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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01. 2021

태몽, 해몽.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아빠는 꿈을 꾸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풀쑥 마루 위로 올라와 살금히 아빠 무릎 위에 앉는 꿈을. 나는 오후 네 시의 나른한 햇살이 마루에 내려앉은 따뜻하고도 평화스러운 장면의 아빠를 떠올렸다.

살랑 부는 봄바람 사이로 꽃밭에서 놀던 작고 예쁜 고양이가 아빠에게 안기는 모습을. 그리고 그 고양이를 아빠가 번쩍 안아주는 장면을.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빠가 나의 태몽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난 지그재그 디스코 머리를 묶고 통통한 볼로 빨간 멜빵바지를 즐겨 입는 꼬마였다. 많아봤자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되었을까. 그 무렵 나의 일상은 집 앞 성당 유치원과 신문의 TV 편성표를 줄줄 외워가며 틀어놨던 '테레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이마가 반질하고 얼굴은 번들거리는 쥐색 양복을 입은 박사님이 테레비에 나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예지몽처럼 일어날 일을 꿈으로 먼저 알기도 합니다.
태몽이 아주 흔한 경우죠. 꿈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뛰어들어오면 집안을 일으킬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예쁜 감이나 사과를 따는 꿈들은 대게 착하고 어여쁜 딸을 낳는다는 해몽이 있습니다.

컬러 TV 세대답게 아기 때부터 총천연색의 꿈을 꿨던 나로서는 이 대머리 박사님의 꿈 이야기가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다가왔다.

그렇구나, 태몽이란 게 있단 말이지.


기억해보니 내 위로 여섯 살 오빠의 태몽이 바로 그 집채만 한 호랑이였다고 들은 것 같았다. 아빠가 그 얘기를 하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집채만 한~대목에서 손을 크게 펴고 그 호랑이가 얼마나 컸는지를 묘사할 때의 생생한 재미가 생각났다. 그 얘기를 할 때 아빠의 으쓱한 젊고도 넓은 어깨와 힘이 들어간 손짓이 좋았다.


그렇다면 내 태몽은 뭐지? 내 태몽도 호랑인가? 호랑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용쯤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늘이 점지한 겨레와 나라를 구할 난세의 영웅? 엄청난 재능으로 지구를 구할 우주적인 인물? 나의 태몽 안에 담길 미래의 원대한 청사진이 궁금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나는 또래보다 영악했고 여덟 살 많은 언니와 여섯 살 많은 오빠 덕분으로 친구들보다 인생을 좀 안다고 생각했다. 유행가 가사가 꼭 내 얘기 같았다.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간드러지게 부르고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된다면 인생 정말 슬프겠다고 느꼈다. 뚜뚜루뚜루 뚜루루루.


그러니 내 미래를 예지 하는 태몽은 반드시 대단한 것이어야 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보면 내 추측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미 한글을 모두 마스터한 것은 물론이고 유치원에서도 나만큼 말 잘하는 애는 없었다. 엄마가 장사하는 남부시장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었다. 아무 나하고 말싸움을 해도 절대 지지 않았다. 내가 봐도 나는 미래가 촉망되는 똘똘이였다. 그렇다면 내 태몽엔 응당 봉황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내 태몽에는 용이나 호랑이가 없었다. 머리만 한 사과나 감, 포도도 없었다. 내 태몽은 고작 작은 고양이에 불과했다. 태몽 이야기에 잔뜩 부풀었던 일곱 살 마음은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가 나온 대목에서 이미 꺾여 있었다. 태몽에 고양이가 나왔다는 얘기가 '너는 호랑이가 될 수 없어. 넌 고작 작은 고양이의 삶을 살도록 이미 정해진 거야'란 말로 들렸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태몽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아빠는 그 고양이를 빗자루로 내쫓으며 잠에서 깼다고 했다. 분명히 빗자루를 들고 쫓았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그 고양이는 다시 아빠 다리를 베고 누웠다고도 했다.


고양이도 분한데 그 고양이는 아빠에게 환영도 받지 못했다. 환영은 카니 쫓겨났다. 그리고 자존심도 없이 다시 찾아가기까지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얘기였다. 아니 도대체 내가 왜, 뭐가 모자라서.

일곱 살 인생에 이토록 슬픈 얘기는 없었다.

인생의 첫 서사가 쫓겨나는 얘기라니.

하지만 정말 고양이처럼 눈치 빨랐던 아이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출생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이벤트였단 걸 단박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 당시 30대였던 엄마 아빠에겐 이미 여덟 살의 큰 딸과 여섯 살의 아들이 있었으므로 굳이 터울 긴 딸을 낳아 키워야 하는 긴박하거나 간절한 그 무엇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간혹 짓궂은 시장 아줌마들이 날 왜 낳았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큰 애 둘이 하도 싸워서 말릴 애가 필요했다고 웃었다. 엄마도 참, 내 인생의 소용 가치가 다 큰 애들 쌈 말리기란 말인가.


나는 억울했다. 내 인생의 의미가 쫓겨난 고양이라면 그 고양이를 나 스스로라도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특했던 일곱 살의 나는 미로 같은 아빠 서재에서 기어코 꿈 해몽 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꿈 보다 해몽 책 : 하얀 새끼 고양이 꿈은 태몽으로 알려져 있으며 행운과 복을 지닌 아이로 주로 딸 태몽입니다.

행운과 복을 지닌 아이. 호랑이나 구렁이, 용, 하다못해 잉어, 과일은 설명도 길고 뜻도 좋은데 고양이 태몽은 딱 두 줄에 딱 두 단어뿐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이 두 단어에 걸 수밖에 없었다. 행운과 복, 인생의 큰 대목마다 웃기게도 내 태몽 생각이 난다고 하면 진짜 웃긴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수능 시험을 칠 때도, 취직 시험을 칠 때도, 자격증을 딸 때도, 결혼을 할 때도, 내 아이를 가질 때도. 늘 그 꿈이 생각났다.


우주적인 인물은 될 수 없어도 나는 행운과 복을 지닌 아이야.라는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살다 보니 무릎이 푹푹 꺾이는 날들도 있었지만 마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행운과 복이 있는 아이니까.


아빠는 고양이 꿈이 오래 기억에 남으셨는지 내 이름에도 빗자루에 맞아 빠르게 도망쳤던 고양이의 이야기를 넣으셨다. 내 이름 가운데의 이름을 고양이처럼 '민첩할 민'으로 지으셨던 거다.


넌, 고양이처럼 민첩한 아이라고. 아빠가 붙여주셨던 도망가는 고양이 이름을 난 올해, 마흔 살에 스스로 떼 내었다.


이제 그만 민첩해도 된다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옥돌처럼 단단하고 여문 사람이 되라고 '옥돌 민'을 붙여주었다.


오늘 밤 꿈에는 그 고양이를 만났음 한다. 번쩍 안아 쓰다듬어 줄 나의 하얀 고양이. 꽃밭에서도 놀고, 풀밭에서도 뒹구르르 할 나의 고양이.


그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마루에 누워 해지는 노을 바라다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뚜뚜루뚜루 뚜루루루. 그렇다. 여전히 나는 인생을 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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