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필연의 시작이다.
매일이 똑같은 하루, 직장인에게 크게 다른 날은 아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었지만 재택을 하는 날이다. 재택을 한다고 해서 더 여유를 부리거나 딴짓을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9시 30분 '땡'하면 시작되는 반복적인 루틴 안에서 오전 화장실은 한번 많으면 두 번, 점심 후 오후는 환전업무가 마감되기 직전까지는 불같이 달리고 환전업무 마감 후 하루 업무를 마감하면서 또 달리다 보면 5시 30분. 퇴근시간이다. 은행 근무를 한지 어언 14년 반. 내년이면 15년 차에 접어든다.
재택의 조금 다른 점을 들자면 개인적으로 오는 전화를 자리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무실에서야 모르는 지역번호로 온 전화는 그냥 패스하지만 왠지 모르게 재택은 그 전화도 기웃거리게 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객니임!
별다른 이유가 없었기에 전화를 들고 보험광고를 듣고 있었다. 보통은 '괜찮습니다.' 혹은 '제가 업무시간이라서요.' 하면서 끊었을 거다. 그러다가 질문이라도 한번 던지면 이제 이 보험의 구역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길진 않았던 전화통화를 내려놓으면서 나는 보험 하나는 들었다. 그렇게 우연히 보험을 들었다.
사실 보험의 '보'자도 모르는 사람이 나다. 그간 너무 보험이 없었기에 '잘 모르고'하나를 들었다. 아, 추가로 말하자면 나는 5분 만에 든 보험도 하나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작년, 아빠가 갑작스럽게 암판정을 받으시고 치료를 시작하셨는데 그 멍한 감정 상태에서 우리 팀장님의 말소리로 퇴근길에 하나 들었던 그 보험.
우체국 보험이 간단하지만 가장 기본적이기도 하고
가장 빠르게 처리되더라고.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만 원짜리 보험을 들었다. 이 역시 기본 항목들인지라 길지 않았고 우체국 암보험은 우체국어플로도 간편하게 들 수 있어서 어플 깔고 보험완료까지 15분 걸렸었을까? 그리고 그즈음, 회사의 단체보험 외에는 실손보험이 없어 실손보험을 하나를 들었었다. 중복보장은 안되지만 나중에 퇴직을 하고서 실손보험을 들면 잘 못 든다나, 그래서 들었었다. 내게 보험은 이런 과정이었다. 참고로 나는 이전해 건강검진에서도 특이소견 없이 건강한 결과지를 받았었다. 그리고 두 번의 출산 이후에도 체지방이 적고 근육이 조금 더 많은 '건강한 여성'이다.
그날은 평범한 재택근무 날이었지만, 그 평범함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