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le Lee Dec 08. 2022

16주 초음파, 아기의 성별을 알다.

22. 엄마를 더 닮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

“아기 머리가 주수에 비해 조금 크네요. 아기 심장 잘 뛰고 있는 거 보이시죠? 양수의 양도 정상이네요.”


오늘은 지난번보다 좀 더 아기가 잘 보여주네요. 의사가 말한다. 그리고 반복해서 같은 곳의 단면을 오가며 체크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아기가 엄마를 좀 더 많이 닮았겠네요.”


확실한 건 아니니 4주 후에 한 번 더 볼게요. 의사가 말하며 나와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나도 아내도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벌써 여러 사람들의 기뻐하는 환호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기가 엄마를 좀 더 많이 닮았겠네요.


“어때요? 그토록 원하던 딸인 것 같은데?”


진료실을 나서며 아내가 묻는다. 아내의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한가득이다.


“음… 글쎄요? 사실 아들이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첫째는 딸이었으면 했었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 둘째를 가질 때는 아들이건 딸이건 정말 부담 없이 가질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내가 답했다.


“누나가 아들 둘을 키우는 걸 봐서 그런가, 나는 솔직히 아들 둘은 자신 없거든요. 그래서 첫째가 딸이라는 게 많이 안심이 돼요. 딸 둘이어도 좋고, 딸 아들 하나씩이어도 좋으니까.”


그런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4주 뒤에 다시 봐야 되는 게 맞겠죠? 너무 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가 갑자기 태어나서 아들이라고 하면 당황스러울 테니까. 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나의 말에 아내가 답한다.


“4주 후에 다시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아마 딸일 거예요. 보통 탯줄 같은걸 잘못 봐서 딸을 아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종종 있는 것 같은데, 아들을 딸로 잘못 보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거든요.”


아내의 말을 듣고, 아들인데 딸로 보일 정도로 존재감이 없으면 좀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군. 정말 곤란하다. 꼬물이가 아들이고, 초음파에 찍히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거라면 내가 너무 미안해진다. 게다가 나중에 아빠를 닮아서 이런 거 아니냐고 따지기라도 든다면 정말 난감해진다.


아무튼.


왜 의사는 우리의 표정을 살폈을까?


“아이가 엄마를 닮았을 거라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이 내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어요. 그런데 그 표정이, 뭔가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였어. 왜 그랬을까?”


나의 말에 아내가 답한다.


“혹시 아들이 아니어서 실망할지도 모르니까? 예전만큼은 아니라지만, 아직도 아들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있나?”


정말 순수하게 아내에게 묻는다. 어릴 적에는 대를 이을 아들은 하나 낳아야 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성인이 될 무렵부터는 그런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도, 나와 가까운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게서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남아 선호 사상이라니, 꼭 언젠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지배를 당했던 적이 있었지, 하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 생각은 호주제의 폐지와 함께 땅 속 깊이 파묻힌 과거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다. 내가 주변에서 보지 못한다고 하여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을 테고, 무엇보다도 산부인과 의사라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 할 테니 그런 케이스도 자주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의사 선생님한테 좀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줄걸 그랬나? 난 딸이어서 정말 좋은데. 선생님이 알려준 그 말이 좋았는데. 감사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좀 더 보여줄걸 그랬나 봐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비교적 진료실 안에서 무표정했던 우리를, 선생님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제 아버지는 우리 집에 살다시피 하실지도 몰라요.


검사를 마치고 각자 회사에 출근한 우리는 가족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기가 엄마를 닮았을 것 같다고 하네요.라고.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집안 첫 손주가 아들이건 딸이건 원래 그냥 다 좋으신 상황이었기에 큰 반향은 없었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누나에게서 두 아들을 보신 아버지는 특히 손녀에게 목말라있었다. 안 그래도 누나와 나를 키우실 때 누나를 그렇게 편애하셨던 딸바보 아버지였기에, 손녀가 생긴다는 말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는 꼬물이가 태어난 후에 매일같이 집으로 출근하실지도 몰라요.”


우리 아버지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운전해서 오셔도 두 시간은 걸릴 거리인데, 그렇게 자주 오시긴 힘들지 않으실까?”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한다.


“30년 동안 강남에서 부천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출퇴근을 하셨던 아버지예요. 수도권 내에서 아버지에게 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의지예요. 아빠가 누나를 키울 때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했는지 몰라요. 나는 던져놓고 키워도 누나는 달랐어요. 그런 아버지에게 손녀가 생겼으니, 난 아빠 못 말려요.


“유일하게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뿐이에요.”


나의 진지한 표정에 아내가 웃는다.


“그래요. 오시면 좋지 뭐. 와서 많이 이뻐해 주시면 좋겠다.”


아버지가 아닌, 내가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닌 내가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것은 차마 아내에게 말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 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다가 문득문득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이 그곳에 닿았다. 아, 딸이구나. 그렇구나. 딸이구나 하고.


그러다 갑자기 언젠가 보았던 아내의 유치원 시절 사진이 떠올랐다. 곱게 한복을 입혀 머리를 땋고, 심청이 역할로 연극을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 시절 아내를 닮은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게 다가와 손을 꼭 쥐며 말한다. 아빠. 아빠. 안아주세요 하고.


딸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아내의 배를 보는 기분이 달라짐을 느낀다. 아직 아이가 정말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일관했던 내가, 저 안에 아내를 닮아 예쁜 딸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 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각종 릴스나 쇼츠에 보이는, 누군가의 귀여운 딸의 애교 부리는 모습이 마치 곧 다가올 나의 미래인 것만 같아서. 그런 예쁜 딸을 가진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언젠가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직장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들을 낳으면 사고 칠까 봐 무섭고, 딸을 낳으면 누군가 딸을 헤칠까 봐 무섭다고.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왠지 벌써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 전 딸을 폭행한 일진들에게 무릎 꿇고 제발 딸을 보내달라고 애원한 부모에 대한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학생들 사이에 마약이 퍼지면서 10대 마약 중독자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는 뉴스도 떠올랐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좀 더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까지 즐기는 내가, 이토록 안전을 갈망했던 적이 있을까? 우리 아이가 살게 될 세상이 더 많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세상으로부터 잘 보호해주셨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강해져야겠다.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강해져야겠다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내 소중한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아빠가 가진 힘으로 지켜줄 수 있도록.


이제 나에게 작고 소중한 딸이 생길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나는 세상이 두렵게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리나와 차은우로 태교를 하고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