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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14.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육아 품앗이              

      

   

4 Newton Dee- CAMPHILL의 인연   

  

부모회 회장 이옥자는 대학 때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다. 대학을 떠난 후는 대안학교 교사와 외국의 장애인 공동체에 수년간 봉사한 경험이 있었다.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던 그녀는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로부터 숨겨진 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보다 두 살이 많던 언니는 장애가 있었고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설로 보내졌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어릴 때 죽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어렵게 꺼낸 어머니는 그 일이 평생의 한으로 맺혀있다며 가슴을 쥐어짜듯 우셨다.      


“엄마가 네 언니를 위해 한 일이라곤 화장시켜 날려 보낸 일 뿐이야. 장애 때문에 시설에만 갇혀 살았는데 죽어서는 넓은 세상 마음껏 돌아다니라고….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어. 그때는 너무 못살아서 너무 없어서…….”     


그날 어머니는 그녀를 꼭 안고 울면서 신을 원망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게 했으면 그들이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만들어 놔야 하지 않냐고?! 

장애를 주고 그들의 짧은 일생으로 그걸 보상한다면 그건 너무도 잔인한 처사잖아. 세상이 지옥도 아닌데……."     


그녀의 원망 어린 말은 신에게 라기보다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다. 엄마의 이 독백 같은 원망은 이옥자의 마음속에 그때부터 자리 잡아 평생을 함께했다.    


            

예민하던 시절 충격적인 사실에 그녀는 한동안 남모를 죄책감으로 방황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녀는 공부만이 탈출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다행히 명문대학교에 입학해서 집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집을 나와 자취를 했다.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언니에의 미안함은 동아리에서 운동권 학생들을 만나면서 사회적 정의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행동 없는 반성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주장하며 그녀는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운동권이 된 그녀는 기득권들을 위한 제도와 세상에 반항하기 시작한다. 사회의 불평등을 쫓아다니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는 대학 3학년 때 큰 결심을 한다. 그녀는 ‘대학이 학문보다 갑이 되는 법만 배우는 곳이었던가? 정의가 없는 대학에서 그런 단순 졸업장 한 장을 얻기 위해 이만한 시간과 비용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라는 대자보를 써 붙이고 공개적으로 자퇴를 선언했다. 당시는 의식 있던 대학생들의 기성 사회에 대한 항의가 자퇴라는 형식으로 번지던 시기였다. 그녀도 그 외침에 동참을 한 것이었다.   

   

대학을 그만둔 뒤 그녀는 장애아이들을 위한 특수 대안학교에 가서 임시 보조교사로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국의 캠프힐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여 산다고 했다. 이옥자는 아일랜드의 뉴턴 디 캠프힐 공동체로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그녀는 기존 체제의 학벌과 경쟁을 거부한 대가로 사회에서 명문대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잃었지만, 대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캠프힐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한적한 전원생활 같은 환경과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가족은 봉사하러 간 그녀를 오히려 힐링을 시켜 주었다. 혈육처럼 살갑게 보이는 캠프힐 가족의 구성은 하우스를 운영하는 부모인 하우스 페어런츠(house parents 장기 봉사자)가 있고, 하우스 페어런츠를 도와 함께 일하는 코워커(coworker 자원봉사자) 들, 그리고 빌리저(villager 장애인)가 함께 살았다. 이들은 함께 살면서 각자가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해나갔다. 아침 식탁은 누가 준비하고, 점심 요리는 누가 할 것이며, 저녁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모두가 자신들의 몫을 해가며 평화롭게 유지되었다.     

     

코워크로 그녀가 머물렀던 공동주택에는 부부였던 하우스 페어런츠(부모 역할의 장기 봉사자), 그리고 장애인 몇몇과 코워커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모두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녀가 첫날 도착해서 맞은 저녁 식사는 잊을 수 없었다.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식사하며, 그녀를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각자 자기가 만든 음식을 소개했는데, 그녀 앞에 앉아있던 다운증후군 소녀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만든 음식을 덜어주었다. 그때 그녀는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도 이런 곳에서 살았다면, 나에게 음식을 해주고 이렇게 쑥스러운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본 적도 없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던 언니가 선명하게 생각 나는 식사 자리였다.   


        

코워커의 일과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선임 코워커는 이옥자를 데리고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모든 코워커는 처음에 캠프힐에 오면 그곳의 문화와 규칙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은 새로 온 코워커들이 모여 같이 받았는데, 간단한 병에 대한 약 투입법과 발작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한 대처법 같은 것 등 그곳 생활에 필요한 여러 일을 배웠다. 이옥자는 캠프힐의 환경과 자원봉사자들의 일이 생각보다 체계적이라는 것에 놀라웠다. 그리고 각자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도 새로웠다. 교육과 몇 주의 실습 후, 그녀는 본격적인 코워커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캠프힐의 시스템이,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너무 좋아 보였다. 

         

그녀가 한껏 캠프힐에 정이 들었을 무렵, 같이 지내던 50세의 하우스 페어런츠의 마더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잘하기 위해 대학 과정에 등록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이옥자는 감동하였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 아줌마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돕고 싶었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은 3년의 계획이었던 그녀를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머물 게 만들었다.           

잠이 길면 꿈도 많아진다고 길어진 기간만큼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팀으로 일하던 하우스 파더와의 갈등, 하우스 페어런츠의 이혼, 돌보던 장애인의 항암 투병 등의 힘든 일을 겪는 과정에서 영혼의 동지인 들풀 어린이집 원장 김은경과 영혼의 반쪽인 지금의 남편도 만나게 되었다.   

   

김은경을 처음 만났을 때 이옥자는 그녀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여기에 있는 빌리저들은 모두 장애인이에요. 그럼 사실 우리 같은 일반 노동을 제공하는 코워크도 필요하겠지만 선생님 같은 전문 공부를 한 사람들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김은경은 그녀를 묘한 정감이 담긴 표정으로 잠깐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안아준다.    

 

"아직은 때가 안 된 거죠. 이 정도의 시스템도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요. 하지만 이옥자 선생님이 말하는 전문가들이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여 주는 시절도 꼭 오겠죠. 선생님 같은 분이 많아지면요."    

 

그때부터 이옥자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곳 생활 3년 즈음에 한 한국 청년이 코워커 자원봉사로 오게 되었다. 이옥자는 그와 급속히 친해졌고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곳 생활은 그들이 한국에도 이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끝이 났다. 둘은 굳은 다짐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했다. 그리고 딸 예원을 가지게 된다. 그녀는 임신 중에 아이가 다운증후군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예원을 낳았다. 그녀는 공동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언니가 예원으로 자기에게 왔다고 생각했다. 예원이 자라면서 수소문 끝에 김은경 선생을 만나게 되고 ‘들풀 어린이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다시 만난 원장 김은경과는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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