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만 틀면 볼 수 있는 간판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자주 등장하는 낯선 얼굴의 댄서들이 바로 이 프로에서 발군의 실력을 증명한 프로들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대중에게 가장 밀접한 눈높이의 공중파 예능 프로에서조차 상식처럼 만날 수 있는 이들을, 난 왜 그동안 볼 생각조차 안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기억해보니 이 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스쳐 지나듯 어떤 장면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 장면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분위기와 느낌이 너무 선명해 이건 나와 맞지 않다고 일찌감치 단정해버렸던 순간이 있었다.
무대 화장임을 감안하더라도 내 기준엔 지나치게 진한 화장, 내 상식으로는 절대 생략하면 안 될 것 같은 부분이 과감히 생략된 의상, 자신감과 무례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멘트들에 나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
이런 문화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자체가 이 시대의 트렌드와 불화하고 있다는 걸 반증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화하기에 벅찬 건 사실이다.
소화 불량의 이유가 내 이상한 성격이던, 문화적 배경이던, 내가 꼰대 자체이던 말이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빨래를 개키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최종 파이널 무대'를 보게 된 것이다. '돌릴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사춘기인 딸아이의 총총한 눈망울에 채널 고정, 그리고 어느 순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들의 무대를 숨죽여 지켜보는 애청자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최종 파이널 무대에는 네 크루가 출전했는데 각 크루의 색깔에 맞는 무대를 준비한 것 같았다. 우승한 홀리뱅의 베놈이라는 안무는 춤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뭔가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리고 유키즈에서 언젠가 보았던 아이키가 소속된 훅의 헬맷을 쓴 무대도 중성적이면서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내가 나도 모를 눈물을 줄줄 쏟은 장면은 그 훅이라는 팀의 마지막 무대였는데 배경 음악이 무려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이었다.
내가 아는 노래라서, 그나마 지금의 나와 시대적 감성이 맞아서 마음의 스위치가 눌려졌다면 그건 너무 단순한 해석일 것이다.
아이키의 안무는 수어를 바탕으로 해석되고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현대 무용처럼 동작이 크고 유연한 작품인가 싶었는데 손동작 하나하나가 내가 알고 있던 수어, 그 수어가 맞았다.
수어는 말 그대로 하나의 언어 체계라 크고 분명한 동작, 수어를 표현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과 입 모양들이 종합적으로 의미를 표현하는 언어이다.
물론 청각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며 국어 체계와는 조금 다른 문법 체계로 실제 사용하는 문장 구조의 순서나 표현 방법이 건청인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대중매체에서 수어를 사용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우려스럽기도 했다.
아이가 학예회에서 수어로 배운 동요를 반 친구들과 촬영한 장면을 볼 때도 약간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언어를 율동화하는 것은 아닌지, 착한 감성을 소비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수어를 쉽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대학 시절, 학교 축제를 준비하며 1, 2학년에게 집행부 선배들이 수어로 (그땐 수화라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가요로 공연하라고 지시하면 "수화로 말을 해야지, 왜 노래를 자꾸 하라 그래요?" 발끈하던 동기들과 윗년차 선배들이 있었다.
그 선배들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수어로 얘기 나누던 청각 장애 아이들의 얼굴이 아주 오랜만에 생각났다.
촌스럽게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훌쩍인다는 자각이 든 건 이미 프로그램이 끝난 후였다.
센 외모와 센 말투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건 비단 스무 살 대학교 오티만은 아니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 사람의 세계를 안다는 건 조금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는 일이라는 것도.
편견과 마주 서는 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그렇기에 아직 배울 일이 많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