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이 아닌 직업을 목표로 하라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볼까 한다.
처음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을 무렵, 내 나이는 이미 서른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년이 다르게 얼어붙어가는 취업시장은 서른 줄 넘은 늦깎이 신입 지원자에게 결코 너그럽지 않았다.
원래 타고난 성미가 자유분방했던 탓에,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손에 쥐어보아야 만족하곤 했다. 한 달간 열정 페이로 SBS 다큐멘터리 하청 제작사에서도 굴러보고, 쿵후 도장에서 부사범으로 아이들도 가르치고, 교육감 후보의 선거본부에서 일도 해보고,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연구조교와 행정조교도 해보았고, 캐나다에서 TESOL 자격증을 따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쳐보기도 했고, 프리랜서로 사진과 카메라의 바이럴 마케팅 프로젝트도 해보았다.
대학 입학 후 12년을 한결같이 제멋대로 살았던, 일관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내게, 취업시장은 만리장성보다 길고, 베를린 장벽보다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과연 내가 넘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 그런 벽 말이다.
취업시장은 만리장성보다 길고, 베를린 장벽보다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취업에 어려움을 느끼던 이들도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 모두 자신의 자리를 찾아냈고,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급여의 차이, 업무환경의 차이, 직장 인지도의 차이, 직무 난이도의 차이 등등,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당당함과 부끄러움이 갈릴 수 있는 그런 차이가 말이다.
나 또한 시작은 패자였다.
하지만 변명을 해보자면, 선택적 패자에 가까웠다.
요즘의 세태는 분명히 "대기업"을 승자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연봉만 보아도 심한 곳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니,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받는 보상의 차이로 인해 누군가의 업무의 가치가 2배라는 단순한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를 유능함과 무능력으로 연결 짓는다.
서른 두 살의 늦깎이 석사생은 기업에서 중시하는 직무 전문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나이만 대리 과장급으로 많이 먹은 "부담스러운 신입"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대기업에, 서른 두 살의 전문성 없는 신입은 돌아볼만한 대상이 아니었고 나의 서류 탈락 숫자는 어느새 세 자릿수에 달하고 있었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갈수록 심해졌고, 이는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아니, 실제로 회사에서 하는 일 중에 나와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자체가 내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그나마 다양한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다. 프리랜서로 유럽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이를 직접 바이럴 마케팅하면서 카메라를 홍보했던 경험을 살려 홍보 부서나 마케팅 부서에 도전했고, 어렵사리 몇몇 중소기업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첫 도전에서 합격한 어느 회사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입사를 거절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더 나은, 아니, 더 높은 페이를 주는 회사를 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룹 과외와 프리랜서 생활로 벌어들였던 돈은 웬만한 중소기업의 초봉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적지 않았다. 갑자기 수입을 낮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입사를 거절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입사를 거절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도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깊이 있게 묻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마케팅"이나 "홍보"업무를 평생 할 자신이 없었다.
흔히 10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직장생활은 길어봐야, 국수 뽑아내듯 길게 길게 잡아 늘어뜨려봐야 60년이다. 그럼 나머지 40년은 무엇을 해야 할까.
홍보나 마케팅이 흥미 위주의 보조적인 아르바이트였을 뿐이었던 내게, 이 일을 회사에서 30년 동안 할 자신도 없었으며 뜨거운 열정이 없기에 "잘" 할 자신도 없었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에 이 커리어를 통해 나머지 40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그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깊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취업 시즌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 가장 먼저 했어야 했던 일을 시작했다.
"나는 평생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정말 즐겁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 일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중 나에게 가장 보람을 주었고, 가장 즐겁게 몰입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채용공고는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 어느 곳에도 지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급함을 멀리하려 했다.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동안 취업 준비를 위해서라며 소홀했던 친구들을 만나 최대한 많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친구는 너무나 잘 풀려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행복해했고, 어떤 친구는 몇 년이 넘도록 취직이 되지 않아 백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떤 선배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고, 어떤 후배는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을 무렵, 나는 문득 "직무"가 아닌 "만족감"의 원천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직무를 기준으로 찾으려 하니 답이 보일 리가 없었다. 나라는 인간이 딱딱한 한 단어로 되어있는 직무에 테트리스 조각 맞추듯 그렇게 맞춰질 리가 없었다.
본질로 돌아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사람을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고, 나로 인해 더 나아지는 누군가를 보는 것이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서포트하고 챙기는 것이 업무가 되는 직무.
답이 보였다.
"인사"
그중에서도 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일이 되는 직무, "교육"
이 시기부터 인사와 관련된 직무를 찾아 지원하기 시작했다. 경험 속에서 세부 직무와 관련된 것을 찾아 연결 지었고, 현실적인 커리어 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한 작은 기업교육컨설팅 회사의 최종 면접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한 헤드헌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취업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보고 전화했다며, 면접을 제안한 것이다. 회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애플"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 IT업계의 두 기둥 중 하나의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비록 계약직이었으나, 현재 최종면접을 앞둔 회사의 연봉보다 두 배 가량 높았고, 애플에서의 경력은 어쨌거나 차후 이직을 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락을 받은 바로 다음 날, 떨리는 마음으로 애플코리아 본사가 있는 아셈타워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얀 벽면에 양 쪽으로 뚫린 유리문. 가운데 통로를 지키는 정장 차림의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자, 마치 미국 애플 매장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인테리어가 반겨주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던 그 날의 설렘은 아직도 잊기 힘든 경험이다.
두 번의 면접이 있었다. 인사 담당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한 후, 바로 현업 팀장과의 1:1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직무는 iTunes Editor의 역할이었다. 아마도 헤드헌터가 기존에 홍보/마케팅 분야에 지원할 때 썼던 이력서를 보고 면접 진행을 요청한 듯싶었다. 외국계 기업, 그것도 IT 최고의 공룡 중 하나에서 업무를 배울 기회였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을 모두 깨워 면접에 임했음은 결과가 이야기해주었다.
그렇다.
면접을 본 3일 후, 헤드헌터에게서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현업 업무가 바빠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겠냐고 하면서.
가끔,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애플에 입사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전 날 최종 합격한 중소기업에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정규직/계약직의 차이로 인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애플은 웬만한 회사의 정규직보다 더 많은 월급을 약속했었고, 애플에서의 경력은 당연히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 그려본 길에 "마케팅"이나 "홍보"는 없었다. 그건 내 길이 아니었다. 작은 회사지만, "인사"라는 내 길의 연장선에 있는 이 회사가 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회사 타이틀에 얽매여 애플을 선택한다면, 나는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장사를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회사지만, "인사"라는 내 길의 연장선에 있는 이 회사가 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연 200억 매출에 직원 수 100명 남짓의 작은 회사에서, 나는 20개가 넘는 국내/외국계 대기업 인사팀의 인사/교육 담당자들을 만나고, 신입 교육에서부터 해외 주재원 교육까지 다양한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했다. 때로는 한 달이 넘도록 고객사의 인재개발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업무를 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배움을 통해 점점 인사 직무를 이해해가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국내의 한 대기업 그룹 계열사에서 본격적인 인사업무를 시작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단순한 것을 어렵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직무도, 기업 타이틀도, 결국 "나"를 거쳐가는 하나의 통과점일 뿐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내 일생을 돌이켜 "참 재미있었다."라고 이야기할 나 자신이 아닌가.
직장 타이틀은 잠시 빌려 입는 옷이며, 보상의 차이도 영원하지 않다.
"직장"을 보기보다는 "직업"을 바라보며 길을 잡길 바라는 마음이다.
직장 타이틀은 잠시 빌려 입는 옷이며, 보상의 차이도 영원하지 않다. 직장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으며 내가 그 직장 자체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된다.
채용담당자가 알려주는 취업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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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팀 직원이 알려주는 인사업무 비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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