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라는 이름 앞에서 : 감정을 빼고 현실을 보는 법
여보세요.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그러나 그 한 통의 전화로, 나의 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잔잔하게, 평화롭게, 그리고 고요하게 항해하던 내 배는 어쩌면 내가 아팠던 그날부터 조금씩 낡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암’이라는 병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이유가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로 인한 가족의 경제적 위기도, 삶의 항로를 수정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미리 준비하기에는 버거운, 삶의 실체들이다. 그리고 이런 실체들을 가까스로 지나가고 있노라면, 또 다른 암초가 불쑥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녀는 남편과 개인적인 채무가 있다고 했다.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던 나는 일단 이야기를 들었다. 그 채무가 당시 내가 진행 중이던 중요한 계약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가 말하는 ‘남편과 그녀의 관계’를 듣게 됐다.
와이프로서 이런 상황을 몰랐던 점,
그리고 여자로서 당신의 감정에 미안합니다.
그녀는 채무를 내게 갚으라는 전화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이런 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고, 나는 이 전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임을 알았다.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에,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할 증거를 달라고 했다. 그때 내가 받은 건 그녀의 주장 속에서 흘러나온 몇 개의 문자와 사진이 전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모두 그녀의 해석이 묻은 조각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왜 바보같이 듣고만 있었을까. 아니, 정말 나는 듣고 있을 수밖에 없던 걸까.
우리는 대가족이라는, 비슷한 성장배경에서 자랐다. 이에 남편은 가족을 잘 챙겼다. 부부는 평생 서로를 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 있어서 나는 그 세월의 낡아짐 속에서 ‘그냥 부부’가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연애하듯 지냈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땐 장난기 많은 엄마 아빠였고, 없을 땐 데이트하는 연인이었다. 11년간 딱 두 번, 큰 부부싸움을 했다. 한 번은 회식 후 내 실수로, 한 번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그의 잘못으로. 그 외엔 사소한 말다툼조차 없었다. 시댁에서 사는 며느리로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채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가족 안에서 아이들은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 사랑을 나눌 줄 알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감사했고, 행복했다.
그날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말했다.
이 이야기는 중요한 계약이 끝난 뒤에 해.
중요한 일에 잡음이 생기지 않게
마무리 잘해.
이 문제는 우리 둘의 문제고,
당신에 대한 감정은 지금부터 정리될 거야.
당신이 어땠는지, 더 이상 묻고 들을 수 없어. 이미 거짓이니까.
나는 나를 위해,
당신에 대한 감정을 내 마음에서 뜯어낼 거야.
그게 끝이었다.
더 듣고 싶지도,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들어도 다 믿지 않을 것이고, 말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었다. 감정은 접어야 했다. 접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감정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접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으로 내 삶이 끌려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감정을 먼저 접어야 하고, 내 삶을 구해내야 한다.
그날 이후 나는 세 가지를 했다.
첫째, 사건을 기억했다.
둘째, 말보다 증거를 봤다.
셋째, 감정을 판단의 기준에서 뺐다.
부부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그 안에서 상처받는 역할을 하진 않기로 했다. 지금 더 애써야 하는 일의 순서를 매겼다. 물론, 부부관계에서 이런 사건보다 중요한 일을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 외에 ‘중요한 일’의 순서겠다. 우리의 경우, 친정 동생들과 함께하는 사업의 중요 계약이 진행되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이 일에 집중하기를 택하길 요구했다.
용서? 용서는 이 상황을 바꾸지 않아.
그래서 나는, 용서 대신 나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