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17화

회사가 나의 전과기록을 알 수 있을까요?

17.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지원자들이 있다.

by Kyle Lee

처음으로 채용업무를 시작했던 시절의 일이다.


공채 시즌이 다가오면서 외부 행사를 나가야 할 일이 많이 생겼다. 전국의 대학 캠퍼스를 비롯한 각종 채용박람회에 부스를 설치하며 예비 지원자들을 만났다. 부끄럽게도 이것도 실적인지라 부스 방문자나 설명회 참석자의 숫자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기간이 겹치기라도 하면 부스를 찾아오는 손님이 현저히 적어졌다. 그럴 때면 부스를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한 채 유관학과의 학과 사무실이나 학생회실을 찾아가 회사소개서를 돌리기도 했고, 관련 전공 교수님을 무턱대고 찾아가 수업에서 채용 관련 설명을 할 자투리 시간 5분을 구걸하기도 했다. 보통의 사회 초년생들처럼 당시의 나도 젊은 패기로 일을 몰아붙이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던 어느 날, 채용박람회 부스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미리 준비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내밀었다.


“우리 회사에 대해 혹시 많이 알아보셨나요?”


그의 서류를 건네받으며 으레 묻는 질문을 던진다. 네, 그렇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꼬박 1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박람회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씩씩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서류를 펼쳤다. 지원자 이름, 지원 분야, 그리고 학력….


그는 신입 개발 직무 지원자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의 공채 지원자격은 4년제 대학 졸업자로 제한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영어 시험 점수와 같은 보조적인 기준도 존재했다. 그는 인문 계열의 2년제 대학 졸업자로, 졸업 후 취업학원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하고 수료증 비슷한 것을 딴 모양이었다. 어학 점수도 비어있었다.


서류를 덮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자른 머리에 막 세탁소에서 찾아온 것처럼 각이 잡힌 짙은 남색의 정장과 목이 졸릴 것처럼 바짝 당겨 맨 넥타이. 다소곳이 무릎에 내려놓은 두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1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이번 채용에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이번 채용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 채용의 기본 자격요건이 맞지 않아서요. 안타깝지만 이번 채용에는 지원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쉬움에 흐려지는 말 꼬리가 바닥에 깔린 카펫으로 스며든다. 말을 고르고 골라, 어렵게 답한다.


“일단은 관련 자격증을 조금 더 취득하시는 게 전반적으로 더 유리하실 듯합니다. 아직 개발자로서의 경쟁력을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더 강화하시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올해 신입 개발자 공채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니 우리 회사만 보시지 마시고, 직무가 같은 다른 회사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 해당 직무에서 선호하는 자격증 몇 가지를 알려주고, 해당 부서의 팀장이 중요하게 보는 기준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의였다. 그는 몇 가지 회사와 관련된 질문을 한 후, 이력서를 챙겨 자리를 떠났다. 실망한 그의 목소리가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정한 기준을 나 같은 일개 사원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며, 다른 지원자들이라고 간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표현하지 않았을 뿐 출발선에서 애타는 마음은 모두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공채 지원자의 명단을 정리하다가 그의 이력서를 발견했다. 지원 자격이 미달되어 자동 탈락된 수 십 명의 이력서와 함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넣었겠지. 알고 있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을 그 마음을 왜 모를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인사팀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다시 몇 달 후, 인사팀 대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지원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는 전화였다. 질문에 답을 하다가 문득, 채용박람회에서 만났던 그가 떠올랐다.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묻자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다. 다시 한번, 올 해는 동일 직무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다는 안내를 했다. 그리고 너무 우리 회사만 보려고 하지 말고, 다른 회사도 알아보시라고 다시 한번 덧붙였다. 취업이 급한 상황에서 가능성이 없는 한 회사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니까. 선의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다시 몇 주가 흘렀다. 이번에는 개발 직무 경력자를 뽑을 차례였고, 다시 한번 지원자 명단에 그가 있었다.


“또 걔야?”


차장님이 묻는다. 모니터에 떠있는 익숙한 이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네, 그 사람이에요. 이번에도 냈어요.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묻는 말에 차장님이 답하신다.


“탈락이지 뭐. 그 사람 경력 없잖아.”


왜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바빠 죽겠는데. 차장님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굳이 내가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없지. 그런데 왠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불길한 예감은 잘 빗나가지 않는다. 경력직 서류 합격자 발표가 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그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제법 격앙된 목소리였다.


“경력 3년 이상이 있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는 포지션이라서, 아쉽지만 자격요건 미달로 서류에서 탈락하셨습니다.”


모집공고에 있듯이, 말이죠. 그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전, 대체 어떻게 해야 이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한숨이 나왔다. 목까지 말이 차올랐다. 그래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시라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 와서 대학 졸업장을 다시 딸 수는 없을 테니, 차라리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몇 년 쌓은 후 경력직으로 지원하시라고. 그게 제일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니까요. 하지만 이 말은 결국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중간 자리를 고수해야 하는 채용 담당자가 지원자에게 코칭을 해주는 격이다. 이건 또 다른 형평성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마음과는 달리 말을 아껴야 했다.


“월급 안 주셔도 좋습니다. 진짜 딱 한 두 달 정도 일 시켜보시고 괜찮다 싶으면 그때 채용시켜주셔도 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회사에 정해진 규정이 있기에 그렇게는 안됩니다. 일개 사원인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평소와 달리 점점 딱딱해지는 나의 답변에 그가 말한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 이후에 들었던 이야기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은 얼마나 잘나서 거기서 일하길래 나를 이렇게 괄시하냐, 내가 우습게 보이냐, 내 실력이 4년제 대졸자와 비교해서 어디가 모자라다고 이렇게 차별하는 거냐 와 같은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물었다. 어설프게 친절하니까 그러지. 차장님이 말했다.


“인사 업무라는 게 그래. 사람과 관련된 일이니까, 가슴은 따듯하게. 그런데, 머리는 차갑게 해야 돼.”


공감, 좋지. 공감해야 더 나은 제도도 만들고 사람들 설득도 하지. 그런데, 그 따듯한 가슴이 머리까지 올라오면 안 돼. 어디까지나 일이야. 사람 따라서 되는 것 안 되는 것 달라져도 안되고 알려주고 안 알려주고 차이가 생겨도 안돼. 일이니까. 공정해야지.


일이니까. 공정해야지.


공정해야 한다. 맞다. 공정해야 한다. 나는 어설픈 감정 이입으로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아닐까.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그가 성공하는 모습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길 내심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 선물을 줄 수 없는 현실이, 나의 무능력함이 답답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한참 뒤 어렵게 나온 나의 대답에 차장님이 어깨를 두드린다. 괜찮아. 나는 그래도, 네가 그런 애라 마음에 들어.


그 후에도 그는 몇 번인가 전화를 걸어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가 언성을 높이며 감정을 드러냈던 그 일은 그의 기억에 더 이상 없는 일인 것만 같았다. 나는 업무 담당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했고, 그는 아마도 이전과 달라진 나의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는 더 이상 회사에 전화하지 않았다. 이후의 채용 지원자 명단에서도 더는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회사가 저의 전과기록을 알 수 있나요?


나는 꽤 오랫동안 그를 잊고 살았다. 몇 해가 지나 회사가 바뀌고, 인사 직무나 채용에 관한 칼럼 같은 것도 연재하고, 또 취업 관련 채널의 유튜브 출연이나 대학 특강 등을 진행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특이 케이스를 접했고, 그 일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로 남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을 받자 잊었던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회사가 저의 전과기록을 알 수 있을까요?”


철없던 어린 시절 치기 어린 행동으로 전과기록이 있다는 그(또는 그녀)는, 회사가 자신의 전과기록을 알게 될까 두려워하는 듯했다.


답장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떤 답을 주는 것이 맞을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정보를 줄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질문을 준 사람을 대해야 할까. 그 불안감 또한 과거의 당신이 저지른 일의 속죄 중 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과거를 반성하고 엇나가지 않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불리한 정보를 감추거나 들키지 않도록 하는 실용적인 팁을 주는 게 맞을까? 모든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 여기고 침묵하는 것 또한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여러 가지 생각 사이를 오가다, 차장님이 해주신 조언을 떠올렸다. 가슴은 따듯하게, 하지만 머리는 차갑게.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었다. 감정을 완전히 뺀 드라이한 정보의 집합체였다. 하지만 지켜야 할 예의와 태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상대의 사정을 다 알 수 없고, 저 질문을 하기까지의 배경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없다. 그걸 안다고 해서 나의 태도나 정보의 내용이 바뀌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서 저 사람에 대한 판단과 심판은 내 몫이 아니며, 나는 내게 주어진 해야 할 일을 수행해야 한다. 공정하게. 차가운 머리로.


KakaoTalk_Photo_2022-03-20-19-01-48.jpeg instagram : @maywithmayday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시간보다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이었다. 열정에 불타 종횡무진 폭풍을 일으키며 달려 나가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파릇파릇한 혈기 넘치는 신입사원이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선택은 여전히 어렵고 난망하다. 갈수록 조심스러워지는 나의 모습에서 옛 상사들을 떠올린다. 성장인지 낡은 것인지도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다만, 여전히 한 가지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공정. 공정하자고.


이렇게,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지원자들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 지금쯤 꽤 연차를 쌓았을 것이다. 결국 다 자기 자기를 찾아가게 마련이니까. 세상 일이 참 그렇다. 내 인생을 짓밟는 거대한 문제도, 지나고 보면 어느새 깎이고 쓸려 작아져버린다. 일에 대한 나의 치열했던 고민도, 어느샌가 점점 둥글어져만 간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갑니다. 일인데 뭐, 하다보면 다 되는거지, 그러다가 또,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싶고. 참 어려워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올챙이의 경험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상냥한 세상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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