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커피를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일상의 향기

by Kyle Lee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뜬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 오늘 아침엔 유난히 웃풍이 돈다.


“아침밥 먹고 놀아야지. 약은 먹었어? 어디 가. 얼른 이리 와.”


크레셴도. 첫째 딸과 실랑이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에 맞춰 리드미컬한 박자가 깔린다. 척. 척. 과 쩍. 쩍.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두 손바닥이 교차로 장판을 때리는 소리. 둘째 아들 문 앞에 등장한다. 이제는 제법 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두 눈이 마주치자 더는 거칠 것이 없다. 순식간에 침대에 다가와 흘러내린 이불을 붙잡고 선 둘째는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울먹이기 시작한다. 아직 혼자 서는 게 전부라, 혼자 다시 앉을 줄은 모른다. 많이 자란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하찮다.


아이를 내려주자 이내 아내가 들어온다. 깼어요? 언제 나올 거야? 나 커피 한 잔만.


“어떤 걸로? 에스프레소, 아니면 드립?”


“아이스면 돼.”


아침부터, 목이 타네. 아내가 둘째를 안아 들고 거실로 나간다.






냉장고에서 콜드브루 원액이 든 병을 꺼낸다.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 원두를 직화 중배전으로 로스팅한 블렌딩이다. 비율을 잘 맞추면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 와인의 향을 만들 수 있고, 숙성을 잘 시키면 럼 같은 커피가 되기도 한다. 고심 끝에 품질이 좋은 원두 1kg을 사서 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적당한 콜드브루 레시피를 찾아냈다.


꽃과 과일향이 주가 되는 스페셜티 콜드브루를 시중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들어가는 품과 시간도 문제지만,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고생 끝에 만든 원액을 유리병에 담고 예쁜 라벨 스티커를 붙여 선물용 박스에 넣어 약속이 잡힌 순서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지난 한 해를 함께 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다가온 한 해에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게 돌리고 내게 남은 건 테스트용으로 레시피에 변화를 줬던 350ml 병에 담긴 원액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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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도, 선물로 돌렸던 그 최적의 레시피로 만든 콜드브루를 마시고 싶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작 제일 맛있는 건 내 몫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래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그들의 제일 좋은 부분을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초라하다. 미완성이다.






아내에게 줄 커피와 내가 마실 커피를 각각 유리잔에 담았다. 얼음과 물, 원액을 적절히 취향에 맞춰 비율을 바꿔 담는다. 목이 탄다는 아내는 물 넘기듯 커피를 삼키고, 자리에 앉은 내게 첫째가 다가오며 책 세 권을 내민다. 이거 읽어주세요. 고집과 짜증과 화가 부쩍 많아진, 미운 네 살이 된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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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풍경 속 나의 커피 한 잔에 담긴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보통 커피에 담기는 향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꽃 과일과 같은 가벼운 향이 주가 되거나, 아니면 캐러멜 초콜릿 견과류와 같은 묵직한 향이 주가 되거나. 전자는 가벼워 금방 흩어져 날아가고, 후자는 묵직하게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좀 더 가볍게 날아가는 일상 속 향기가 애틋하다. 묵직한 큰 일은 그 사실 자체로 기억에 닻을 내리나, 순간순간 찾아오는 감정의 향기들은 그 순간의 달콤함만을 허락하고 이내 허공에 흩어진다.


매일의 커피에 담긴, 흩어지는 순간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다 날아가버리기 전에, 열심히 낚아채 기표에 커피 향을 입힌다. 여기에 담기게 될 매일의 달고 쓴 순간의 향기 안에 진짜 내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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