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의 뮤지컬 사랑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친구 커플과 주말 더블데이트를 하고, 다음 약속 장소까지 차를 얻어 타고 가는 중에 받은 질문이었다. 차 안에는 에드 시런의 경쾌한 멜로디가 장난꾸러기 정령처럼 통. 통. 허공을 두드리고 있었다.
“케이팝을 많이 듣긴 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에요.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하게 들어요. 클래식도 듣고, 뉴에이지 같은 것도 좋아해요. 아,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뮤지컬 음악을 좋아해요.”
맞다. 잊고 있었다. 나는 뮤지컬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뮤지컬 음악을 좋아한다.
성악을 전공하셨던 아버지 덕에 어릴 적에는 클래식을 가까이 접했다. 주말이면 아버지에게 레슨을 받기 위해 제자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원비나 과외비를 감당할 수 없는 고등학교 제자들이 음대 입시를 포기하려 할 때면, 아버지는 그 제자들을 집으로 부르셨다. 레슨비는 무료였고, 학생들은 아버지에게 몇 달 간의 레슨을 받은 후 대부분 음대에 진학했다. 피아노가 있던 누나 방이 레슨실처럼 되어버릴 정도로 아버지는 제자를 가르치는데 공을 들이셨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예술 산업에 진출한 아버지 제자들은 수시로 각종 공연 티켓을 보내주었다.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연주회 같은 것도 있었고 그중에는 간혹 뮤지컬 티켓도 섞여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장르 중에서 뮤지컬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여기까지가 내 아내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지금의 내 아내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조금 다르다. (여보, 미안….)
군대를 제대하기 전까지, 나는 특별히 싫어하는 음악 장르가 없었다. 기껏해야 트로트의 자극적인 음색을 부담스러워했던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대단히 티를 낼 정도도 아니었다. 그렇게 미적지근한 태도로 대학과 군대에서 밴드부 활동을 했다. 포지션은 서브 보컬. 메인 보컬이 잠시 목을 쉴 수 있도록 공연 때 두어 곡을 커버하는 수준이었다. 특별히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남들보다 손쉽게 고음이 올라가는 성대를 선물해준 아버지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녀는 무척 특이한 사람이었다.
“밴드를 했었다고?”
그녀가 물었다. 예상치 못한 격한 반응에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랬…었어.
제대 후, 나보다 한 달 먼저 제대한 선임과 함께 영화관 스탭 알바를 지원했다. 4월 제대였던 나는 복학 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9월까지 할 일이 필요했다. 그런 내게 영화를 원 없이 볼 수 있었던 영화관 스탭 알바는 최고의 일자리였다. 이 때는 넷플릭스는커녕 유튜브도 없었던 시대였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영화관 아르바이트생들의 조직은 꽤 잘 갖춰져 있어서 입사 동기들끼리 끈끈한 동료의식도 있었고 선후배 사이의 친밀감도 상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정말 예쁘고 잘생기고 잘 노는 스태프들이 많았다. 주 4일에서 5일 정도 일을 나갔던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이 끝난 후 같은 타임의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거나 직원 할인으로 받은 티켓을 들고 내리 2, 3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 번은 새벽 늦게 다음 날 개봉할 영화의 필름 테스트하는 것을 보면서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나보다 한 달가량 늦게 스태프로 들어왔던 그녀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시크한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과장된 표정으로 웃을 줄 아는 사람. 한 번 웃음이 터지면 세상 떠나갈 듯 큰 소리로 폭소하는 그녀는 리액션만큼이나 큰 눈으로 상대를 또렷이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맞다. 무척 반짝이는 사람이었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무척 예뻤다.
아무튼.
비수기 시즌이었다. 나는 그녀와 4시간 동안 플로어에 배치되었다. 티켓을 검수하고 상영이 끝난 영화관을 빠르게 청소하는 일과 입장하는 관객을 안내하는 역할이었다. 그다지 흥행하는 영화도 없는 데다가 기말고사 기간을 코앞에 둔 평일 낮이었기에 정말 할 일이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입장하는 관객들의 티켓을 검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텅 빈 통로를 지켜보며 멀뚱멀뚱 서있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어떻게 대화가 시작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나는 그녀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쩌다 보니 대학교와 군대에서 밴드를 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나의 눈을 보고 이야기했다. 어떤 노래를 불렀었냐고. 그리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와 꽤 자주 어울려 다녔다. 바이런의 시를 사랑해서 영문과에 갔다는 그녀는 예술 계통의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흥미를 가졌다. 근무가 없는 날이면 함께 전시회나 영화를 보러 다녔다. 이를테면 ‘백남준 비디오 아트 전시회’나 ‘매그넘 사진전’ 같은 것도 있었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 ‘리버틴’, 그리고 ‘잠수종과 나비’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우리는 작품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댔다.
우리는 각자가 보았던 소설이나 영화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었다. 아니, 사실은 대부분 그녀가 말하고 나는 그녀의 가르침을 받는 것에 가까웠다. 대학 2년 동안 영미문학의 고전을 배웠기에 기초 지식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현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에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의 예술 세계를 따라가기에 나의 지식은 한참 부족했고, 그녀의 취향은 난해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가 영화관을 나서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음에 꼭 또 보겠다.”라고 다짐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내게 여전히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영화에 대해 좋은 점을 한가득 이야기하며 감독의 환상적인 실력을 추켜세우던 그녀에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내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는 그것으로 무척이나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충만함 가득한 그녀의 표정 속에는 순수한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도 이런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시와 극본을 쓰고 싶다는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공연이 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확신에 차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는 나에게 부족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헤드윅은 꼭 봐야 해.
“헤드윅은 꼭 봐야 해.”
뮤지컬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최애 작품이라며 두 눈을 반짝였다. 우리나라 배우들도 좋지만 오리지널은 정말 급이 다르다면서, 사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뮤지컬이라고.
“오빠도 꼭 봐.”
앞으로 바짝 기댄 그녀의 눈이 다그치듯 말했다. 기세에 눌려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말할 때까지 그녀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끔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다른 세상에 속한 것 같아 보였다. 신비로운 사람. 꼭, 날개옷을 빼앗겨 세상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동화 속의 인물 같았다.
헤드윅을 시작으로 내게 뮤지컬은 뭔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발라드, 락, 뉴에이지, 클래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이좋게 일렬로 서있던 곳에서 뮤지컬이 홀로 딱 반 발자국 앞으로 나와 섰다.
나는 솔직히, 둘이 잘 될 줄 알았어요.
그녀와의 예술세계 탐방은 오래가지 못했다. 9월이 되면서 복학생이 된 나는 차차 일을 줄였고, 중간고사가 지나가면서 일은 완전히 그만두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와의 연락과 만남도 뜸해졌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에, 내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그녀와는 연락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다음 해 겨울이 되어 나는 유학을 떠났다. 영문과 전공생 치고는 형편없는 영어 회화 실력을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떠난 어학연수였다. 분명 시작은 어학연수였는데, 미국에 건너간 지 한 달을 다 채우기 전에 학원 과정을 모두 환불하고 근처 대학의 편입시험을 치렀다. 한국으로 치면 2년제 전문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반년 후에는 캐나다로 건너가 영어교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들어갔다.
그녀와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된 것은 캐나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3개월간의 실습을 해야 했다. 일종의 교생 실습이었다. 출근길에 로컬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세상에. 여기 웬일이에요?”
영화관에서 함께 일했던 또 다른 동료였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두루 여러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친화력이 무척 좋았던 사람이다. 취업 준비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하러 왔다는 그녀는 한참을 돌고 돌아 그녀와 아직 연락을 하는지를 물었다. 2년가량 연락이 끊어졌다는 내 말에, 그녀는 아쉽다며 말했다.
“나는 솔직히, 둘이 잘 될 줄 알았어요.”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둘이 사귀는 줄로 아는 사람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고백도 못하고 마음 접은 남자들도 꽤 많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 번 연락해보면 어때요?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둘이 잘 어울렸는데.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메신저를 켰다. 혹시, 에이 설마. 아니겠지. 이런 마음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내?
널 만나러 갈게.
공백의 시간이 무색하게,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동안 그녀를 따라가기 버거웠던 내가, 조금씩 나의 해석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지난 2년은 내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두 번의 유럽여행과 외국에서의 생활은 내게 사뭇 다른 시야를 선물했다. 그 덕에 우리의 대화는 예전보다 풍성했고, 조금은 내가 그녀와 급이 맞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이라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 있다. 몸살이 걸린 것처럼 열기 가득한 대화에 몰입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이 함께 입을 다무는 그런 순간. 평소와 다른 어색한 공기를 느끼면, 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둘 중 한 사람은 감춰두었던 솜뭉치를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어 든다. 자, 여기 이게 있어. 꺼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건데, 되게 간지러운 거야.
언제 돌아와? 이런 이야기는 만나서 해야지. 이제 한 달 후면 실습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내게 그녀가 말한다. 돌아오면, 돌아오는 날에, 널 만나러 갈게.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해 그녀에게 남긴 문자에도 답은 없었다. 그렇게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도 태연하게, 잘 지내냐며 안부를 물었다.
“복학 준비를 하고 있어. 너는 어때? 이제 졸업이지? 대학원에 가는 거야?”
아니, 취업하기로 했어. 그녀가 말했다.
“항공사에 취업했어. 나, 이제 스튜어디스야. 다음 달에 아랍에미리트로 들어가. 숙소로 지낼 집까지 준대. 항공료 할인도 엄청나. 영화관에서 일할 때는 실컷 영화를 봤으니까, 이번에는 여행을 실컷 다니려고. 전 세계 대륙에 발자국을 다 찍어볼 거야.”
아프리카는 어떤 느낌일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이 어려운 시기에 한 번에 취업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바이런의 시를 사랑하고 있을까.
마치 꿈이었던 것만 같다. 타지에서 오랫동안 홀로 지내며 외로움에 지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좋을 대로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꿈속의 그녀는 내게 달콤한 약속을 했다. 돌아오면, 널 만나러 갈게. 그녀는 시를 쓰고, 자기가 쓴 극본이 무대 위에 펼쳐지길 두 눈을 반짝이며 상상하곤 했다.
아주 가끔 그녀의 안부가 궁금할 때가 있다. 꿈이 가득했던 예술가인 그녀는 여전히 상대를 반듯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녀의 눈에 담긴 중앙아시아는 어떤 색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바이런의 시를 사랑하고 있을까.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봄이 오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큰 걱정 없이 비행기를 타고 슝 떠날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세상을 탐험하는 사람에게 삶은 무한하게 경이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