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18화

네가 대학을 가면 내가 선생질을 그만둔다.

18. 어쩌면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by Kyle Lee
고3 진학상담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대학 어쩔 거야?”

“글쎄요…. 시험 보고 점수가 맞으면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대학을? 네가 대학을 가면, 내가 선생질을 그만둔다 이놈아.”

대체, 넌 언제 정신 차릴래? 선생님의 말에 나는 그저 배시시 웃고 말았다. 나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다. 1월이 끝나가던 무렵, 나는 아버지 앞에 쭈뼛거리며 서서 어렵게 말을 떼었다.


“저, 대학에 갈게요. 1년만 도와주세요.”


아버지는 티브이를 보다 말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표정 안에는 ‘네가 대학에?’라는 물음표가 크게 적혀 있었다.


대학에 갈게요. 1년만 도와주세요.


지금이야 부모님 앞에서 ‘나는 크게 속 썩인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큰소리치지만, 사실 그 내막은 조금 다르다. 어떤 측면에서 나는 소위 ‘사고뭉치’라고 말하는 부류보다 더 까다롭고 골치 아픈 존재가 아니었을까. 혈기 왕성한 사춘기를 맞이한 친구들이 자신을 옭아매는 제도와 시스템에 거칠게 맞서 반항하는 편이었다면, 나는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규칙을 거부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조용하게 순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실상 저 깊은 곳에서는 언제고 기회만 있다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어 모든 걸 파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나의 삐딱한 시선은 고3이 되었을 때 폭발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서울대와 연고대 진학률이 전국 최상위권에 들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었다. 보통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떠올려보니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나태한 분위기도 있었고,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사고를 치는 일찍 철든 (혹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온순한 가풍에서 자란 학생들) 아이들을 다루다 보니 생길 수 있는 방심 비슷한 것이 선생님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하지만 선생님들 사이의 이런 분위기가 딱히 학교 탓만은 아니었을 듯싶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다. 학교보다는 오히려 학원 수업이 메인이었고, 그래서 방학 자율학습을 해도 학부모가 먼저 나서서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고2 겨울방학 때 한 달간 진행했던 자율학습은 너무도 저조한 참석률 때문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고, 고3이 된 후에는 국, 영, 수 및 사탐과 과탐 수업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과목이 자율학습시간이 되었다.


아침 자율학습이나 방과 후 자율학습 같은 것도 없었다. 오후 2시 50분이 되면 정규 수업이 끝났고, 3시가 되면 종례시간이 시작되었다. 종례가 한창인 3시 10분 즈음에는 담임을 맡지 않은 선생님들이 모두 차를 타고 교정을 벗어나고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참견이 탐탁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의욕이 없었다.


각자 알아서 잘 살아보자는 분위기는 진학률에 있어서 꽤 성공적이었고, 그 시스템 속에서 학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알아서 미친 듯이 공부하는 학생들과, 옛 저녁에 공부 따위는 포기하고 넘쳐나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르고 지루하게 보내는 부류. 나는 압도적인 후자였고, 제법 잔머리가 좋아 시스템의 허점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삐딱했으니까.


instagram: @maywithmayday


나는 시스템의 허점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고3 시절의 내 출석부에는 갖가지 사유로 조퇴가 난무했다. 그마저도 카운트가 된 일부이고, 사실은 담을 넘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던 적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학생들도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어디서 무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의 고3 시절은 마치 대학생 예행연습을 하듯 자유로웠다.


2미터가 넘는 담장을 하루가 멀다 하고 넘어서 향한 곳이 도서관이었다.(조퇴를 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작가가 되겠다고 큰소리쳤던 나는, 글 쓰는 데 대학이 무슨 소용이냐며 객기를 부렸다. 학교 수업에서 배우는 것들이 내가 쓸 글에 어떤 도움이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끄적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열람실에서 적당한 책 한 권을 골라 읽다가 답답하면 도서관 근처 벤치로 갔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그대로 책을 덮고 잤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적당히 배가 차면 또 책을 읽다가 노트를 꺼내 글 비슷한 것을 끄적였다. 그러다 종례 시간이 될 것 같으면 학교로 갔다. 아니, 사실은 가끔 종례를 빼먹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땡땡이에 대해 추궁하거나 혼을 내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마지막 학창 시절이 끝났고, 당연하게도 나는 대학에 떨어졌다. 내가 받은 성적으로는 서울이나 수도권은커녕 제사를 지낼 때 방문하던 지방의 친척집 보다도 더 멀리 가야 할 판이었다. 어차피 예상했다는 표정의 부모님은 ‘내가 낳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실 뿐 특별히 더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네 인생이니 앞으로 네가 책임져야 한다. 딱히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늘 그래 왔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막상 스무 살을 코앞에 두니 나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병역’이라는 이름의 쇠사슬이었다. 그 끝에는 바다 저 끝까지 가라앉힐 것 같은 커다란 드럼통이 붙어있었다.


신체검사를 받고 돌아온 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1등급 나왔어요. 어, 그래. 그래서요 아버지. 응. 저, 대학에 갈게요. 1년만 도와주세요.


군대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군대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막 고등학교라는 감옥에서 탈출했는데, 그보다 더 숨 막히는 군대라는 감옥으로 기어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좀 더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걷는 시간. 오롯이 내 삶을 느껴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티브이를 끄고 내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아버지가 깊이 한숨을 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냥 미국에 가서 외삼촌 밑에서 일을 배워보는 건 어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아무리 못났기로서니 아들에게 외노자가 되라니.


“아뇨, 대학에 갈게요. 공부할게요. 학원에 보내주세요.”


학원비가 얼만데….라는 말이 아마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것이다. 내가 널 학원에 안 보낸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말도 넘치도록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알았다.”


다음 날, 어머니는 부랴부랴 재수학원을 알아보았다. 내 성적으로는 좋은 재수학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집 바로 앞에 새로 생긴 종합학원에 빈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신청서부터 들이밀었고, 2월부터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방탕했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다.


여기까지가 나의 방탕했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노력을 공부에 쏟아부었다.


잘 모르겠다. 여전히 부모님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셨고, 누구도 내게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펴고,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 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와 비슷했다. 졸리면 엎드려서 쪽잠을 잤고, 배가 고프면 초콜릿이나 사탕을 입에 물었다. 국어를 하다가 지겨우면 영어를 펼쳤고, 수학이 괴로우면 사탐 과탐을 풀었다.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수학이었다. 남들은 12년에 걸쳐 외우고 훈련하는 정리니 공식이니 하는 배경지식이 전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외우는 것이었다. 교과서와 참고서에 나와있는 공식과 정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백지에 그대로 베껴 쓸 수 있을 만큼 외웠다. 다른 과목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우고 푸는 하루하루를 반복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재수를 하던 해, 수능 시험을 한 달 앞두고 꾸었던 꿈이 여전히 기억난다. 고3 때도 수능을 앞두고 꿈을 꾸었는데, 놀라울 만큼 내용이 반대였다.


고3 때는 시험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는데 지문 하나도 다 읽지 못한 상태로 발을 동동 구르는 꿈이었다. 설마 한 문제도 못 풀 줄이야. 그런 생각으로 지문을 노려보는데 내용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한글을 읽고 있는데, 단어 하나를 넘길 때마다 지나간 내용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답답함에 가슴을 치다가 눈을 떴을 때 느꼈던 좌절감은 상당했다. 하지만 재수 때는 달랐다. 아주 여유롭게 문제를 풀었고, 시간이 남아 시계를 보면서 지루해하며 꿈에서 깼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준비가 되어있구나. 이번 시험은 작년과 많이 다르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이듬해 3월, 나는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1년 만에 낸 성과 치고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냥 덮어놓고 공부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나는 입시전략의 중요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받은 성적에 비해 조금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대학 이름이 뭐 중요할까. 당장 군대에 끌려가지 않으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입학 후 지급받은 장학금은 난생처음 성적으로 받아보는 상이었다. 그 또한 묘한 기분이었다. 남들 다 한 번쯤 해본다는 초등학교 반장, 초등학교 반 1등 대신 늘 꼴찌를 하던 내가 장학금이라니. 인생은 정말 알 수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대학 새내기 생활은 고3 때 못지않게 자유분방했다. 전공을 가리지 않고 흥미로운 수업을 골라 들었고,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무턱대고 찾아가 빈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수업도 빼먹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호수가 보이는 교정 벤치나 풀밭에 드러누워 석양이 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그러다 졸리면 책을 덮고 잠이 들었고, 배가 고프면 근처에서 샌드위치나 주먹밥을 사서 먹었다. 학점은 개판이었고 나의 삶은 완전히 고등학생 때로 돌아갔다.


2학년을 마치고, 나는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육군보다 3개월이 더 긴 공군을 자원입대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끔찍했지만 그래도 버틸만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의 바닥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많은 것을 잃었고, 잃었기에 얻을 수 있는 수확이 있었다. 세상 일엔 언제나 반대급부가 따른다.


나의 하루가 충실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한다.


잠자리에 누워 불을 끄면, 나의 하루가 어땠는지를 떠오른다. 그리고 꽤 자주, 나는 나의 하루가 충실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한다.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혹은 좀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는데.


나의 ‘열심히’의 기준은 아마도 이 시절에 자리 잡은 듯하다. 그리고 나의 ‘열심히’는 ‘열심히 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충족되는 듯하다.


어머니는 가끔 나의 대학 입시 스토리를 간략하게 압축해서 표현하신다. 하면 되는 걸 왜 그렇게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가지고는. 나는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말한다. 내가 4년제 대학을 들어간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 아닌가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그럼 아버지는 코웃음을 치신다. 지가 잘해서 간 줄 알지. 이렇게.


불을 끄고 누웠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펜을 잡았다.


아마도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어느새 올 한 해도 한 분기가 끝나갑니다. 남은 세 분기는 지난 한 분기보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려구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나이가 들수록 천재를 볼 땐 감탄하지만, 수재를 볼 때는 동경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해보겠습니다, 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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