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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16.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육아 품앗이           

       

     

육아 품앗이 발표회   

  

서유재와 김지우의 육아 품앗이 이야기를 들은 부모회 회장 이옥자는 그녀들의 육아 품앗이 경험을 부모회에서 발표해주었으면 했다. 서유재도 그런 기회를 얻고 싶긴 했지만 스스로 말하겠다고 나서기 뭐해서 그냥 있던 차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정기모임에 발표자로 나선 서유재는 간단한 인사말과 소개를 시작으로 말을 시작했다. 육아 품앗이 소문에 기대에 찬 엄마들의 눈빛들을 느껴졌다.    

  

“저는 이 어린이집 원생 선우 맘이자 정신과 전문의입니다. 제가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관점에서 우리 엄마들을 생각 한번 해 봤습니다. 장애아이의 엄마 대부분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행의 원인을 아이의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요? 왜 아이가 장애가 있는데 우리가 불행할까요? 엄마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렇죠.   

   

지금 우리 아이들 또래의 지능 정도는 비장애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이니까 발달과정에 나중에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회에 합류하지도 경쟁대열에 서지도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드는 거죠. 엄마니까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고 그런 아이가 불쌍하고 자신은 그런 아이를 평생 뒷바라지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불행한 겁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안 될 거라는 예단을 하고 현재 불행한 겁니다. 이렇게 미래에 불행할 것이라고 현재 불행할 것 같으면, 인간은 모두가 불행한 존재죠. 왜냐면 인간은 모두 늙으면 병에 걸리고 또 죽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에는 또 몇 가지 생각의 오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불행해하는 건 우리가 나중에 일어날 문제를, 다시 말하면 나중에 일어나지도 않을 수 있는 일을 미리 그럴 것이다라고 예단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 예단에 의한 기대치 상실만 빼면 아이의 육아가 실제로 우리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조금씩 느릴 수도 또 못 할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저기서 숙덕거리는 소리와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서유재는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우리 불행의 원인은 아이의 미래가 주는 불안감 때문이죠. 그런데 그 미래는 왜 그렇게 우리에게 불안을 줄까요? 그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사회 시스템이 아니라서 그런 겁니다. 당장 우리 아이들이 일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못 갑니까? 아니죠, 우리가 안 보내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곳의 시스템이 우리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거니까요. 왕따도 당하고 폭력도 당해서 아이가 상처를 입을까 봐 그렇죠. 그래서 이 들풀 어린이집에 오는 겁니다. 이 어린이집은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되니까요. 이렇듯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시스템을 하나씩 찾거나 만들어 주면 되는 겁니다.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마시고 또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선 눈앞의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되는 일입니다.  

       

저도 선우가 자폐 판정을 받고 불행했습니다. 그리고 한 일이 아이를 아이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저는 병원에만 가서 일했습니다. 막연하게 현실이 두려워 일을 핑계로 도피한 거죠. 그러면서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죄책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아이한테 미안하고 어머니께도 죄송하고요. 그러다가 한 우울증 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도 우리와 같은 발달장애 아이가 있었어요. 그분이 상담 중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문젠 가요? 남편과 저에게는 아이의 장애가 전혀 문제없어요. 그런데 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 아이의 장애가 문제라고 지적할까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요? 혹시 나의 그런 생각이 일종의 병인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누가 머리를 한 대 친 느낌이었어요.    

       

그분의 우울증은 아이의 장애가 원인이 아니라 장애라는 고정관념에 의한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그로 인한 폭력 탓이었습니다. 저도 내가 이러는 이유가 내 아이 선우의 장애 때문일까? 왜 아이의 장애가 가족이 불행해지는 이유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한번 연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 불행의 실체가 진짜 아이의 장애 때문인지…. 그러다가 선우의 육아와 교육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교육해봤자 별 효과 없을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예단함으로 포기했던 선우의 교육을 다시 제가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힘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예단으로 인한 심리적 힘듦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힘이 드는 거죠. 병원 일에도, 아이를 돌보는데도…….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아이에 매달려 사회와 관계가 변하고 지쳐버린다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엄마들이 다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더 그렇잖아요. 그래서 승환 맘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서로 육아를 조금씩 도와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돌봄을 서로에게 조금씩 맡겨 보기로 한 겁니다. 먼저 아이에게 매달려 있는 시간을 조금 줄여 우리 개인의 시간을 좀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죠.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불행을 느끼는 줄 아세요? 어제도 불행했는데 오늘도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불행이나 행복은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작은 이벤트 같은 거라서 그런 겁니다.

      

우리 두 가족은 육아 품앗이를 하면서 작은 행복들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맡겨 놓고 온갖 걱정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그런 일들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몇 번 그런 과정을 보내고 나니까 이제는 아이를 서로에게 맡겨 놓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시간에 영화도 보러 갔고요, 네일샆에도 들렀습니다. 저한테 주어지는 작은 휴식 같은 시간이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박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모두 서유재의 행복을 간접 체험하듯이 신나 보인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 불행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서로 함께 지혜를 모으고 도와가면 더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옛 어른들도 불행과 행복은 함께 나눠서 겪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불행의 강도는 약해지고 행복은 더 커진다고.           

지금부터 우리가 경험했던 승환 맘과 저의 가벼운 육아 협업의 경험으로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동기는 여기 계시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맘은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며 너무 아이에게만 올인하느라 점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부모 친목 모임을 제외하면 거의 사회와 단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장애아이가 있는 가정의 대부분이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장애에 관한 여러 가지 사회적 편견과 불합리한 제도 등으로 겪게 되는 불편함은 미뤄두고, 가장 현실적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우리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가고 돌보는 데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우리라면, 우리끼리라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모두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만나면서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거리가 가깝거나 친한 사람끼리 서로 아이를 돌봐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서로 도와서 서로의 육아 경험을 공유하면 아이들 육아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를 돌봐줄 믿을 만한 사람이 여럿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으로 우리에게도 시간의 여유가 조금 생깁니다. 승환네랑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애들 아빠도 아이들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잠깐이지만 아이를 떠나 있는 동안 아이에 관한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었고요……. 여러분께도 저희처럼 어린이집 외의 시간에 서로 아이들을 돌보고 맡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며 육아 품앗이 경험에 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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