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꿀도둑과 계란도둑 (2)

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by JEN

계 란 도 둑

어느 날은 냉장고에 놔두었던 계란이 하나, 둘 씩 사라졌다. 처음에는 눈에 띄게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역시나 내가 착각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낌새가 이상했고 그 후로는 계란 개수를 세어 놓기 시작했다. 계란을 세면서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하루는 계란 두 알을 남겨 놓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다음날 냉장고를 열어보니 계란이 전부 사라졌있었다. 그동안 20구의 계란이 있었을 때는 티가 나지 않아 몰랐는데 두 알 밖에 남지 않은 계란이 전부 사라지니 다시 한번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이렇게 티 나게 내 계란을 훔치고 있는 이 범인은 용의주도하지 못하거나 나를 굉장히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몇 백 원 밖에 하지 않은 계란 한 알이지만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꼭 찾아야겠다 싶었다. 꿀도둑 때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


나는 홈스테이에 요구해 CCTV를 보여달라고 했다. 매니저가 CCTV를 확인 후 드디어 계란 도둑을 찾았다. 그 도둑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남자였다.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서양인 남성이었는데 첫인상부터 뭔가 이상했다. 잠깐 인사를 나누었는데 말투가 어눌했고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으며 간단한 질문에도 동문서답을 했다. 약에 취한 것 같이 눈빛이 몽롱했고 오래 씻지 않았는지 몸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몰랐을까, 이 사람 하고는 직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를 음침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란을 넣어 둔 박스에 쪽지를 남겼다.

이 계란은 공용 음식이 아닙니다. 제 계란을 먹지 마세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CCTV를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계란 박스를 확인해 보니

"I'm so sorry, I was forgot"이라는 쪽지가 와 있었다. 이 쪽지를 받아보니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를 잊었다는 건가? 내 계란을 훔친 것을? 아니면 훔쳐먹었는데 다시 사다 놓는다는 것을?

그 후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계란이 아니었다. 그는 야채를 제외한 모든 음식은 다 훔쳐 먹기 시작했다. 냉동실에 넣어놓은 치킨 너겟, 소시지, 치즈 등 단백질이란 단백질은 다 훔쳐 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사람, 정신적으로 어딘가 아픈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 직접 대면하고 싶지 않아 홈스테이 측에 컴플레인을 걸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 짙은 다크 서클, 풀린 눈, 흐느적거리는 몸 짓,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영어, 그는 가끔은 내 뒤를 쫓아오기도 했는데 나는 이 모든 모습이 너무나 공포스러워 매번 그 사람을 피해 다녀야 했다.

도대체 잘못 한 사람은 그 사람인데 내가 내 집에서 이렇게 눈치를 보며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할까?


그 뒤로 나는 홈스테이에서 요리하는 것을 그만두고 더 이상 식재료를 사다 놓지 않았다. 몇 번이나 홈스테이에 매니저에게 불편을 호소했는데 홈스테이 측에서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어찌 되었든 월세만 꼬박꼬박 받으면 그만 인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유난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아 나 혼자 열불이 날 뿐이었다.

펜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 월세 한번 밀린 적 없었고 어떤 잡음도 일으킨 적이 없었다. 1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았는데 이런 대응이 서운하기도 했다. 몇 달 후 결국 이 사람도 이사를 나갔다. 이후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생활이 진절머리가 났다.


온전히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고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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