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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Dec 27. 2021

소설 캠프아라리

1화 들풀 어린이집

별이 빛나는 밤          

     

       

쿠바 이야기    

     

“쿠바를 갔다 온 어떤 특수교사에게서 쿠바의 다운증후군 학교 ‘Hogar Castellana(오가르 까스떼야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학교 교육의 목적은 쿠바의 언어인 스페인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자립 능력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교육은 6살∼18살까지의 학생을 장애 정도나 교육 능력에 따라 1∼7등급으로 나누고 각자의 수준에 맞는 무학년제 수준별 교육이라고 합니다. 이건 대단한 겁니다. 발달장애의 가장 큰 문제인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독립생활을 목적으로 둔 것이죠. 교육의 초점을 교육과정과 성과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지적 수준에 맞춘다는 이야기죠.     

      

이 학교 이야기는 놀라운 점이 많았습니다. 학생 60여 명에 교사 12명과 보조교사, 의사 3명, 간호사 22명, 심리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건비가 싸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너무 비교되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발달장애지만 치료와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볼 수 있잖아요.

           

학교 내에는 유기농장, 수예품 공장, 학교 세탁소, 식당 등이 있고, 그곳에서는 7급 이상의 과정을 수료한 100여 명의 이 학교 졸업생들이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학교를 졸업한 3만여 명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농장이나 수공업 등의 분야에서 일하며 적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수준의 학교라면 무책임하게 단순 기능 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책임교육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동체 마을의 기능까지도 한다고 봐야죠. 캠프힐이라는 공동체는 잘 아시죠? 슈타이너의 인지학을 바탕으로 교육과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유럽에 꽤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100여 군데가 있죠. 쿠바의 이 학교를 보면 그런 공동체를 국가가 제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운증후군 학교인 ‘오가르 가스떼야나’만 보더라도 면적이 약 1만 5천 평 규모로 학교와 각급 시설, 농장 등이 모두 한 울타리 내에 있다고 합니다. 농장에서는 이곳에서 필요한 채소를 유기농으로 키워서 먹거리를 해결합니다. 쿠바의 경제적 여건 때문에 시설 면에서는 조금 낙후되어 있겠지만 내용 면에서는 심리치료, 재활교육, 직업교육, 관계 교육 등 생활 전반에 관한 충실한 교육을 하는 거죠.  

  

       

입학생들은 평생 여기서 교육받고 생활하며 직업을 갖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공산주의라서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웃기는 소리죠. 어떤 주의를 위해 인간이 희생하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경우죠. 모든 주의는 다 인간이 살기 편한 조건 즉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잖아요. 어느 주의나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는 거고. 그래서 국민은 세금을 내는 거죠.     

      

쿠바 정부는 전체 인구 1천2백만 명을 다 조사해 장애로 분류된 인구 약 14만 명을 전부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수학교는 장애 영역별로 전국에 설립되어 있어서 지역별, 나이별 구분에 따라 장애인 100%를 다 수용합니다. 이게 최소한의 국가가 할 일 아닌가요? 장애인식에 관한 문제는 별개로 하고요.  

        

그런데 쿠바와 비교도 안 되게 잘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더 힘들고 삶이 엉망인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아마 쿠바보다 정부예산도 더 책정되었을 텐데. 왜 우리나라의 장애 자녀의 부모님들 삶은 이렇게 고달플까요? 왜 내일이 항상 불안할까요? 그나마 학생일 때는 학교에 보내지만 학교가 끝나면 아무런 대책 없이 장애 자녀를 집에 데리고 살거나 그냥 방치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혁명 이전의 쿠바도 별도의 특수학교가 없었고, 개인적으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혁명 이후 혁명정부가 문맹 퇴치 운동 등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지체장애인 특별 교육부서가 생겼답니다. 1967년까지는 중증장애인들을 수용하고 돌보아 주는 수준이었습니다. 1967년에 유럽에 유학했던 학생들이 돌아왔고, 그중 특수 장애 분야를 전공했던 전문가들이 등장하면서 전문적인 증후군 연구 및 교육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건 우리나라는 정부가 경제를 외쳤고 모든 역량을 경제부흥으로 집중했다면, 쿠바는 모든 관점을 인간의 삶에 두었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이런 과정의 문제가 인식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장애의 문제, 내 아이의 장애로 인한 문제로만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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