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엔 백신이 없다

07. 요즘 애 키우면서 무슨 생각해?

by Kyle Lee

커피 두 잔, 베이글 한 박스. 아내와 모처럼 데이트를 나와 브런치를 마치고 처가에 드릴 선물을 사서 차에 오른다.


“다 챙겼죠?”


아내가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차에 시동을 건다. 매장에서 먹었던 소위 ‘시그니처’라고 하던 그 커피보다 가장 쌌던 이 아메리카노가 훨씬 낫다. 상큼한 오렌지 계열의 시트러스 향과 꽃향기가 어우러진 꽤 고급진 맛이다. 바디감은 낮은 클린컵. 후미가 깔끔하게 떨어진다. 조금 워터리 한 느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커피라기보단 핸드드립에 가까운 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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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샷추 몰라요?


유행에 민감한 매장에 가면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놓곤 한다. 인테리어나 콘셉트에 과하게 힘을 주는 곳은 트렌드를 찾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곳이 많다. 직원들이 소화할 수 있는 능력치를 넘어선 고객이 오면 품질은 하락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설비를 사용한들 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결국 사람 손이 마무리 짓는 요식업의 특성이라고 본다.


매장에서 마신 커피가 그랬다. 오렌지와 인더스트리얼 미국 콘셉트, 그리고 베이글을 키워드로 한 이 신상 베이커리 카페는 화려한 외관과 비주얼만큼 나의 기대치는 낮아졌다. 그리고 시그니처 커피라고 해서 주문했던 ‘오렌지 주스’ 콘셉트의 커피는 내게 괴식에 가까운 감상을 남겼다.


“아샷추 몰라요? 이런 취향인 사람도 많아요.”


아내가 잔뜩 찡그린 나를 달래며 말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그만큼 다양한 취향이 있고. 그리고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아재가 되었고. 그러니 내 탓인 걸로 하자. 지금까지 아샷추가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라고 알고 있었던 나의 올드한 취향 잘못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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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 키우면서 무슨 생각해?”


선물로 드린 베이글을 잘라 드시던 장모님이 물으신다.


“애 둘은 많이 다르지? 둘째가 벌써 돌이 다 되어가네.”


장인어른 장모님과 육아에 대한 소소한 회고를 시작한다. 딸 키울 때와 아들 키울 때 그 성향의 다름에 깜짝 놀란다는 말. 둘째가 생긴 첫째의 질투와 신경질에 둘째가 어떻게 당하고 마는지에 대한 말. 그런데 꿋꿋하게 첫째에게 지지 않는 고집을 가진 둘째에 대한 말. 딸 사랑은 아빠, 아들 사랑은 엄마인 것 같다는 말.


“…그런데 이상하게 첫째가 자꾸 아빠에게 미운 말을 해요. 아빠 미워. 아빠 저리 가. 엄마만 좋아.”


아내의 말에 장모님이 물으신다.


“앞으로 더 심한 말 많이 듣게 될 텐데, 너 어떡하니? 나중에 막 상처받아서 우는 거 아냐?”


“그래서 밤에 서로 단련시키고 있어요.”


애들이 나중에 분명 이런 말 할 거라고. 나는 혼자 컸어.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이럴 거라고 수도 없이 이야기해요. 한 삼백 번 서로 이야기해 주면 실제로 애들한테 들었을 때 좀 덜 충격받겠지.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얘, 그래도 그거 실제로 들으면 느낌이 또 달라. 눈물 쏙 빠진다 너.”


묵묵히 베이글을 잘라 드시던 장인어른이 씩 웃으시며 툭, 한 마디를 던지신다.


“… 감기에는 백신이 없어.”


감기에는 백신이 없다


감기에는 백신이 없다. 그렇다고 감기를 두려워하며 살 일도 아니다. 기대했던 시그니처 커피의 맛이 좋지 못하다고 판을 엎을 일도 아니고, 의외로 훌륭했던 저렴이 커피에 흥분해 환호할 일도 아니다.


유행에 민감한 매장에 가면 기대를 내려놓는다. 훌륭해 보이는 것들의 배신을 나는 이미 많이 경험했다.


육아에 있어 그 어떤 훈장도 기대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 다짐 속에는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태반이고, 그럼에도 아직 의외의 기쁨을 기대하는 나의 작고도 거대한 욕심이 있음을 안다.





#광고 아닙니다.

#베이글 soso 괜찮습니다.

#오렌지 아메리카노는 정말 아닙니다.

#오렌지 크림라떼는 괜찮았습니다.

#산미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괜찮습니다.

#근데 좀 비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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