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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Nov 23. 2020

한 여름밤의 별 이야기

낮 동안 요란한 태풍이 지나고 갑자기 세상이 고요해졌다. 오랜만에 풀벌레 우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보니 눈부신 하늘이 펼쳐진다. 짙은 밤하늘에 별이 폭포같이 쏟아져 내린다. 항상 느끼듯 이렇게 화려한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가 별 속의 하나가 되어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한참을 별 속에서 헤매다가 옆을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아내가 옆에 앉아 별을 보고 있었다.      


"별이 참 좋지? "    

  

아내는 갑자기 데크 밑의 작은 풀숲을 가리킨다.      


"어머 반딧불이다. 땅에도 별이 떨어져 있네. 어 저기도…. 여기 반딧불이가 많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어머 어머"     


아내의 입에서 연신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나는 일어나 조명을 끄고 왔다. 인공조명이 사라지자 하늘의 별빛이 반사된 듯한 땅의 반딧불이가 어둠을 수줍게 수놓는다.     


"사람들은 하늘만 보잖아. 하늘의 별만 감탄하는데 땅에도 자신의 빛을 밝혀가는 반딧불이가 있어.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저렇게 반딧불이도 자신의 능력만큼 빛을 내는 거야. 저 작은 몸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태워서 별처럼 빛을 내는 거야. 비록 작지만 얼마나 아름다워! "     


한참을 반딧불이를 보고 있던 아내가 추운지 어깨를 움 추린다. 이번 태풍이 더위를 몰고 갔나 보다. 아내의 어깨에 오른팔을 둘러 감싸 안았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기 빛나는 큰 별 사이에서도 별들이 있어. 큰 별들, 사실 큰 별이 아니라 지구에서 가까운 별이지. 그런데 상대적으로 멀어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별들도 많이 있거든. 그 보이지 않는 별을 세계의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연구하고 있잖아. 나는 저 보일락 말락 하는 별들이 우리 아이들 같아. 우리 아이들의 쓰임새도 그만큼 연구하면 벌써 찾았을 거야. "     



농사를 지어보니 자연에는 잡초란 원래 없었다. 자연은 모든 생명체에게 역할과 가치를 줬는데 사람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잡초라 구분해 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칡도 한약재가 아니었다. 중국 고대의 전설에 염제 신농씨가 일일이 먹어보고, 약초인지 독초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뭐 신농씨 혼자만 그랬겠나? 선인들의 그런 노력이 모여서 오늘의 의학이, 과학이 만들어졌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제 역할이 있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다.   

   

강원도는 산악지대라 농민들 대부분이 화전민의 후예다. 화전 농법은 산 일부분을 불태워 정리하고 거기다 농사를 짓는 것이다. 지금은 개간해서 밭으로 만들었지만. 산을 다듬어 밭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농사의 최대 적으로 칡과 산딸기를 말한다. 칡은 ‘갈근’이라는 한약재의 재료고 산딸기는 제법 비싼 과일이다. 그런데 밭에서 나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번식해서 작물 재배를 방해한다. 그러니 제초제를 퍼부어 그것들을 잡아버린다.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고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린다.라는 등 멀어서 보이지 않는 별로 시작한 이야기가 억울한 잡초로까지 진행된다. 길어지는 이야기에 다음에 나올 말을 예측한 아내는 한마디 툭 던지고 춥다며 들어갔다.      


"당신은 병이야. 뭐든지 그쪽으로만 생각하고 비유하고, 그냥 순수하게 별빛과 어우러진 반딧불이만 보면 안 돼? 옛날에는 그렇게 낭만을 찾더니. "      


저렇게 쏟아지는 별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지리산의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지리산 자락의 한적한 오지 마을이었는데 친구의 어머니는 우리를 정말 반겨주셨다. 태어나서 그렇게 환영을 받아본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 친구가 마을의 유일한 도시 유학생인 까닭이었다. 토종닭 백숙으로 저녁을 먹고, 넓고 깊이가 얕은 냇물 가운데 놓인 평상 위에서 삶은 감자와 수박을 먹었다. 한여름인데도 소름이 돋을 만큼 시원한 공기에 우리는 그 평상 위에서 그냥 자기로 했다. 그때 누워서 본 그 하늘은 내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별이 쏟아져 내렸고 내 몸은 하늘로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지 아침에 눈을 뜬 기억이 있다.     

 

시골 소녀 같지 않게 얼굴이 하얗고 동그란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우리와 금세 친구가 되었고 특히 나를 잘 따랐다. 우리는 그녀를 ‘통통이’라고 별명을 지어 놀렸다. 그곳에서 3박 4일을 머물면서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유명한 대원사라는 절도 갔었다. 우리가 뭘 하던 그 소녀도 같이 어울려 놀았다. 우리가 떠날 때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 배웅하는 그 소녀의 물기 먹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날 버스 창을 통해 보이던 촉촉한 그녀의 눈과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아른거린다. 별은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 오랜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 옛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릿한 옛 추억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상욱이다.    

  

“아빠 뭐 하세요?”      


나를 쳐다보는 상욱이 얼굴이 환하게 웃는다. 내가 들어가지 않아서 나왔나 보다.      


“상욱아 별이 엄청나지? 저기 저 별들을 은하수라 하는데 우리나라 고유 말로는 ‘미리내’라고 불러.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성 자크의 길’이라고 부른대. 그리고 저것은…….”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생각나는 대로 설명을 해 줬다. 적당한 추임새로 호응하며 상욱이는 쏟아지는 별을 올려본다. 별이 상욱이를 품는다. 그러다가 문득 상욱이의 눈 속에 별이 가득한 것이 보였다. 맑은 상욱이의 눈은 온통 별빛으로 초롱초롱하다. 상욱이의 별이 하늘의 별보다 더 따뜻하게 나를 바라본다.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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