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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17. 2021

아, 이 무례 (1편)

무례: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음.

사건의 발생지는 종합 병원 빌딩 1층 죽집이다.

나처럼 백신을 접종하는 사람들과 환자들이 북새통인 병원을 빠져나와 병원만큼이나 밀도 높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무도 B2 지하주차장을 누르지 않았고 나 또한 그랬다. 빈 속에 타이레놀을 때려 넣을 수는 없으니까. 1층엔 익숙한 죽집이 있었다.


오후 2시의 죽집은 한산했다. 테이블 한 곳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유니폼 입은 똥머리 여성 만이 식사 중이었다. 나는 계산대 위 천장에 부착된 메뉴판을 위에서 아래로,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훑은 후 적당한 것으로 포장 계산을 했다. 프랜차이즈답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익숙한 테이블에 앉아 포장이 나올 때까지 읽던 책이나 마저 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의 주인공이 황량한 사막의 사나운 카우보이처럼 들어섰다. 


지금에 와 생각이지만 그는 문을 열려는 게 아니라 부수려는 게 아니었을까. 시끄러운 소리가 나든, 안에 있는 사람이 춥든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손잡이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서 문을 180도로 확 재껴버린 채로 밀어붙이는 것. 그것이 카우보이가 문을 여는 방식이었다.


반질반질한 감색 코듀로이 재킷에 검은 바지, 앞 코가 갈라지고 닳은 구두. 포마드를 바른 것인지 감지 않은 것인지 모를 검지도 희지도 않은 머리. 길게 주름진 얼굴. 어마어마한 포스로 가게 문을 연 카우보이는 7~80대 남성 어르신이셨다.


"방역 콜 부탁드리겠습니다."

푸른 정맥이 훤히 비칠 정도로 희고 팽팽한 손등의 알바생이 매뉴얼을 읽듯 080으로 시작되는 방역 전화를 부탁했다. 알다시피 그건 요즘 어디를 가도 "어서 오세요."처럼 듣게 되는 일상 언어일 뿐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과 건조한 알바생의 목소리에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던 참이었다.

바로 다음 찢어질 듯한 이 소리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하! 뭐가 이래 이거! 뭔 성질이 그렇게 급해!
내가 왔으면 좀 숨도 쉬고 그런 다음에 고르는 거지!
어디서 사람을 들들 볶고 있어!"


메뉴를 고르라는 게 아니라 방역 콜을 부탁한 거였다는 걸 설명하려는 알바생의 입모양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분노의 카우보이 어르신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한순간도 쉴 새 없이 기관총을 쏘았다.


"내가 이 병원 오래 다녀서 여기 많이 왔는데 말이야, 어! 젊은 사람이 말이야. 성질이 너무 급해! 내가 올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다고!" 마지막 더러웠다고의 빽 갈라진 목소리가 죽을 먹던 유니폼의 그녀와 포장을 기다리던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카우보이 어르신은 가게 안의 산소포화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나는 잠시 이 공간의 산소를 저 카우보이 어르신이 모두 삼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죽을 먹던 똥머리 그녀는 숟가락을 놓았고 나는 읽던 책을 덮었다. 그녀와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타인이었지만 병원 밑 1층 죽집 사건에서만은 목격자로서의 운명공동체였다.


우리의 눈동자는 거친 숨으로 불을 뿜는 카우보이 어르신과 똥물을 뒤집어쓴 듯한 알바생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 딱. 딱... 알바생이 긴 검지로 느리게 데스크를 두드리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일자로 굳게 닫은 입으로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린 그는 검지 하나만의 자유를 표현하고 있었다.


알바생은 참고 있었다.

이 기막힌 무례에 떨면서. 분노하면서.


"제에.. 가.. 뭘 잘못했나요?"

이윽고 알바생이 입을 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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