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그리고 법으로:정보의 벽을 너머, 작은 희망의 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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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리스 계약이 체결되면 계약의 주체는 리스사로 바뀐다. 이에 따라, ‘나의’ 계약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은 '나'에게 없었다.
“가자, 금융감독원으로.”
그 말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나와 동생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결심이었다.
우리는 이미 리스사와 보험사로부터 ‘없다, 모른다, 우리는 절차대로 했다’라는 답변만을 들어왔고, 더는 개인의 힘만으로 풀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
금융감독원(FSS)은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금융감독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업무 특성상 금융공기업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지만
행정상으로 보면 잘못된 분류이며, 공공기관도 아니다.
다만, 공직유관단체에는 해당한다.
금융감독원은 접수를 받았고, 담당자를 배정했다. 장애인의 금융거래 관련된 민원으로 ‘자율조정대상’으로 분류되었고, 14일 이내로 관련 민원에 대한 답변이 없을 경우 금융회사가 사실관계 확인 및 민원해결을 위해 민원인과 접촉할 수 있는 기간이다.
‘자율조정대상’. 그 말이 처음에는 희망처럼 들렸다. 이러한 금융감독원의 조치로 금융사는 해당 계약이 문제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고 더욱이, ‘우리도 모르는 계약 관계’를 회사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루하루 달력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혹시나, 마지막 날이라도 우리 사건을 들여다봐 줄 거라 믿으면서.
딩동, 귀하의 민원 회신문이 도착하였습니다.
불길했다. 이렇게 민원 회신이 온다고? 문제가 없음일 가능성이 높았다. 읽어보았다. 처음엔 눈에 읽히지 않았고 이렇게 민원이 답변되어 회신완료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화가 났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었다. 추가적인 이이 제기를 메일로 보내두고 다음날 오전, 담당자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려운 상황이신 것으로 압니다.
힘이 많이 되어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14일이 되는 마지막 날, 금융사는 계약 관련 서류 및 URL로 받은 동의 서류, 그리고 해피콜을 통한 녹취까지 제출하였다고 했고 금감원의 담당자님은 관련 내용을 상세히 검토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답변 내용을 읽어보니, 내가 생각한 닫힌 결말이 아니었다.
본 건 회신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며,
사법적 판단을 구속하는 것도 아니므로
신청인께서는 우리 원의 처리결과와 관계없이
법원 등의 피해구제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해 드립니다
우리가 이 결과를 통해 무너지지 말고, 법원 등의 절차를 이용하라는 열린 결론이었다. 계약관계의 정보들을 취합해 보았을 때, 리스사에서 제출한 내용을 바탕으로 계약적 이슈가 없음에 대하여 상세한 검토과정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의 길이 정해진 셈이었다.
청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절차적 보장은 작동하지 않았고, 금융소비자보호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되지 않았다. 법은 존재했지만, 제도적 장치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벽 앞에서 서 있었다. 문은 있었지만 손잡이가 없는 문인 것처럼, 우리는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그 침묵도 잠시,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잠시만.. 우리에겐 자료를 안 주면서, 기관에는 다 냈네?
그랬다. 어떤 일이든, 내가 가진 정보를 가진 전략싸움이었다. 법인의 일도 그랬고, 이 개인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법인대표로서의 정보로 다른 행위자에 의해 진행된 계약이었기에 계약 본인이어도 갖고 있는 서류나 알고 있는 내용이 없었고, 차량 자체도 본 적이 없다. 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 두드렸던 리스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기에 눈앞의 벽이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란 문이 생겼고 정보라는 벽 너머의 공간으로 통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누가 어떻게 서류를 작성했던 것인지, 내가 그 서류를 더 들여다볼게.
금융감독원의 민원이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요청했을 때 받아 보지도 못했던 서류 일체를 받을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우리는 해당 건에 대하여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이것이 개인의 계약에서 비롯된 문제들이지만 이는 청력장애를 겪는 이들의 문제가 될 수 있고, 청력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정보들의 한계와 이를 악용한 사례가 될 수 있었다. 누구든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고 그 사각지대에서 경제적 피해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에, 이 과정을 내가 만든 브랜드의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고 브랜드는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행이야.
법원에서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이런 내용을 알게 되는 것보다 낫지.
자, 이제 어떤 서류를 냈는지, 한번 들여다볼까? 이제는 변호사를 만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