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공주 감옥이 시작되었다.

08. 내 딸의 대관식

by Kyle Lee

아이들 등원을 마치고 아내와 차에 오른다.


요즘은 아내와 외출이 잦다. 아내의 육아 휴직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마지막 한 달은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쓰자. 그런 마음으로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집에서 멀지 않은 베이커리 카페에 왔다. 수원 호매실 IC 근처의 “슬로 칠보하우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상 대형 베이커리 카페다. 빵을 좋아하는 아내의 취향과 커피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교집합 하면 나오는 최적의 데이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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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메뉴와 빵, 수프, 커피 두 잔을 사서 자리를 잡는다. 운 좋게도 우리가 간 층에는 손님이 우리 둘 뿐이다. 옥상으로 나와 루프탑을 지나서 나오는 방 같은 공간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듯했다. 욕심껏 주문한 메뉴들을 넓게 펼쳐놓고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우리는 배를 채워나갔다.


“한이 때문에 어제는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새벽 귀가 어두운 남편을 만난 죄로, 아내는 홀로 어둠 속에서 아이들과 외로운 전투를 벌이곤 한다.


“새 감기가 온 건지, 코가 꽉 막혀서 눕혀 놓으면 자꾸만 깼어요. 그래서 두 시간은 안고 소파에 앉아서 자다가, 잠깐 내려놨다가 다시 깨서 또 두 시간은 침대 헤드에 기대서 안고 졸다가, 둘째 침대에 같이 누워서 또 같이 조금 자다가.”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고 아내는 말한다.


“은이는? 잘 잤어요?”


“응. 잘 잤어요. 그런데….”


아내가 웃음을 참으며 목을 가다듬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어제, 같이 다이소에서 사 온 왕관이랑 마법봉이랑 액세서리들 봤죠?


“은이가 엄청 고심해서 직접 고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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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아이들 방에서는
딸의 대관식이 열린다



첫째 딸은 한창 겨울왕국에 빠져있다. 일주일에 단 한 번, 토요일이 되면 겨울왕국 1편을 보여준다. 일주일 동안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밥 잘 먹고, 낮잠 잘 자면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사실 최근 은이를 키운 공의 절반은 겨울왕국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은이는 엘사의 마법과 안나의 노크 소리에 빠져있다.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언니에게 눈사람 만들자고 조르는 안나가 되고, 동생이 기어와 누나의 장난감을 만지면 렛잇고를 외치며 얼음성 문을 굳게 잠그는 엘사가 된다. 잠을 자러 들어가면 동생 양말을 손에 끼워달라고 조르고는, 엄마에게 대사를 주문한다. 이것보렴. 감춰졌잖니? 그럼 은이는 대답한다. 감각이 없어요. 남이 보면 안 돼.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기면서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아내는 매일 밤마다 딸의 대관식을 치른다. 마법과 드레스의 세계에 푹 빠진 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를까? 남자인 나는 알 수 없는 세계다.



아무튼. 아내는 내게 갑자기 생각난 듯 질문을 던진다.


“아, 그런데 그 손가락 크기만 한 작은 왕관 왜 샀는지 알아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아내의 대답.


“나는 이걸 머리에 쓰려고 산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었어. 이거, 엘사가 왕관 던져버리는 거 따라 하려고 골랐더라고.”


그래서 어젯밤은 평소와 다른 대관식이었다고 한다. 직접 고른 장난감을 두르고, 아내가 씌워준 왕관을 우리 용감한 딸은 과감하게 벽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렛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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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겨울왕국1



오늘의 커피는 초콜릿 향



오늘의 커피는 진한 에스페로소로 내린 아메리카노. 에티오피아와 에콰도르 블렌딩 원두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산미 있는 커피와 고소한 커피 두 잔 모두 그저 진한 초콜릿에 묻혀 있었다. 달달한 다크초콜릿의 묵직한 바디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식어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커피의 단맛을 두고, 우리는 단 둘의 시간을 보내자며 나와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를 한다. 연애와 신혼 기간을 합해 12년을 단 둘이 보냈던 우리가, 이제는 아이 이야기를 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삼, 이제 우리는 넷이 되었음을 깨달았던.


달콤한 초콜릿 향이 가득했던.


커피 데이트였다.





#이번에도 광고 아닙니다.

#커피보단 분위기가 더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커피가 나쁘단건 아닙니다. soso 합니다.

#브런치 메뉴 중 소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세지 정말 맛있었어요.

#정가는 좀 비싼데 상시 할인 느낌입니다. 한 번쯤 가볼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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