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51차 상담심리사 자격심사
얼마 전, 면접 심사에 합격하는 것으로 한국상담심리학회(이하 한상심) 상담심리사 2급 자격증 취득 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시험뿐만 아니라 시험 외적으로도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탓에, 합격을 해놓고도 복잡한 마음을 떨치기 어렵네요. 자격을 취득하는 데에 계획보다는 우연 내지 운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아, ‘합격수기’가 아닌 ‘후기’ 정도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석사과정에 입학한 직후 여러 우연이 겹쳐 남들보다 빠르게 상담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1학년 때 상담의 기초 기술을 배우고 2학년 때 상담 수련을 시작해 졸업 후 자격을 취득하는 루트를 따르게 되지만, 일찌감치 상담 수련을 시작한 덕에 취득 시점을 1년 정도 앞당길 수 있었어요. 상담심리사 2급 자격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의 상담경력이 필요한데, 그 기한이 시험 보는 해의 8월 말까지입니다.
졸업하기 전에 자격을 취득하려면, 적어도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상담을 시작해야 해요. 외부에서 내담자를 구해 상담을 진행하고, 이를 주수퍼바이저에게 상담경력으로 인정받으면 돼요.
주수퍼바이저는 수련생의 수련 과정을 보증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전체 수퍼비전의 30% 이상을 주수퍼바이저에게 받아야 시험 응시가 가능하므로, 누구를 주수퍼바이저로 정하는지가 수련의 질과 고생스러움(?)을 좌우하게 되지요. 자신에게 맞는 수퍼비전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미리 공개사례발표를 찾아다니며 다양한 수퍼바이저의 수퍼비전 스타일을 파악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수퍼바이저마다 주수퍼바이저를 역할을 수락하는 방식 내지 조건이 꽤나 천차만별이라 사전에 이를 확인하는 작업 또한 필요합니다.
주수퍼바이저를 선임할 때는 1) 얼마나 연락이 잘 되는지, 2) 수련생의 입장을 얼마나 배려해주는지, 3) 수련생의 요청에 얼마나 호의적으로 응해주는지를 고려해야 해요. 수련을 다 마치고도 주수퍼바이저가 협조해주지 않아 자격 취득에 실패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으므로, 되도록 다양한 루트를 활용해 해당 수퍼바이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후 결정하기 바라요.
내담자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면, 한번 할 때 MMPI-2, SCT와 같은 기본적인 검사는 물론 HTP, KFD와 같은 투사적 검사와 TCI, STRONG과 같은 객관적 검사를 함께 실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상심의 심리검사 실시 개수 집계 방법은 복잡하기로 유명하고, 운이 없으면 검사를 실시하고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상심 윤리강령에는 필요한 경우에 한해 내담자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하지만, 정작 수련 장면에서는 빡빡한 수련요건으로 인해 내담자에게 여러 심리검사를 추가로 권하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지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러 번 공유된 바 있으나 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이 대목에서 할 말이 많아질 것 같은데… 간단히 요약하면, 1년도 더 전에 게재된 공지와 40여 페이지가 넘어가는 매뉴얼 중 딱 한 페이지에 실린 한 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제출해야 할 서류가 누락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올해부터 달라진 데다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여러 번 안내되었어야 마땅하지만… 이에 대해 공지된 적은 한 해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다행스럽게도 공지 미비에 대한 아고라 청원의 정족수가 충족되어 구제책이 빠르게 마련되었고, 별 탈 없이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지만… 그간 겪어야 했던 심리적 부침은 아직까지도 글로 잘 정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격검정 FAQ, 매뉴얼, 적어도 최근 2년간의 공지는 당연하고, 가급적 공개되어 있는 자격검정 Q&A까지 하나하나, 미심쩍은 것은 키워드로 검색해가며 편집증적으로, 철저히 확인하기 바라요. 이때 당해 시험을 치르는 수련생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이해도를 점검하는 과정도 도움이 될 거예요. 저는 이마저도 실패한 탓에 저희 전공 응시자 전원이 탈락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만요.
필기시험은 수련생을 떨어트리는 데에 주안점을 둔 시험입니다. 이상심리학 파트에서는 성기능장애의 진단기준을 묻기도 하고, 심리검사 파트에서는 Rorschach 검사의 채점 내용이 죽 제시되기도 합니다. 과락(40점 미만) 없이 평균 60점만 넘기겠다는 생각으로, 수련생 대부분이 보는 청소년상담사 기출문제를 8-90% 이상 맞출 수 있을 만큼만 대비하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입니다. DSM-5의 진단기준과 각 과목의 전공서에 담긴 지엽적인 내용까지 암기하면 암기할수록 더 많은 득점으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높아지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네요.
이전에 임용시험을 치르며 관련 내용을 면밀히 학습한 적이 있기에, 그 기억을 되살리며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는 선에서 준비를 마쳤어요. 이전에 상담과 관련된 이론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시험을 준비한 적이 없다면, 전공서 내용을 꼼꼼히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거예요. 그러려면 얼마간의 기간을 잡아두고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노력을 들어야겠지요.
면접시험은 출제 유형이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사례 및 심리검사 결과에 입각한 내담자의 (잠정적) 진단명
사례 및 심리검사 결과에 입각한 상담목표 및 개입 전략
이론에 따른 인간관과 상담사 역할
이론의 핵심개념
이론에 대한 개괄적 설명
사례에 대한 윤리적 판단
사례에 적용 가능한 윤리적 대처방법
윤리강령 조항 내용
이번 시험에서는 내담자 사례 1개와 윤리적 이슈가 담긴 사례 1개가 각각 제시되었습니다. 내담자 사례는 입실하기 전에 읽어볼 기회가 주어졌고, 윤리적 이슈가 담긴 사례는 입실한 후 앉은 자리에서 1분 안에 읽어야 했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떨렸는데도, 막상 입실하고 나니 차분하게 가라앉은 톤으로 답을 말하고 있는 제 모습에 스스로, 짐짓 놀랐습니다. 윤리 문제에서 꼬리질문이 들어와 다소 당황했지만, 그것 말고는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무난하게 답한 것 같았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요.
면접에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가 몸에 배어 있지 않다면, 스터디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부적절한 버릇이나 습관을 확인하고 고치는 과정이 필요해요. 많이 떨리더라도 상담사로서 가져야 할 차분한 톤을 잃지 않고 답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면접실 분위기는 임용시험 때보다 훨 나았고, 세 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이 웃어주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 이로부터 심적 안정감을 얻기도 했어요. 다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으니, 연습할 때 일부러 딴짓을 하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면접관 역할을 돌아가며 해보는 것을 권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