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전장으로 1

형사고소, 민사소송, 노동청 조사 그리고 사채

by 노라a

사업 계약에 탈이 났다.

실무를 맡았던 사람이 자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진행 중이던 계약의 자금 일정은 완전히 뒤틀렸다. 모든 준비가 순서대로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계약을 이끌던 남편은 그날 이후, 모든 법적 절차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회사원인 나는 점심시간마다 일을 감당해야 했다. 계약을 계속 진행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전화를 돌리고, 처음 듣는 절차들을 배워가며 상황을 메워나갔다. 내가 처한 현실은 마치 안개 속 세계 같았다. 하지만 온몸의 촉각을 세우고 배움으로 채워 넣었고, 법인 대표인 동생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설명을 들을수록, 그는 본인도 모르게 사기를 당한 모습이었다. 법적으로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법인 대표인 동생에게 향했다. 동생이 알고 있는 정보는 현재와 괴리감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계약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런 사태가 터졌고, 실행 전 단계로, 실무를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동생은 청각장애인이다.

가장 큰 문제부터 보면, 법인과 관련된 사기 건이었고, 이와 연결되어 개인 리스 차량 계약 건까지 얽혀 있었다. 동생들은 서울의 경찰서로 향했지만, 상황을 잘 몰랐고 청각장애인으로 설명도 잘 듣지 못해 민원실에서 거의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했다.

우리는 모였다. 나는 정보가 필요했다. 각자 가지고 있던 단톡방 스크린샷과 서류들을 모아 정리에 정리를 거듭한 후 나의 주거지 관할 경찰서로 향했다. 그곳은 이전 경찰서보다 한산했다. 하지만 한산함이 고소 접수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정리와 정리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 참 모순적인 사건이지만, 그날 우리는 두 건의 사건을 모두 접수했고, 각각 형사고소로 이어졌다. 두 건의 사건번호가 나왔다.

퇴근 후 3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 과정을 거쳤다. 사건의 맥을 잡고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며칠 후, 이전 계약이 진행되었던 지역의 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연락이 왔다. 근무자 두 명이 법인을 상대로 진정서를 넣었다는 것이다. 동생은 피의자 신분으로, 나는 대리인으로 조사에 호출됐다.

노동청에는 ‘근로감독관’이 있어 경찰과 유사한 권한을 행사한다. 노동관계법 위반 사건을 조사하며, 위반이 확인되면 검찰에 송치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난 근로감독관의 조사는 직전 형사고소 과정과 흡사했다. 이미 한 번 조사를 받아본 덕에,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형사고소 자료를 포함한 서류를 제출하고 조사를 마쳤다.


진행 중이던 사업 계약은 우리에게 너무 중요했다. 총대를 멘 사람은 더 이상 총을 쏠 수 없었다. 나는 계약 대리인으로 그 총을 받아들었다. 당시의 가계약은 무산됐었지만, 이후 계약 당사자를 직접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결국 계약 진행에 성공했다.

회사 팀장님과 동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휴가를 내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막냇동생이 머물 집을 구하러 가던 길이었다.


차가 없어졌어!
근데 이 차가 인천항에서 수출되기 직전이래!

인천항이..인천항이 왜? 사업자의 리스 차량이 인천항에 있다는 연락이었다. 해외로 반출되는 게 맞느냐는 질문이었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린 끝에, 남편이 개인 채무를 갚기 위해 우리 차량을 사채에 담보로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맡겨진 차량은 두 대였다. 이런 X..감정을 빼야했다.

사채업자를 만나야 했다. 무서웠지만, 무서울 수 없었다.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차를 돌려달라고 조곤조곤 요청했다. 다행히 상대는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고, 상황을 이해했다. 비용이 들었지만 결국 차 두 대를 모두 되찾았다.

이렇게 차를 가져가는 사람은 처음 봐요.
대단하네요. 보통 못 가져가거든요.
어려운 일 생기면 말해요. 내가 봐줄테니.

뜻밖의 지원군이 생겼다.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지만, 이 일을 해결하며 갑자기 차가 생겼다. 차를 탈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나는 이 차를 선택했다. 전리품이었다.


우리가 진행한 계약은 ‘법인 간 포괄양도양수 계약’이었다. 본 계약서 작성 이후에도 법인을 온전히 인수하려면 주어진 조건을 모두 갖춰야 했고, 그 중 하나가 법인 대표의 신용도였다. 해가 바뀐 1월 첫 영업일, 숨이 넘어갈 듯한 전화가 걸려왔다.

신용도가 반토막 났어!

법인 업무의 실무적인 연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이런 문제가 터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감정적인 성향의 동생은 부들부들 떨었다. 청각장애인인 동생의 확인을 돕는 건 엄마와 막냇동생의 몫이었다. 그러나 엄마도 아들 일에는 감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확인에 3시간이 걸렸고, 이유는 한 줄이었다. 상대방도 사태 파악과 상황 이해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하루 만에 신용도는 회복됐다. 우리는, 감정을 빼야 했다.


감정을 더한 분석은 피로도만 높이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없게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똑같다.

47억 원 규모의 계약 조건이 흔들리는 순간, 감정이 아니라 분석과 해결이 우리를 버텨주었다. ‘어떡해’가 아니라 ‘왜’를 먼저 떠올려야 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법은 같다.

해결이 된 듯한 하루, 한 숨 돌리려했다. 호사였다. 신용도 하락의 원인이었던 납품업체 외 다른 납품업체들로부터 민사소송이 들어왔다. 줄줄이 사탕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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