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처음 우리가 함께 산 빌라는 해변에서 가까웠고 소위 말하는 현재 가장 ‘핫’ 하다는 곳의 중심이었다. 계속 이곳에 살고 싶었지만 펜데믹으로 인해 다섯 명 모두 백수 신세가 된 우리는 지금 있는 곳보다 조금 더 저렴한 곳을 찾아 이사하기로 했다. 관광객이 들어올 수 없는 발리는 그동안 월세가 굉장히 저렴해졌는데 그럼에도 우리의 경제적 상황을 생각했을 때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최대한 우리는 예산 내의 집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조건들을 포기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수영장은 필요 없음에 동의했고 외국인보다는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 위주로 이사할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와중에 나는 서핑을 배우고 있어서 해변까지 오토바이로 2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다섯 명이 함께 집을 구하다 보니 원하는 바가 달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 배려를 잘한 덕분에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보았는데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저렴한 가격대의 집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시설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에어컨을 사용하려면 우리가 직접 설치를 해야 했고 부엌 도구 역시 열악했다. 최소한의 수리를 할 수 있겠지만 얼마나 이곳에서 살지 당장 확신할 수 없는데 돈을 들여 수리를 진행하는 것도 에어컨을 구입하는 것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았다. 또 어떤 집은 마음에 쏙 들었는데 당연히 대게 그런 집들은 예산이 맞지 않았다. 뭐랄까, 중간이란 게 없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외국인 기준에 맞는 집은 너무 비싸고 다소 저렴한 현지인들의 집은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몇몇 집들을 보러 다니던 중 드디어 현지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 위치는 우리가 지냈던 곳과 멀지 않았다. 해변까지 가까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토바이를 타고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서양인 가족들이 살던 집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본국으로 떠나 비어 있었던 집이었다. 발리 스타일의 멋진 빌라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깔끔하고 방도 충분했다. 모든 방엔 에어컨도 잘 설치되어 있었다. 오래 집이 비워져 있었을 텐데 꿉꿉하지 않았고 채광도 잘 들어왔다. 수압도 아주 훌륭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오는 집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본 비슷한 규모의 집 중에서는 가격이 가장 저렴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이곳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 첫날, 짐이 크게 많지 않아 이사에 어려움은 없었다. 대형마트에 들러 필요한 침구와 함께 먹을 식료품들을 구매했다. 이사를 하니 마치 또다시 시작되는 책의 새로운 챕터 같아서 마음이 설렜다. 하늘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 던 시간에 집에 도착했는데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거실에 창문을 열어 놓으니 금세 시원해졌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음악을 틀어놓고 빈백 소파에 누워서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만끽했다. 그리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이 작은 정원에서 우리의 이사를 자축하며 삼겹살을 구웠다. 집을 잘 구한 것 같다며 서로 칭찬하며 그렇게 하하 호호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알지 못한 채 첫날밤만큼은 참으로 배부르고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