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NH콕뱅크를 열어본다. 열린 페이지 나타난 여러 가지 숫자들을 통해, 나는 매달 이 사회에서 측정된 나의 가치를 마주한다.
숫자에는 얼굴과 표정이 없으므로 숫자는 주인이 어떻게 일하며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조금의책임도없다. 주인이 꺼내어 말할 수도 없는 이유로 점심밥을 거르든, 동료에게 부탁을 해야 겨우 화장실에 갈 짬이 나는 상황이든 그것은 숫자에게 아무 관심도, 고려 대상도 아니다. 언제나 숫자는 담담하고 냉정하게 잴 것을 재고 뺄 것을 빼왔을 뿐이다.
사실 엄밀히 말한다면 나 역시숫자들의 주인이 아니다. 나의 NH콕뱅크는 그가 스쳐 지나가며 남긴 흔적의 역사일 뿐이다. 숫자들은 마치 나타났다 가고 어느새 사라지는 휘발된 암호 편지 같았다.
'아, 숫자가 왔었구나. 아, 숫자가 제 갈 길로 갔구나.'를 알아차리게 해주는 숫자의발자국. 그 흔적으로 나는 이 사회에서의 내 자리를 더듬거리며 찾는다.
스치는 숫자조차 터무니없이 적은 사람들과 황당무계할 정도의 정착한 숫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소문은 숫자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이 숫자가 정말 다인지, 이 숫자의 의미와 정당성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해결할 수 없는 생각의 꼬투리일 뿐임을 깨닫는다. 짙은 욕망으로 정착한 숫자들은 다시 가벼이 스치는 삶으로 회귀하고 싶지 않으며,내 숫자에 비해 지나치게 큰 고민은 결국 내 숫자를 작게 만들 뿐 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