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이사를 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해변으로 가기 위해 어플을 이용해 오토바이 택시를 불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기사 아저씨가 집 앞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대문 앞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토바이가 출발하려는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발리는 집을 지키는 용도로 집마다 한두 마리의 개들을 풀어놓고 기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개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더니 불쑥! 내가 탄 오토바이에 개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두, 세 마리 정도 됐는데 특히나 가장 앞에 있었던 개의 눈에서 나는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환히 드러난 잇몸 밑으로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보였고 개의 주둥이가 나의 종아리에 닿기 일보 직전, 갑자기 내 종아리에서 촉촉함을 느꼈다.
"내 다리에 코가 닿았어...!"
순간! 동시에 개의 입김 느껴졌는데, 오토바이 택시 아저씨는 속도를 올렸고 개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운전해 주신 아저씨는 개들이 유난하다며 자기도 오토바이 기사를 오래 했지만 이렇게 사납고 끈질긴 애들은 처음이라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나는 순간 얼음처럼 온몸이 굳었다. 하마터면 물렸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그 개의 얼굴과 송곳니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원래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개는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했다. 내가 어렸을 적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라서 목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에게는 이런 개들이 크나 큰 공포였다.
초등학교 당시 등굣길 중간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키우던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이 강아지는 아이들이 지나가면 항상 아이들 옆을 따라다니던 녀석이었다. 나는 이 강아지가 무서워서 골목에 숨어 강아지를 지켜보다가 다른 아이를 따라가면 눈치껏 그 길을 지나곤 했는데 하루는 그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당황한 나는 강아지를 피해 냅다 달렸고 당연히 강아지는 미친 듯이 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물리지는 않았지만 너무 놀란 나는 그 뒤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학교를 일부러 돌아 30분을 걸어 등교했다. 나의 개 공포증이 유독 심해지게 된 계기가 아마 이때부터 인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좀 나아졌는데 그래도 일단 으르렁 거리거나 짖는 강아지는 아직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발리에 와서도 항상 개들이 무서워서 골목길은 함부로 걸어서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는 쉽게 ‘개 일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짖는 개들은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발리에는 떠돌이 개들이 많다. 외국인들이 키우다 본인들 나라로 대려가지 못해 버려진 개들, 중성화 수술을 해 주지 않아 길거리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개들, 정부나 마을 단위에서 신경을 써주면 좋으련만 그게 또 쉽지 않나보다. 며칠 주변을 살펴보니 개들이 5-6마리 정도로 이웃집개와 떠돌이 개들이 함께 그룹 지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님께 집 앞 개들에 대해 여쭈어보았는데 아주머니께서는 집 대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전 주인이 살 때도 개들이 사납기도 했고 함부로 집으로 들어와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대소변을 아무 곳에나 해서 문제가 있었다고, 그래서 대문 아래의 틈을 개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철사로 다 메꿔 놓은 거라고 했다. 이 중 몇몇의 개는 이웃집에서 키우는 개인데 이전 집주인 역시 여러 번 항의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발리에서 이렇게 개를 풀어놓고 기르는 건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이웃은 이런 컴플레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주머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파르르 희망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함께 사는 다른 친구들은 개를 무서워하지 않아서 나 만큼이나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 노이로제가 있는 나에게는 죽일 듯 달려오는 개들은 참으로 공포스러웠다. 혼자서 배달 음식을 받으러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고 밖에 나갈 때마다 오토바이 택시가 아닌 자동차 택시를 불렀다. 그만큼 어쩔 수 없는 지출도 많아졌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온몸의 세포들이 곤두셨다. 내 냄새에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도 개들이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맞닥뜨릴 수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닌가, 왜 그동안 이런 개들이 있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엎친대 덮친 격으로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차가운 바람 대신 송풍만 나오기 시작했다. 집주인은 이것에 대해 조치를 취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에어컨 기술자를 불러 실외기 청소를 하고 프레온 가스를 충전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밖에 혼자 나가기도 불편하고, 집으로 들어올때마다 긴장해야하고, 돈은 돈대로 쓰고 집에 있자니 덥고! 답답하고! 짜증 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개에 대한 공포심은 나날이 커져갔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온몸이 굳고 몸이 덜덜 떨렸다. 어깨와 목을 이어주는 근육이 단단하게 경직되고 이렇게 근육이 뻣뻣해지고 나면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집에 있는 것도 불편하고 집 밖을 나가는 것도 불편해진 나는 더 이상은 이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달을 체 채우지 못하고 나는 룸메이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새로운 집을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