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사소한 것들이 만드는 불편함

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by JEN

길리는 상대적으로 발리와 비교했을 때 주거시설이 굉장히 열악한 편이다. 아무래도 무언가 짓기 위해서는 모든 물자를 본섬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본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건축비가 비싸고 퀄리티가 떨어진다. 게다가 현지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1~2년 정도 머무는 뜨내기들이 많다 보니, 큰돈을 들여 거주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것 같다.

인프라 역시 부족한데 전기도 자주 나가고 바닷물과 지하수 물이 섞여 짠물이 나오는 곳도 허다했다. 완전한 담수를 위해서는 길리 섬 내에 수도 회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역시 수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말도 안 되는 집들이 꽤 비싼 월세를 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발리에 와서는 길리와 비교해 모든 것이 아주 좋았다. 특히나 콸콸 나오는 온수로 샤워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유유자적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 끝나면 문 밑 틈으로 들어닥치는 빗물을 매번 닦아주었어야 했다.


온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따뜻한 물은 무제한 따뜻한 물이 아니다. 보통 발리의 온수는 온수 탱크에서부터 오는데 이 온수 탱크의 역할은 저장된 물을 예열시키고 탱크에 물이 다 사용되면 새로운 물을 다시 가열시키는 일을 한다. 만약 온수 탱크의 물을 완전히 다 사용했다면 탱크의 물이 다시 가열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5명이 함께 생활하는 빌라에서 모두가 함께 샤워를 시작한다면 앞선 한, 두 사람은 온수로 샤워할 수 있겠지만, 그 뒤로부터는 점점 물이 미지근해지고 마지막으로 샤워하는 사람은 결국 찬물로 샤워하게 된다. 함께 사는 곳에서 온수를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눈치가 필요했다.

사실 온수 탱크를 여러 개를 쓰거나 큰 용량을 쓰면 될 것 같은데 현지인들은 한국인들만큼이나 온수 샤워를 오래 그리고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현지인들의 기준에 맞춘 온수 설계는 한국인인 나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온수기 중에는 온수 탱크의 물이 다 소비되더라도 전기로 온수를 바로 데울 수 있는 즉시 가열식 온수기도 있는데 아무래도 이를 이용하면 전기 사용량이 많아질 것이고 컴퓨터 몇 대, 에어컨만 함께 돌려도 퓨즈가 내려가는 전력 상황에서 이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 그래서 또 전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 5명은 각각의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고 핸드폰, 카메라 등 사용하는 기기가 많았다. 게다가 관광의 목적이 아니어서 인지 집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아서 에어컨도 오래 켜 놓고 있는 편이었다. 우리의 전기 소모량이 많아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전기 퓨즈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퓨즈가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려도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를 반복했다. 당연히 퓨즈가 내려가면 에어컨을 켤 수도 선풍기를 켤 수도 핸드폰을 충전할 수도 없었고 정전이 오래되면 물 펌프 역시 작동하지 않아 물을 쓸 수도 없었다.

폭우가 내리치는 밤에 퓨즈가 내려간 어떤 날은 비를 쫄딱 맞으며 야외 퓨즈 박스와 집을 몇 번이 곤 왔다 갔다 해야 했다. 퓨즈를 다시 올리고서는 맘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제발 다시 내려가지 마라, 제발!‘


가끔은 집에서 버티다 못해 결국,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모든 기기를 들쳐없고 카페로 갔다. 발리는 에어컨 나오는 카페가 한정적인데 이 근방 에어컨 나오는 카페라면 내가 모르는 곳이 없었다.


집에서의 사소한 불편함은 생각보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작은 문제로 여겨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스트레스로 쌓였고 그것들이 반복되면, 집이라는 공간이 더는 편안함과 휴식을 주는 장소가 아닌, 피로감을 주는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 특히나 펜데믹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런 불편 함들이 더욱더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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