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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16. 2021

증명

증명: 어떤 사항이나 판단 따위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

친구와 카페에 갔다. 인스타그램에서 #논밭 뷰라 태그 된 시골집 감성의 한옥 카페였다. 사람이 살던 한옥을 아담히 개조한 이곳의 공간은 방마다 따뜻한 아랫목이 깔려있다.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분리되는 이곳의 느낌이 좋아서 근래 자주 가는 곳이다.


"방역 패스 기간이라 일행이 두 분이시면 한 분은 백신 접종 확인 부탁드립니다."


젊은 주인 내외는 친절하면서도 차분한 말투로 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여름 2차 백신까지 모두 맞고 어플로 깔아 뒀던 백신 접종 완료 인증서가 분명 어디 있었는데...


갑자기 나는 길을 잃은 네 살 아이처럼 막막하고 아득한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분명 백신을 맞았고 증명서도 받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나라는 것, 그리고 내가 백신을 맞았다는 것,

이걸 어떻게 증명한다...


핸드폰을 뒤적이며 슬라이드 하는 20초 남짓 동안 주인장은 뒷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미안한 눈썹과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난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온 몸의 힘을 기울여 집중했다. 다행히 나는 곧 정신을 차렸고 몇 번의 핸드폰 뒤짐을 통해 내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


친구와 둘이 카페에 가는 것도 '증명'해야 하는 시대였다.  




'증명'이란 단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과의 완전한 결별을 통해 내게 없어진 단어였다. 하지만 수학이란 과목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증명'이란 단어를 자주 만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게 수학이 아닐 뿐이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지, 운전면허증을 소지했는지, 직장에 현재 재직 중인지, 다자녀 가정인지, 직업과 관련된 자격증을 보유했는지. 이 모든 것은 '증명'을 필요로 한다.


피타고라스의 증명 문제는 문과여서 죄송합니다며 땡! 하고 틀리면 됐지만 내가 나여야만 하는 인생의 타이틀, 소제목들은 단순히 틀리면 되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깨지고, 싸우고, 고민하고, 부딪치고, 전속력으로 달려본 후에야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내 인생을 두고 해야 할 '증명'은 바로 그런 것이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난 전속력으로 달리지 못했다. 인생의 큰 로를 결정하면서 나는 내가 간절히 되고 싶은 것보다 그나마 '나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나라면' 이 아니라 '나라도'란 말에는 어른의 삶으로 쉽게 편입되고자 하는 귀찮음도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니까.라는 말로 그 싸움과 고민의 과정을 퉁치고 말았다.


사실 원하고 바라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미천한 재능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며 스스로 타오르는 별 같은 재능의 친구들에 비하면 내 것은 억지로 만들어진 잿빛 인공 구조물이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 번도 온 마음을 다해 달려들어 본 적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일정한 수입을 얻는 일에 대해 또래보다 진지했다. 뭔가를 창작하거나 개발하는 질적인 일에는 애초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숫자와 양으로 표현되는 세상에서 안전하길 원했다. 그리고 비교적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의 문을 여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성실한 인생의 자세와 꾸준함을 재직증명서와 급여명세서로 증명하고 싶었다. 늘어난 연차만큼 경험이 쌓이고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아지는 직업 환경을 또 다른 증명으로 삼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의 증명만큼이나 견고하고 빈틈없는 내 인생의 증명서를 바라보며 나는.


나는 내가 아직 한 번도 죽을 만큼 달려들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싱어게인 2의 재즈가수와 락커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들의 인생 증명서를 본다.


코로나19로 공연을 하지 못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40대의 그녀. 무명이기에 공연할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는 또 다른 그녀.


밥벌이의 엄혹함과 현실의 냉정함으로 애잔함이 느껴지지만 그녀들은 분명 빛났다.

 

오랜 시간을 단단히 버텨온 사람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오라로 공간을 채웠다. 그네들이 눈물과 한으로 버티어 지켜온 인생의 '증명'은 한 줄의 허위 없이 '찐'이었다.

사진 출처: JTBC 싱어게인2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하는데 작년에 코로나 19로 공연을 할 수 없어서 월세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40대 여성 뮤지션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을까 고민도 했고요. 내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에게 확인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지금 간절합니다.
- 싱어 게인 2 34호 가수 인터뷰 중-

허지웅 님의 에세이처럼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삶. 어느 누가 손가락질하고 비웃더라도 버티고 버텨 지금까지 살아있음으로 자신을 증명한 그녀들의 노래가 바티칸의 성가곡보다 성스럽고 거룩하게 느껴진다.


바라건대,

그녀들의 '증명'이 이제는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기를.


바라건대 

내 인생의 '증명'은 내 가슴에 와닿기를.


바라는 게 많아서 참 벅찬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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