논문을 인용해보려고요.”


교수님의 프랑켄슈타인을 소환하겠어요. 발랄한 표정의 그녀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더해주었다.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아마 넌 졸업을 못하게 되겠지. 파이팅.


그리고 상상한다. 인용문과 레퍼런스를 본 교수님의 표정은 어떨까.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어야 하는데.


프랑켄슈타인은 반드시 돌아와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충분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미숙한 포기인지. 삶의 단위가 졸업장이나 합격증처럼 명확하게 나오면 참 편리하겠다고 생각한다. 패스 논 패스. 합격 불합격. 파란불 빨간불.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은 그렇게 편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뭣도 모르겠는 상태로 어둠 속에 놓여 주섬주섬 조각을 그러모은다. 손에 잡힌 무언가의 조각을 어딘가에 맞춰 끼워 넣는다. 삶이라는 이름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든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달빛을 등불 삼아 세상의 윤곽을 더듬으면서.


나의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방심하고 있을 어느 순간에 나의 등 뒤에서 속삭일 것이다. 주인님, 제가 왔습니다. 당신의 프랑켄슈타인입니다.


나는 아마도 어느 뛰어난 사람들이 그러하듯 완성도 높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내 등 뒤에서 속삭이는 프랑켄슈타인을 너그러이 품에 안아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의 마음이 넉넉해질 수 있기를. 나 스스로를 그만큼 용서하고 받아줄 수 있는 여유가 되기를.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다시 학생때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다시 논문을 쓸 생각을 하면 그냥 관두자 싶어집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원생 여러분 화이팅!"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졸업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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