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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01.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1, 선우 맘 서유재          

      

 10 승환 맘 이야기        

  

한참 동안 옛날을 소환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다 집에서 전화 올 시간이 가까이 되어서야 그녀들은 서로를 어색해했던 진짜 속마음이 나왔다. 아이가 장애라는 원인 모를 죄의식이 자리 잡은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서로 거울을 보듯 상대의 행동들이 이해도 되었다. 한적한 카페의 구석 자리는 석양처럼 가라앉았고 둘의 얼굴은 노을처럼 발갛게 물들었다.    

  

“언니 정말 반가워요. 여기서 뵙게 된 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지만……. 그이가 학교 관두고 정말 고생이 많이 했어요. 그때 언니 병원 개업 소식 들었어요.”   

  

김지우는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최연수와 몇 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했다. 남편 최연수는 엉뚱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결혼하자마자 학교를 관두고 영재학원을 차렸다. 그러다가 몇 번의 실패를 거쳐 지금은 학원가에 교재를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사업이 자리를 잡을 즈음해서 아들 승환이가 자폐 판정을 받게 되었단다. 남편과 의논 끝에 김지우는 아들의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하고 이 어린이집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언니 저는 교사 출신이잖아요. 그것도 초등학교…. 


그래서 우리 승환이 자폐 판정 후 교육을 어떻게 할지 생각을 많이 해 봤거든요? 우리 애들이 학습 능력이 조금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승환이는 교육을 조금 일찍 해 보려고 했는데 뭐가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특수교육에 관해서도 알아봤는데 제가 몰라서 그런지 너무 구체적이지 못해서……. 사실은 제가 부담스러워서 하기 싫었어요.”   


       

집에서 전적으로 교육하겠다는 생각은 일단 접고 김지우는 승환을 보낼 특수학급이 있는 유치원에 방문하고 상담을 받았다. 조건이 좋은 단설유치원은 집에서 많이 멀었다. 시설도 환경은 마음에 들었지만, 특수학급과 교사가 따로 없었다. 1명의 특수교사와 실무교사가 요일을 바꿔가며 승환을 보게 될 거라고 했다.   

   

그다음에 가 본 집에서 차로 이십여 분 걸리는 병설 유치원은 5, 6, 7세가 스무여 명 통합교육을 받고 있고, 내년에 특수교육 대상자는 승환이 포함 두 명이었다. 유치원 환경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고, 마침 상담하는 날 간식으로 배달 피자와 치킨을 먹이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특수교사와 실무교사가 계속 아이와는 함께 있다는 이유로 병설 유치원에 보내려 생각했는데 상담하던 선생이 결정적인 말을 한다.     

 

“너무 교육효과를 기대하지는 마세요. 이 아이들의 특성상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아요. 수업 진도도 잘 못 따라갈 거예요. 인지적인 부분이 그럴 거예요. 여긴 장애아이 위주가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지도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상담 선생의 말투가 귀찮아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이래도 보낼 건가요? 묻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결국 승환이를 집에서 교육할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근처 초등학교에 있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보냈다. 그곳에서는 승환이 발달 정도에 맞춤 수업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선뜻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가 낫겠다 싶었다. 몇 번 수업을 받아보며 김지우는 결과에 상관없이 선생님이 애쓰는 노력이 고마웠다. 이런 선생님이 많아 매일 수업 지원을 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이 들풀 어린이집을 알게 돼 여기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지우는 장애아이의 부모로 사회에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모르는 길을 처음 만나듯 두렵고 힘들기만 했다고 한다. 모두의 눈치를 보면서 뭐든지 주눅이 들고 사정하듯이 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김지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들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화가 나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걸 겪기 싫어서 피한 걸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지우야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는 마. 우리도 정신 건강상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난 사실 엄마한테 아이 맡겨 놓고 현실을 피했었어. 그래도 많이 힘들었어. 근데 최근에 어떤 생각이 들었거든, 그건 ‘왜 우리 아이들의 장애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가?’ 야. 우리는 아이들의 장애만 없으면 이렇게 힘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의 불행이 진짜 아이의 장애 때문일까?”   

  

“행복, 불행 이런 건 너무 어려운 이야기예요. 저는 단지 하루하루 승환이가 조금씩이라도 좋아졌으면 해요. 그러면 남들이 뭐라 해도, 조금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승환이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예뻐요. 그래서 가슴이 너무 아파요. 뭔가를 제대로 못 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지우의 눈에 물기가 어린다. 둘은 그렇게 한참 동안 마음을 나눴다.     

 

그날 이후로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동안 속에만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아이나 남편의 이야기도 후배 김지우에게는 자연스레 나왔다. 두어 달이 지나가며 정기모임도 두 번이나 참여했다. 정기모임이 아니더라도 엄마들과 잡담 시간을 자주 가졌다. 승환 맘 지우 덕분에 그들과 만남이 자연스러워졌다. 정신과 의사 서유재는 어느새 낯설었던 선우 맘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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