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노력:형사고소, 법률구조공단, 정신의학과
누군가는 내 경계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예의가 아니다.’ 예의 없음에는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나는 사건 그 자체를 세상에 적나라하게 풀어놓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준비하고, 마무리하고, 나를 강화했는지를 기록하려 한다. 왜냐하면 이건 단순히 ‘한 사건’이 아니라, 내 안전과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형사고소의 시작 — 경찰서 문턱을 넘다. 그리고 국선변호사
형사고소는 생각보다 차가운 절차에서 시작됐다.
경찰서 방문, 접수 전 상담, 그리고 본 조사. 책상 위에는 사건번호가 적힌 종이와 이를 마주하여 풀어내야 하는 현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나의 사건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법인의 고소를 시작하는 데 있어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고 있었지만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부족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시작에 애를 먹었다. 네트워크를 통하여, 서류를 통하여, 정황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들이 얼추 사건의 방향을 잡을 만한 양이되었을 때, 수사 기관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시작했다. 차갑게 시작된 절차였지만, 그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이라는 뜨끈한 용암을 보고 느끼니 불운의 괴로움이 행운의 발판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용기와 희망이 생겼다.
형사고소의 변호사의 경우는, 보통은 고발을 당한 피고소인이 국선 변호사를 쓰는데, 성폭력이나 성추행사건의 경우는 고소인이 국선 변호사를 쓸 수 있다. 고소를 한 후 고소인의 주소지나, 사건의 발생 지역 혹은 피고소인의 주소지로 사건은 이관된다. 1-2개월의 수사기관의 조사 기간이 필요하고 이때 변호사를 선임한다 해도 더 빨리 진행되거나 더 신경을 써준다거나 하진 않는다. 보통 사건이 접수되고 일정 기간 내로 사건의 해결을 목표로 하니, 수사 기관을 믿고 기다려 본다. 중간중간 담당 수사관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확인을 하는 것도 좋겠다.
'그냥 모른 척할 수는 없나요?'
'네, 상대가 멈추지 않는다면
제가 그 행동을 멈출 수 있다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서, 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요.'
민사고소의 준비 — 법률구조공단. 20분의 아쉬움
민사소송의 경우는 국선변호사의 개념이 아니다. 다만, 정해진 조건에 따라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와 소득 및 재산에 따라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상담 신청은 법률공단으로의 전화, 방문, 인터넷으로 신청 가능하다.
다만, 실제로 방문하여 상담을 해보니, 법률구조공단의 상담 시간은 단 20분. 사건을 시간 순으로 풀어내기엔 턱없이 짧았다. 상담사는 ‘가능한 범위’만을 얘기했다. 아쉽기만 했다. 결국 형사고소를 한 후 민사고소를 진행하라는 답이 내려진다. 다소 실망적인 상담 내용이었다. 마지막 1분에 질문했다. 이곳의 현실적인 혹은 실질적인 역할이 어떤 것인가요?
사회적 약자 분들이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때,
법률적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울 경우
법률구조공단에서 직접 법원에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형사고소든 민사고소든, 이 짧은 시간을 채워줄 나만의 법률 노트를 만들기로.
다음번에는 그 누구도 내 이야기를 ‘시간이 부족하다’며 잘라낼 수 없도록 내 사건을 효율적으로 정리해, 그 20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로.
내적 강화 — 병원과 운동: 피하지 마세요, 덮어두고 모른 척하지 마세요.
그 사이,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불면, 이명, 가슴 두근거림.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서 솔직해져야 했다. 아닌 척, 모른 척 덮어두고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괜찮은지 내 마음을 돌아보아야 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의사의 그 한 마디가, 기묘하게도 내 호흡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고 나서 슬퍼서 울지 않았었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왜 눈물이 안 나지?
웬걸, 의사 선생님이랑 두 마디 했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다 짰다. 나는 슬픔을 모른 척하며 버텼던 게 아니라, 울 수조차 없었던 거다
애들 앞에서는 우는 엄마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사건 앞에서는 우는 약한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타인들 앞에서는 선택에 있어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건 내 감정에 솔직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위해 내 마음을 살펴야 하고, 나아가 이 사건이 내 마음속 상처가 되어 트라우마로 남길 원하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이자,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싶을 뿐, 상처로 남겨 나의 약점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것은 참고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을 이해하고 방향을 잡아가며 잘 낫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외상과 동일합니다.
뼈가 부러지면 뼈를 잘 맞춘 후 깁스를 해야 하잖아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낫긴 하겠지만 낫는 기간이 오래 걸리고 잘못 나을 수도 있어요.
동일합니다.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맞아서 팔이 부러진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낫겠지만
더 잘 낫고, 더 빨리 낫기 위한 과정이에요.
운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운동을 해 왔었지만 지금의 운동은 나를 강화하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했다. 처음은 클라이밍으로 여름으로 넘어오며 큰 아이와 서핑을 배웠다. 까만 콩이 되는 것은 정말 싫지만 새로운 배움에서 오는 긴장감과 아이와 함께 하는 즐거운 기억, 그리고 긴장을 놓는 순간 물 먹임. 그 과정에서 오는 몸의 긍정적인 피로감은 나를 가꾸어주고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리고 저녁에 시작한 러닝. 아무리 헬스를 오래 해도 뛰는 시간은 늘지 않았는데, 짧은 거리부터 시작했던 러닝이 새로운 산소를 내 온몸으로 한 바퀴 돌려주는 그 느낌을 통해 생각이 정리되고 긍정적 에너지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더불어 근육이 채워질수록 마음의 빈틈도 메워졌다. 이건 단순한 체력 강화가 아니라, 내가 다시 일어나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법을 나는 이제 안다.
예의 없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의는 감정적 보복이 아니다.
기록하고, 절차를 밟고, 나를 지키는 것. 그것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따끔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