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1

판사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by 노라a

우리 집을 잠깐 소개하자면, 친할머니를 비롯하여 고모들,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 내 두 동생들 모두 청력장애가 있다.

난 네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한다.
네 자식들도 청력 장애를 갖게 될까 봐..
이게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지
모를 거다..

다행히 그들이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었던 나이보다 나는 더 나이를 먹었고 아이들도 아직 청력은 이상이 없다.

이러한 배경으로, 길을 걷다가도 동생에게 모르는 전화가 오면 대신 받아 전달해 준다거나, 말을 할 때 목소리를 작게 하되-소리가 너무 크면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기에- 입모양과 표정을 크게 해서 말을 한다거나. 등등 우리는 당연하게 ‘난청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살았다. 이런 ‘당연함’의 괴리를 느낀 것은 이번 사건이 터진 후였다.

아니, 동생이 미성년자야?
네가 거길 왜 가야 해?
동생이 해결하게 놔둬~

물론 설명을 하고 상대방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질문하지?라는 생각도 했었더랬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했었다.

가장 큰 충격은 법정에서의 일이었다.

청각 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법인 대표를 합니까?

판사님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결국, 청력장애는 표현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암흑의 장애인 것이다.


청각장애가 심한 편인 큰 동생은 일찍이 시작된 청각장애 때문이었을까, 손의 민감도가 매우 좋았다. 만들기란 만들기는 못하는 게 없었다. 성인이 되어 커피 시장이 커질 무렵, 카페에서 ‘밀크커피’를 시키는 동생에게 커피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 권유했고 그 길로 커피 인생이 시작된 동생은 미술관 바리스타를 시작으로 태국으로 건너가 혹독한 교육 과정을 거쳐 카페 운영까지 한국에서 바리스타로의 경력이 꽤 있다. 커피에 깐깐한 기준을 가진 나로서 내가 인정하는 최고 맛의 커피를 낼 줄 아는 바리스타는 바로 내 동생이다.

장애는 그의 전부가 아니다.
감각이 다를 뿐이다.

경찰조사실과 고용노동청에서는 미리 청각장애인임을 알리고, 정리된 내용을 대리인으로서 함께 조사받았다. 동생은 내용을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줬다.

법원에서는 대리인 서류를 내고 함께 앉았었다. 법원 내에서는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고, 수어사용에 대한 제도적 지원뿐이었기에 우리가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보청기를 끼고 갔지만, 판사님이 사용하시는 마이크도 있었지만, 동생은 한 공간 안에서 울리는 서로 다른 주파수의 음성들 속에서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은 자신의 법인을 대표하는 대표자임에도 법인과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다.

청각장애인은 모두 수어를 합니까?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12~35세 청년 중 11억 명 이상이 소음성 난청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청소년의 17%, 20대의 19%가 난청 징후를 보이며, 2024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 이상인 약 4억 3천만 명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수치는 2050년까지 약 7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그들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거나 ‘겪게’되더라도 수어 교육을 받지 않는다.

난청의 위험이 커져가는 이 세계에,
인식 개선과 실질적 방안을 담은
공공 커뮤니케이션 브랜드가 필요하다.

나는 그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청각 손실은 더 이상 특정 연령이나 환경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며, 세대와 국경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 과제다. 다만, 한 반에 안경을 쓴 친구들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며 시각 위험을 체감할 수 있듯이, 청력 위험을 체감할 수 있는 척도가 없기에, 서로가 혹은 스스로가 난청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모른 체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청력 장애를 인지하지 못한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스스로의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졌던 것이었고, 그리고 우리는, 청각 손실의 위험성이 매우 큰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본권 침해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그리고 그 진정서는 접수가 되어 조사원이 배정되었다.

웃는 얼굴.jpg 보이는 청력은, 인권이다.


‘피의자’로 판사님을 적는다는 게
저는 좀 불편합니다.
그건 판사님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인권위원회의 진정서가 무서운 것은 ‘피의자’와 ‘피해자’로 사건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피해가 맞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제도적인 개선이 될 수 있으므로
마음 불편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정서는 내가 설립한 브랜드 ‘카이나프로젝트’의 이름으로 제출되었고, 현재 조사 중에 있다. 어떤 제도적 결과가 나올까. 작은 변화가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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