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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14. 2021

담담한 슬픔

담담하다: 차분하고 평온하다. 특별한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예사롭다.


양 볼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 잔뜩 구겨진 얼굴, 땅으로 꺼질 듯한 한숨,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억울한 목소리. 살아가며 한 번씩은 마주하게 되는 '슬픔'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만약 우리의 삶을 영화라고 한다면 주인공이 울며 불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이 씬의 제목을 당연히 '슬픔'이라 이름지을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과 구겨진 얼굴의 이 장면은 아주 톡 까놓고 말해서 별로 슬프지 않다.

그것은 내가 나를 생각할 때도, 타인을 생각할 때도 공평하게 적용된다. 누가 됐든 타인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코를 풀고 얼굴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건 다소 안쓰러울 순 있지만 아직 최악의 최악까진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이렇게 울고 불고 하는 것 말고.

깊은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담담한 슬픔이다.


이것에는 눈물이 없다. 구겨진 얼굴도 없다. 당연히 휴지도 손수건 따위도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위로나 토닥임도 애초부터 약속된 바 없다.


이 슬픔의 다른 말은 그냥 그랬었어. 그랬지 뭐. 괜찮아. 별 일 아니야.로 쓰인다.


이 슬픔의 다른 모습은 걷고 또 걸으며 숨 쉬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는 누군가의 발자국으로 남는다.


담담하다는 건 셀 수 없이 많은 상처와 슬픔의 경험이 굳은살로 남은 것이다.


담담하다는 건 좌절과 실패가 사방에 널려있어서 더 이상의 슬픔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다.


담담하다는 건 수많은 밤 흘렸던 눈물이 마르고 말라 서걱거리는 모래알의 가슴 는 것이다.


알고보면 담담하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큰 슬픔을 등 뒤에 지고 가는 것.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담담한 사람의 뒷모습

이렇게나 쓸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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