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꿀도둑과 계란도둑 (1)

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by JEN

꿀 도 둑

내 꿀을 누군가 몰래 먹고 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큰 일은 아닐 수도 있는데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다. 만약 허락을 구했다면 어차피 먹지 않는 꿀 한 병쯤이야, 흔쾌히 그 친구에게 건네어줄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나 몰래 내 이름이 적힌 박스에서 몇 번이나 꿀을 꺼내 먹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기가 찼다. 심지어 함께 부엌을 셰어했던 이웃들 모두 잘 지내고 있었던 터라 누군가 내 뒤에서 웃으며 내 꿀을 훔쳐 먹었을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패키지가 귀여워 당시 사진을 찍어 놓았다. 인도네시아는 수입품이 비싼 편인데 용량 대비 가격이 꽤 나갔던 꿀

하루는 서둘러 밖을 나가려는데 옆 방에 살고 있는 여자애가 나한테 환하게 인사를 했다. 나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는데 무언가 깜박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랐는데 계단을 한 발 오르자, 옆집 애의 신발만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발목과 무릎이 보였고, 몇 걸음 더 나아가자 그 애 뒤편으로 부엌의 플라스틱 보관함이 보였다. 마지막 계단에 다다를 즈음엔 그 여자애가 내 꿀을, 본인 그릇에 쭈욱 짜고, 다시 쓰윽- 내 박스에 넣어 두는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이 모습이 펼쳐졌고 내가 그 애 옆에 서 있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던 터라 그 여자애는 본인이 꿀을 훔쳐먹는 것을 내가 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를 보자마자 태연하게 웃으며 '다시 돌아왔네? 뭐 놓고 왔어?'라며 말을 걸었다.

순간 그 자리에서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급한 일이 있어 빨리 나가봐야 했고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머릿속에서는 내가 본 것이 맞는지, 내가 괜한 사람을 의심하는 건 아닌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고작 꿀 하나 때문에 얼굴 붉히기 싫었던 나는 조용히 부엌으로 가 꿀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꿀을 치웠다는 것을 알면 옆집 여자애도 내가 알아차렸음을 알고 조심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는 홈스테이를 떠났다.




그 후로 나는 내 물건마다 이름을 크게 써 놓았고, 이름과 방 호수가 대문짝만 하게 적힌 플라스틱 박스에

‘Don't use my stuff(제 물건을 쓰지 마세요)’

라는 경고문을 붙여 두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용 부엌에서는 여전히 사소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프라이팬을 허락 없이 꺼내 쓰고 설거지를 해두지 않거나, 작은 식재료들이 자꾸 없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나의 개인용 도마와 칼을 함부로 쓰고 게다가 뒷정리도 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이름을 적어두고 안 적어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기본적인 도덕성의 문제였다. 그 외에도 비오는 날 말리려고 널어 논 우비가 사라진다거나, 오토바이 헬멧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나는 더 이상 공용 공간에 내 물건들을 놓지 않기로 했다. 나의 개인 식기구 및 조리도구 및 모든 물건들은 방 안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가지고 와서 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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