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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12. 2021

딸기잼을 바르는 시간

절대로, 반드시, 한번도 빼놓지 않고, 째깍! 일어나야하는 평일 아침에 대한 복수혈전.


그것은 토요일 아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더 자야한다. 평소에 못 잔만큼 오늘은 기필코 몰아자리라. 자고나면 개운하리라. 깨어나면 내 피부는 몰라보게 피어나리라. 어제 마신 콜라겐이 보름달처럼 내 볼에 차오르리라. 피로야 안녕. 넌 누구니. 새삼스럽구나. 안됐지만 어쩌겠니. 난 이제 널 모르는구나.  


화풀이를 하듯, 한풀이를 하듯, 깨어도 깨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껌뻑이는 눈꺼풀을 닫는다.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하니 이젠 좀 잔 것 같기도 하다. 깰 듯하면 다시 꿈꾸고 또 꿈꾸고, 그래 좀 자긴 잤다. 어쩐지 개운하더라니. 역시 이래서 주말이 좋다니까.


손 뻗으면 닿는 핸드폰 오른쪽 슬라이드를 스윽 민다. 설마 내 핸드폰이 악성코드에 해킹된건 아니겠지? 핸드폰의 화면은 현재 시각 오전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늘처럼 10분만 더 잤더라면, 나는 푹 잔다고 생각했을까.


매일 똑같은 시간에 울려대는 알람이 지겨워 몸서리치며 일어났는데, 3분만 아니 2분만 더 자고 싶어서 이불 속을 그렇게나 파고들었는데! 


소울 메이트같은 만성 피로와 나쁜 남자같은 수면 부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게 고작 그 10분 때문이라고? 말도 안돼.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수면의 질은 고사하고 벼르고 별러 일어난 시간이 고작 6시 50분이라니!


가족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토요일 이 시간 탁! 주방 불을 다. 거실의 거튼을 열고 샷시 문을 열어 묵은 공기도 빼냈다.


12월의 쨍하고 찬 바람이 발가락에 닿았다. 시린 발가락은 발레 슈즈를 신은 듯 발가락으로만 톡톡 걷다가 냉장고의 딸기잼을 꺼내고 나서야 식탁 의자에 올라와 앉았다.


가끔씩 정수기의 웅-하는 소리만이 들릴 뿐 사방이 고요한 이 시간.


오래된 커피머신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뜨겁게 크레마된 우유와 코코아향이 진한 커피를 섞어 라떼를 내왔다.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진 마른 식빵은 촉촉한 딸기잼을 기다렸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나는 딸기잼 뚜껑을 여는 것부터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드디어 딸기의 달큰하고 새콤한 향과 커피의 진한 원두향이 코 끝을 스쳤다.

나는 버터 나이프로 딸기잼을 듬뿍 떠 고소한 식빵 위에 골고루 펴 발랐다.

자, 이제는 커피와 딸기쨈의 시간.

그리고 마침내 딸기쨈의 새침하고 달콤한 맛이 고소한 식빵과 하나되었다. 신선한 원두의 코코아 향과 우유의 부드러운 거품은 쨈 바른 식빵만나자 더 진해지고 깊어졌다.


서두르는 이도, 훼방하는 이도, 참견하는 이도 없는 완벽히 혼자인 지금.


딸기잼을 바르는 시간,

나는 토요일 오전 6시 50분에 일어난 이유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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