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오답노트 Season 1. Epilogue
“요즘 무슨 생각해요?”
주말의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홀짝이던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당신이 말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에 당신을 스쳐간 것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무엇이냐고.
실패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2021년 2월, 그러니까 작년 겨울의 마지막 한기가 대기에 남아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바로 그즈음,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몸을 담았던 스타트업 회사를 떠나왔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기업의 인사팀을 그만두고 선택한 것이 스타트업이냐는, 그래서 사정이 어렵다며 몇 달이고 월급도 밀리기 일쑤인 그런 회사에 들어간 것이냐는 주변의 핀잔도 귓등으로 들으며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치열한 시간이었다. 수많은 상처와 무게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회사를 나오며 깨달았다. 나는 도전에 실패했다고. 나의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은 이제 보상받을 길 없이 오롯이 나의 경력란에 빨간 점처럼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퇴사하고 꽤 오랫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어떤 것에도 펜이 가지 않았고, 뭘 써도 억지스러웠다. 전 회사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은 나를 중도에 팀을 버린 배신자라 생각할 것 같았고, 혹여나 내가 쓰는 글이 그들에게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지를 걱정하고 고민했다. 내 기준에서 느끼고 바라본 세상을 순수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들의 기준에서 나의 글을 검열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숨이 막혔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나의 선택을 응원하던 사람들의 시선에도 두려움을 느꼈다. 호기로웠던 나의 모습을 기억할 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래서 내가 말렸잖아, 그러니까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좀 더 제대로 된 선택을 해 봐. 와이프랑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너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 라는 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들에게 나는 실패자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살면서 크게 실패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살면서 큰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한 번에 성공하기보다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성공한 적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나는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나는 이것을 포기해야 한다, 라는 상황에 놓인 적이 없이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손안에 넣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난 선택도 당연히 잘 될 것이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업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는 그 팀을 나왔고, 그곳에서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거품처럼 허공에 흩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이런 사실이, 처음으로 나 스스로를 실패자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단 한 번도 실패로 끝낸 적 없던 나의 이야기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의 마음은 무거운 쇠공처럼 바닥에 가라앉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몇 번의 계절이 변하자 조금씩, 아주 천천히 허물을 벗듯 무거운 껍질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일상을 살다가 문득, 누군가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실, 사람들은 별로 너한테 관심이 없을 거야.
사실, 사람들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부끄러움에 연락하기 꺼려지던 사람들이었다. 나의 가장 빛나던 시간만 기억하던 그들에게 나의 실패를 수줍게 꺼내어 들었다. 이마저도, 쓰러진 채 버둥거리는 그 모습 또한 나라는 사람임을 알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실패도, 성공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단지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질 뿐, 만남의 자리를 벗어나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잊어버릴 타인의 일이며, 이 사건은 그들에게 저녁 메뉴 고민보다 못한 타인의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솔직한 나의 모습을 보이는데 주저함이 없어지자 글을 쓰기가 쉬워졌다. 마치 마법처럼. 겨울의 추위가 봄바람에 쓸려 햇살 속에 스며들듯이, 나의 슬럼프는 봄을 맞은 새싹이 되었다.
솔직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나는 실패했다. 실패한 나조차 내 삶이다. 그리고 의외로, 내 삶은 이전보다 대단히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따듯한 밥을 먹고, 가까운 친구들과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로 화내고 웃는다. 여전히 내게 손을 뻗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나의 걱정과 달리 여전히 따듯하고 포근함을, 결국 나를 깎아내리고 용서하지 못했던 것은 나였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 글을 써보았다.
난생처음,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 글을 썼다. 오답노트. 답이 나오지 않은 나의 솔직한 문제와 상념을 던져보았다. 그 답을 찾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찾지 못할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거니까. 그래서, 누군가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정답을 잘 모르는, 하지만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고. 꼭 당신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글을 쓰고 회사에 나가는 일상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스타트업이지만, 조금 더 성숙하고 노련한 시선으로 일과 삶을 바라보고 있다. 호기롭고 과감하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일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또한 내 삶이다. 이 일상 너머 이루고 싶은 거대한 꿈보다, 내가 사는 일상 속 하루하루를 느끼면서,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면서. 다시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요즘 무슨 생각해요?"
아내가 물었다.
"소설을 써볼까 해요."
내가 대답했다.
요즘 무슨 생각해요? 아내가 물었다. 짙은 커피 향에 취해 꿈꾸듯 대답했다. 소설을 써볼까 해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눈부신 일상을, 긴 호흡에 걸쳐 잔잔하게 남길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볼까 해요.
몰아치던 태풍의 바람소리가 잦아든다. 처음으로 써 본, 빛이 없던 시절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언제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오답노트를 펴고 이야기를 써갈 것이다.
다시 찾아올 그날을 위해 오늘은 이만 노트를 덮는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지금까지 함께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많이 다듬고 준비하여 곧 돌아오겠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안녕하세요, 글과 그림을 읽고, 쓰는 모두가 하루하루를 자신의 걸음으로 걸으며 안녕하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