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실연필 Dec 08. 2021

자조의 시간

어른이란 응당 아플 땐 링거 정도는 맞아줘야 하는 것.

나는 지금 정맥을 통해 비타민 주사를 맞고 있다. 주말부터 진행된 이 증상은 목이 꽉 막혀 소리가 나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코까지 통증의 영역을 넓혔다.


쌍코피가 났을 때 솜으로 코를 틀어막아 입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는 상태, 코 안의 구조물이 땡땡 부은 듯한 상태. 그리하여 안구와 머리 전체가 딩딩하게 울리는 두통의 상태. 이것이 현재 나의 상태다.


연말이면 으레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업무량이 쏟아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동일하지 않은 건 나의 체력뿐이다. 30대의 마지막을 넘어서며 편두통, 어깨 통증, 만성피로 등의 단어가 무슨 뜻인지 체감했다. 더 이상 피부에 난 상처에 마데카솔을 발라도 새 살은 돋아나지 않았고 동네 약국에서 산 약으로만은 절대 낫지 않았다.


일요일 내과, 화요일 내과, 오늘 이비인후과. 나흘간 무려 세 번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이 다른 세 번의 약을 타 왔다. 나는 약 봉투의 성분과 효능을 꼼꼼히 읽고 하얗거나 파란 동그란 이 약들이 내 몸에 들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상상했다. 파우치와 등받이가 갈라져 헝겊을 댄 푹 꺼진 소파에 앉아 찐득해진 젤리처럼 늘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약의 효능이었다.


"젠장. 숨을 못 쉬겠네."

산소통 없이 물속에 들어가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 같은 환장함이 밀려왔다. KF94 마스크는 나를 살리려는 것인지 죽이려는 것인지 이젠 그 진의를 믿을 수조차 없다.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일은 해가 떠서 지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역시나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한 건 1도 없다.


오후 2시의 이비인후과는 마치 추석 전날 고속버스터미널 같았다. 전광판의 이어진 이름 저 밑으로 열 번째 내 이름이 보였다. 등받이도 없는 작은 회색 스툴을 구석으로 가져가 앉았다. 화장실에 두 번 다녀오고 가져간 책을 반 절이나 읽었을 즈음 절대로 불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이름이 불렸다.


"심하시네요. 푹 쉬셔야 빨리 호전됩니다."

의사는 8시 20분의 눈으로 안된 마음을 표시하며 긴 쇠 막대 두 개를 내 콧구멍에 넣었다. 찬 쇠의 느낌과 분사되는 약이 코 안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 쇠 막대 두 개는 하수도를 뚫듯 내 코를 뚫었다. 살 수 있다면 저걸 사고 싶다. 는 우스운 생각이 나는 순간,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심하다고, 쉬어야 낫는다고.


나는 의사의 표정을 따라 8시 20분의 눈을 보였다. 안타깝지만 저는 쉴 수가 없어요. 그러니 수액을 맞고 싶습니다. 


의사는  쉴 수 없다는 말과 수액을 맞고 싶다는 말 중 어디에 포인트를 잡아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등을 돌려 파란 화면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갔고 나는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지금 이 방에 들어와 누워있다.


정맥주사의 바늘은 빗금 친 칼처럼 날카롭다. 저 주삿바늘은 내 오른팔의 시퍼런 정맥을 뚫고 피를 리며 내 몸으로 들어간다. 똑. 똑. 똑. 비타민 주사가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소리로 한 시간자조는 시작된다.


자조: 자기의 발전을 위하여 스스로 애씀.

자조의 시간. 여기서 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나를 위해 내어 준 한 시간과 비타민 주사.


비닐 주머니의 노란 비타민이 또오옥하고 주사 안으로 떨어진다. 걷어올린 팔은 시리고 이마는 차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다. 저 도로 건너에 두고 온 나의 세상에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힘주어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다시는 뜨지 않을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딸기잼을 바르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