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I에겐 공용 부엌은 어려워

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by JEN

내가 살 던 홈스테이는 발리에서 보기 드문 4층 짜리 건물이었다. 한 층에는 복도식으로 다섯 개의 방이 있고 다섯 개의 방마다 셰어하는 부엌이 있었다. 공용 부엌에는 간단한 조리도구, 냉장고, 가스레인지가 구비되어 있었고 각 방마다 본인의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 플라스틱 박스가 있어 각종 조미료나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식품들을 이곳에 보관했다. 그리고 냉장고는 공용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물건에 포스트잇을 붙여 보관했다.

부엌이 갖춰지지 않은 홈스테이도 많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부엌을 셰어 하는 경우도 많이 봐 와서 우리 홈스테이는 이 정도면 충분히 쾌적한 편이었다.

공용 부엌은 사방이 트인 야외에 있었는데, 이 야외 부엌이 나쁘지 않았다. 3층에 위치한 내 방은 뷰가 좋아서 이 뷰를 보면서 요리를 하면 마음이 금세 즐거워졌다. 가끔 한식을 해 먹었는데 환풍구가 없어도 냄새가 금방 빠져 이웃들 눈치가 덜 보였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가스불이 잘 켜지지 않거나 약해져 라면물 하나 끓이기도 쉽지 않았고 비바람이 부는 날엔 아예 요리를 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날이 너무 뜨거운 날엔 계란 프라이 하나를 굽는데 땀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야 핬다. 또한 음식물이 있으면 금세 날파리와 개미가 생겼고 간혹 쥐 나 고양이들이 부엌을 어지럽히는 것을 보고 부엌은 집 안쪽에 있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공용 부엌을 사용하는 동안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인 나로서는 사소한 것들이 많이 신경 쓰였다. 요리할 때 누군가가 지나가거나 말을 걸면, 예의상 같이 먹을 건지 권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느껴졌다. 특히 한국 요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쯤은 함께 한국 요리를 같이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엔 기쁜 마음으로 이웃들과 함께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해서 함께 먹기도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공용 부엌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이웃들과 마주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이나 대화가 어색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눈치를 보다가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려 재빠르게 나가 요리를 한 후, 음식을 들고 방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스틱 박스에 보관해 둔 식재료들을 정리하다가, 이전에 사둔 작은 꿀 한 병을 발견했다. 그런데 꿀의 양이 조금 줄어든 것이 눈에 띄었다. 요거트 그레놀라에 뿌려 먹을 생각으로 사둔 꿀이었는데 한 번 먹고는 몇 달 내내 잊고 있었던 꿀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착각했나? 싶어 다시 꿀을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확인해 보니 꿀이 확실히, 그것도 많이 줄어 있었다. 한번 정도 먹었던 꿀이 반 넘게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 내 꿀을 훔쳐 먹고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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