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그리고 공과 사

by 노라a

첫사랑 같은 감정이 스쳤다. 아니, 정확히는 그만큼 마음이 몽글거렸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 지금 와서 첫사랑에 빠진 건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는 피식 웃었다.
누군가를 먼저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인색했던 10여 년 전의 나에게, 그것도 이러한 시점에.

‘내가 지금 무슨 상황인데 갑자기 로맨스냐고?’


좋은 사람들

이 사건 속에서 나는 분명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경찰서,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의 조사관님. 물론 나의 지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내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조사관들은 제도를 다 바꿔줄 수는 없었지만, 혼란 속에서 내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어려운 상황이시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차근차근해 봅시다.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당당하기보다, 피해자로서 작아지게 된다. 마치 내가 죄인인양, 마치 내가 잘못한 냥. 그렇게 작아진다.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그 말 한마디, 그 태도 하나가 내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차갑게만 느껴졌던 제도 안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태도와 말 한마디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다. 그 속에서 따뜻한 존재를 만나면 호감을, 혹은 연민을 ‘사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공과 사의 경계

나는 이미 서류를 마쳤다. 관계의 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개인적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때 불쑥 찾아온 따뜻한 감정은 달콤했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사적으로는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고, 궁금하고, 연락하고 싶었지만 20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홀로 남겨진 것에 대한 공허함, 사건의 불안함 그리고 통 없었던 ‘웃는 순간’까지. 그래서 너무 헷갈렸고 어려웠고 더 고독했다. 그 마음을 아는 이는 오롯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더 고독했다.


공식적으로는 바보 같은 결단이지만, 사실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메뉴얼이었다.


어른의 결정입니다.
감정보다 책임감에서 비롯된 선택이지요.
복잡한 상황에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 더 혼란스러울지 몰라요.

조금 시간이 더 지나면,
그 감정을 순수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운동을 했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외로움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웃고 싶을 땐 아이들을 보며 웃었고, 울고 싶을 땐 빗줄기에 숨어 울었다.

뜨거운 햇살아래 처음 서핑을 배울 때는 모르는 것에 대한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고 못해서 넘어졌고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릴 때, 몽글몽글한 혼란한 마음은 서서히 식어갔다.


바보라 했다.
하지만, 이게 나인걸.

세상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 안에서도 좋은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제도 안에서 이 상황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따뜻함은 내 마음을 살려냈고 용기를 주었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제가 힘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정말 제도적인 답변임에도 나는 ‘첫사랑’으로 오해한다. 나조차 이런 내가 어이없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바보 같아도 괜찮다.

그렇게 감정을 넘어가며

나는 다시 소중한 사람을 기다린다.


제도의 차가움 속에서 발견한 작은 따뜻함이, 결국은 내 삶을 다시 항해하게 하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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