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다행히 우리 부부는 아직 사이가 좋은 편이다.
와장창.
부엌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엄지손가락에서 배어 나온 피가 뚝뚝 떨어진다.
“마가 꼈나….”
손가락에 빨간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두르며 중얼거린다. 두툼해진 손가락을 두꺼운 작업용 장갑에 밀어 넣고 주방을 둘러본다. 잘게 쪼개져 바닥에 깔린 유리조각이 모래사장의 조개껍질처럼 빛난다.
“괜찮아요? 다치진 않았고?”
오늘도 사고를 쳤다는 나의 말에 아내가 묻는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라고. 듬성듬성 울리는 카톡 알림음이 잰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하고 있을 아내의 가쁜 숨소리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두 번째다. 무려 3일 동안 나는 두 번이나 집안의 유리를 부숴먹고 있다.
나는 며칠째 집안의 유리를 부숴먹고 있다.
처음에는 거실 전등이었다. 백열등 네 개가 예쁘게 장식된 약간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전등이다. 반투명 유리 갓이 달려있었고, 그중 하나를 아무 생각 없이 기지개를 켜다가 깨 먹고 말았다. 사과처럼 동그란 전등갓이 어느 전자회사의 로고처럼 크게 베어 먹은 형태로 구멍이 났다.
상처가 없었던 것이 천운이라던 아내에게, 민망함을 감추려 어리광을 부려본다.
“내가 안 그랬어요. 그냥 제 멋대로 깨졌어요. 아니, 나는 그냥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뱀이 와서 콱 물고 도망갔어요.”
아내가 말한다. 어이구, 그랬어요? 엄마가 거짓말하면 나쁜 어린이라고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다행히도, 아직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다.
아무튼.
그렇게 사고를 치고 하루를 거른 오늘, 잠에 취해 반쯤 뜬 눈으로 찬장을 열어 커피잔을 꺼낸다. 룽고 잔 정도가 좋겠지. 아무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손을 뻗어 커피잔을 집었다.
대체 뭐에 홀렸던 것일까. 이상할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 끝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잔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사이 잔은 대리석 싱크대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급하게 잔 끝으로 향하던 나의 손가락 사이로 파편이 스쳐 지나간다.
엄지 손가락에 밴드를 두르자 둘째 손가락에 붙어있던 밴드가 인사한다. 안녕? 반가워. 너보다 하루 먼저 왔어. 난 책에 배어서 난 상처에 붙었단다. 넌 어떻게 왔니?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아내에게 또 이실직고한다. 미안, 또 사고 쳤어요. 이번엔 커피잔이에요.
다시 한번, 아내는 내게 혹시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엊그제보다 답이 아주 미세하게 늦게 온 것은 기분 탓이겠지. 우리 부부는 아직 사이가 좋으니까.
과장님은 결혼 후 호칭을 어떻게 정하셨나요?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팀 주간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끼리 소소한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나는 문득 궁금한 마음에 과장님에게 물었다.
“과장님. 과장님은 형수님과 결혼 후에 호칭을 어떻게 정하셨나요?”
“우리는 그냥 야, 너, 그렇게 불러.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가 결혼한 케이스라서 낯간지러운 거 못 해. 두드러기 나.”
첫 아이 출산을 몇 달 앞둔 과장님은 이렇게 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팀장님에게 물었다. 부장님은 어떠세요?
“… 우리는 그냥 안 불러. 대화 한 지 오래됐어.”
회의실에 적막이 깔렸다. 대표이사 비서가 어렵게 입을 연다. 그래도 불러야 할 때가 있지 않아요? 그럴 때는 뭐라고 하시는데요? 팀장님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기….”
저기? 응. 저기. 답을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과 상상력이 필요했다. 숙연해진 회의실의 적막을 깨고 과장님이 말한다. ‘야’나 ‘너’보다 더 먼 호칭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야’, ‘너’ 보다 더 먼 호칭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다음 해였을 것이다. 수도권에 처음으로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마련했다는 팀장님은 새 집 자랑을 위한 집들이를 했다. 요리가 취미였던 팀장님은 여러 번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권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였고, 집들이는 그의 요리실력을 뽐내기에도 굉장히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주말 점심 즈음 팀장님의 집에 도착하자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거실 한가운데 펼쳐진 거대한 식탁 주위로 팀원들이 모이자 안방에서 팀장님의 아내가 나와 모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세요.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팀장님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현관문을 나섰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억센 사춘기 남자아이들을 감당하기 위해 체득한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렇게 집에는 오로지 우리 팀만 남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거실을 둘러보는데, 거실 벽에 걸린 거대한 추상화가 눈길을 끌었다.
“저 그림 때문에 엄청 싸우셨다더라.”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는 내게 차장님이 말했다. 집 안에 추상화를 거는 미친놈이 어디 있느냐며 팀장님의 아내는 진저리를 쳤고, 팀장님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림을 벽에 걸며 흡족해했다고. 꽤 유명한 작품이었던지 미술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어딘가 낯이 익었다. 이런 작품은 모조품도 제법 가격이 높다고 말하며 차장님은 웃었다. 팀장님이 옥상에서 차장님과 담배를 피울 때 오고 가는 이야기는 아마도 이런 것들이겠구나 싶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두 사람의 세계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집 안에 추상화를 거는 미친놈이 어디 있다고.
감바스와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시작으로 파스타와 리소토, 스테이크가 차례로 식탁 위에 올랐고, 우리는 모두 감탄하며 요리가 올라오는 족족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각자 들고 온 와인은 금세 동이 났고, 차장님은 그럴 줄 알았다며 가방에서 값비싼 양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긴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센스란 저런 것이겠지.
왁자지껄한 대화와 함께 술잔이 오고 갔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오후와 저녁 그 어느 사이가 되었을 때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자리에 있는 우리 팀원을 본 아내분의 눈빛에 서늘한 한기가 돌았다. 아이들을 방으로 들여보낸 그녀는 안방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순간 테이블 위로 정적이 감돌았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과장님이 말했다. 아니, 아직 안돼. 내가 진짜 맛있는 디저트를 준비했거든.
“그건 꼭 먹고 가야 돼. 내가 그거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팀장님은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저녁 시간이 조금 넘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 요리를 오븐에서 꺼내다 뒤집어엎은 탓에 팀장님의 손은 화상으로 얼룩졌고, 우리는 집들이의 마지막을 바닥 청소로 마무리했다. 우리가 집 밖으로 나설 때까지, 형수님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간다는 팀장님의 딸이 닫혀있던 방 문을 열고 나와 아빠의 상처에 바를 연고를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월요일이 되었을 때, 팀장님은 모두 잘 들어갔느냐며, 자신은 스테이크가 나올 즈음부터는 아예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저 그림이 대체 어쨌다고 그러냐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비틀 거리며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사는 게 왜 이런 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던 것도 모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몇 가지 이유가 겹쳐 나는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퇴사하던 바로 그날, 팀장님의 서류상 재직기간도 끝이 났다. 회사 내의 한 여직원을 과도하게 술자리로 불러냈고, 여러 번의 선을 넘는 행동을 한 탓이었다. 피해자는 퇴사를 앞두고 작별인사를 하려고 불러낸 식사자리에서, 내게 지난 몇 달간 시달렸던 사건을 털어놓으며 눈물지었고, 나는 그 직원을 데리고 대표이사실에 들어갔다. 사건의 개요를 한 장으로 정리해 대표님께 드렸고, 문서를 본 대표님은 운영담당 임원을 맡고 있던 상무님을 방으로 불렀다. 마찬가지로 서류를 본 상무님은 우리 팀의 모든 직원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모두 집으로 귀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출근한 팀장님은 짐을 싸서 회사를 나섰다며, 차장님은 팀장님의 사원증을 내게 건네주었다. 퇴사자 행정 처리는 아직 나의 업무였다.
결혼하고 뭐가 제일 좋아요?
“오빠는 결혼하고 뭐가 제일 좋아요?”
여전히 아내는 꽤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질문 앞자리에 위치한 호칭이 자주 변한다. 서방님, 자기, 오빠, 여보야 등등. 우리는 여전히 뚜렷한 호칭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결혼 8년 차를 넘어서도, 나는 결혼생활을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행히 아직 우리는 크게 부딪치는 일 없이 고요한 파도를 함께 넘어서고 있다. 가끔 제법 큰 너울이 일 때도 있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위기를 대처할 때의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그래, 알고 있다. 현명한 아내 덕이 크다.
거실에 걸려있던 추상화가 떠오를 때가 있다.
간혹 팀장님의 거실에 걸려있던 추상화가 떠오를 때가 있다. 거실의 가장 중심이 되는 벽에 꼿꼿하게 걸린 거대한 그 그림은 그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그림은 아이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까.
다행히 우리 부부는 아직 사이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제고 우리는 벽에 추상화를 걸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때 즈음에는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정해지지 않을까. 그때,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야, 너, 저기…. 그런 것이 되지 않아야 될 텐데.
아내는 이런 말을 하는 내게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며 핀잔을 주었다. 아마 연달아 며칠간 사고를 친 탓이겠지. 먹다 만 사과처럼 깨진 전등갓 틈으로 갈무리되지 못한 밝은 빛이 세어 나온다.
우리 부부는 돌아오는 주말에 동네 조명가게에 함께 들르기로 했다. 심플하고 밝은 전등을 달자고 말하며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탁자 위에 마주 놓인 찻잔에서 향기가 퍼진다. 다행히 우리는 아직, 사이가 좋은 편이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반 년 가까이 연재해오던 오답노트가 끝을 바라보고 있네요. 기분이 묘합니다...!”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세상 모든 사물들이, 모든 사건들이 사람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지요. 세상 모든게 ‘추상화’와 같다면 무섭고 또 설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