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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욱애비 Dec 02. 2020

예약된 반장

반장 이야기 1부




며칠 전 단옷날이었다. 아침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동네 전 이장이 아이에게 말을 건다.   

   

“상욱이 운동 열심히 하네.”     

“네, 안녕하세요, 열심히 해야죠. ”     

“상욱이 오늘 단옷날인데 좀 놀아야지, 이따가 천렵이나 할까?”     

“아…. 안돼요, 오늘 고객님께 보낼 물건이 있어서요. 포장해야 해요.”     


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저씨랑 천렵하면 삼겹살도 먹고 닭백숙도 먹는데……. 하는 표정이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음 제법인데. 이제 거절도 할 줄 알고.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어제저녁에 오늘 일정에 대해서 알려준 것이 아이에게 정확하게 입력이 되어 있었다. 이번 주는 선거가 있어서 유기농 직거래 고객께 보내는 택배 일정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어젯밤에 택배 일정을 잡으며 이야기해 준 것이다.     


      

두~어 시간 오전 운동을 끝내고 포장을 끝내고 택배를 보내러 나갈 때였다. 동네 반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단오 잔치 겸 전부 모여 점심때 닭백숙에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자기 집으로 오란다. 두메산골의 단오는 또 이런 맛이 있다. 한 참 바쁜 농사철인데도 단오라고 모여 논단다. 마을 분들이 다 모인다는데 우리만 빠지기가 좀 그래서 빨리 택배를 보내고 들어왔다. 아이는 벌써 옷을 챙겨 입고 신이 났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손님이 오거나 모임이 있으면 저렇게 신이 난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1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풍속이 많이 명절이다. 이 동네는 단옷날 뜯은 약쑥이 양기가 가장 강하다 해서, 한 다발로 묶어 대문 옆에 세워둬 재액과 귀신을 물리쳤단다. 그리고 제사도 지냈고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었단다. 수리취떡이 그때부터 여기 정선의 유명한 먹거리였단다. 평소 가르치기 좋아하시는 동네 어른이 우리에게 몇 년째 이야기해 준다. 상욱이는 옆에서 열심히 맞장구치고 있다. 

“아, 예~” , 

“그래요?” 등등 

저렇게 맞장구치는 것을 연습도 안 했는데 꽤 잘한다. 



백숙이 나오고, 수리취떡을 포함한 떡과 술 그리고 부치기 등 여러 음식이 나온다. 언제 준비했는지 푸짐하다. 술이 몇 순배 흐르고 나서 마을 현안이 나온다. 내년 반장을 미리 정해 놓자는 것이다. 다들 나이들도 있고 해서 이제 모두 반장을 안 하려 한단다. 늘 돌아가면서 했지만, 이번에는 전부 사양만 하고 있다.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는데 소를 많이 키워서 아이가 ‘우사 아저씨’라고 부르는 아저씨가 갑자기 아이를 보더니 

“상욱이 졸업했나?” 한다. 

"네." 

"대학은 안 가나?" 

아이가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대학 가면 뭘 해요? 그냥 영농후계자로 사는 게 낫지. 요즘 대학 나와도 취직도 못 하는데~” 

‘우사 아저씨’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야 그럼, 딱 맞춤이네~, 상욱이가 반장을 해라.” 한다. 

나는 그냥 술김에 하는 흰소리다 싶어 가만히 있는데 아이가 나선다. 

“제가 해요? 그럼 손뼉 쳐 주세요.” 한다. 




반장에 대해서는 상욱이에게 쓰라린 추억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1학년을 제외하고 매 학기 반장에 도전했는데 항상 1표와 2표를 얻고 억울하게(아이 표현으로) 떨어졌단다. 딴에는 반장 선거 날 옷도 깨끗이 입고 신경을 썼다. 그런데 평소 과자도 사주고 해서 친구들은 자기를 좋아하는데 반장 선거 때만 자기를 배신한단다. 그러는 게 귀여워 내가 한참을 놀렸었다.      

“그 한 표 네가 찍었지?” 

“아니야~ 친구가 찍어 줬어. 나는 반장 찍었어.” 

“거짓말~ ㅎ ㅎ ” 

“그런데 반장은 왜 하고 싶어?”

“떠드는 아이들 이름 적고, 또 친구들 앞에서 일어서서 선생님께 인사시키잖아.”

“그거 하려고?”

“응, 우리 반 대장이니까.”

특별한 답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장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귀엽기만 했다.          


     

술들이 적당히 오른 뒤라 어른들이 어린애처럼 손뼉 치고 좋아한다. 그분들도 아이가 나서는 게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가 보다. 

“그래, 상욱이가 해라. 네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젊으니까 만년 반장 해도 되겠다.” 

“상욱아 이제 내년부터 반장이니 술 한 잔씩 돌려” 

다들 한 마디씩 하신다. 

“네!” 

목소리에 신이 났다. 술병을 들고 다니며 뭐가 그리 좋은지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키득거리며 이야기한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염소 아저씨가 아이를 부른다. 그분은 흑염소를 키우기에 아이가 붙인 별명이다. 소주 한 잔을 아이에게 주며 

“상욱아, 내년에 네가 반장 되면 어떻게 할지 미리 이야기 한번 해봐.” 

아이는 그 잔을 받아 훌쩍 원 샷을 한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음~ 저는 모두가 행복한 마을을 만들겠습니다. 지금처럼 웃으면서 살면 좋잖아요.” 한다. 동네 분들이 모두 파안대소한다. 

“저놈 보래요~” 

“상욱이 최고다.” 최고의 인기였다.



마치 정견발표를 하는 것 같았다. 마을 분들은 상욱이가 이 마을 반장 중에 최고로 젊고, 최고로 박수를 많이 받았단다. 완전 신이 난 상욱이는 술도 몇 잔 받아먹었다. 집에 와서 

“상욱아 너 반장 잘할 수 있어?” 

“당연하지. 내가 아저씨들을 마을 청소도 시키고 일도 시킬 거야.” 

“말 안 들으면?" 

"아, 그럼 이름 적을 거야!" 

단호하게 말하는 아이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 내년부터 상욱이 반장 등쌀에 고생 좀 하겠다. ㅎ ㅎ ㅎ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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