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낮에도 달 뜬 것 아는 듯이
독감과 감기에 넝마가 된 우리는 주말 내내 온몸으로 두 아이를 돌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월요일.
오전 내내 이불을 덮고 있던 우리는 뜨거운 라면에 햄과 계란 파를 잔뜩 넣고 밥을 말아먹으며 밀어두었던 드라마를 본다. 고요한 창 밖으로 얕게 깔린 구름이 산을 타고 넘는다.
두 서브 연애라인 커플이 또 입을 맞춘다. 후루룩 면을 건져 올린 아내가 말한다. 또 키스해? 아주 그냥 눈만 맞으면 주둥이부터 갖다 대네. 뭘 번거롭게 떼. 그냥 쭉 붙이고 있지.
뭘 번거롭게 떼. 그냥 쭉 붙이고 있지.
실없는 소리로 한바탕 웃던 우리는 모처럼 밝은 햇살을 눈에 담는다. 너도 나의 웃음벨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어느새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다.
이런 웃음이라도, 몸이 아플 때는 보이지 않던 여유다. 여유가 생기니 지난 시간을 복기할 정신도 생긴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이쁜데, 너무 다그쳤나, 너무 겁을 주나, 혹시 너무 부실하게 밥을 차려줬나.
여유가 곧 후회가 되니, 우리는 늘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둘 중 하나다.
점심을 마치고 커피를 내린다. 2주 전에 사 두었던 온두라스 산타 클라라 파라이네마 위시드 중약배전.
드리퍼는 하리오 스위치. 물 온도 92도. 스위치 레시피는 늘 테스 카츠야의 악마의 레시피 고정이다.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레시피이지만 맛만큼은 확실하다.
분쇄한 원두에서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풍겨온다. 물을 붓자 다디단 귤 같기도 하다. 첫 모금에 단 감. 두 모금에 알싸한 레몬 제스트다.
쌉싸름한 일상이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아들을 둔 부모의 하루 같다. 뭘 해도 시트러스 과일 껍질 같다. 달콤한 과일의 쌉싸름한 부분을 골라 먹는 것처럼.
커피가 식을수록 알싸하게 오르는 산미를 단감의 묵직한 단맛이 감싸 안는다. 얼마 남지 않은 이 달콤한 평화를, 우리는 커피 한 잔에 녹여 마신다. 다시 쌉싸름한 우리의 전쟁 같을 저녁을 대비하여.
어느 드라마의 독백중 한 구절을 조금 손봐 스스로에게 들려준다.
낮에도 달 뜬 것 아는 듯이,
우리가 오늘 나눈 이 쌉싸름한 하루가
행복임을 안다.
레몬제스트. 오늘의 커피는 단감에 싸인 레몬제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