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살이 8년 차, 사실 한국을 떠나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는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주거환경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바다 위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은 다이빙 센터 사무실에서 보냈다. 식사는 대부분 밖에서 해결했고 집에서는 가끔 라면 정도 끓여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눈을 붙일 수 는있 곳이 라면 어디든 괜찮다고 생각했고 태생이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아 동남아 살이에 적격이었다. 더욱이 언제든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주거 환경이 열악해도 참고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언제까지나 세계 곳곳의 바다를 떠돌며 어디에 서든 살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런데, 나이 탓일까? 30대 중반이 지나니 이런 모텔방 같은 곳에 사는 게 싫어졌다. 예쁜 가구도 사고, 취향대로 집도 꾸미고, 김치찌개도 보글보글 끓여 먹을 수 있는, 진정한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처음으로 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발리에 온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섬과 섬간의 봉쇄는 풀렸지만 그래도 코로나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발리에 있는 동안 어느 날은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감염자 수가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는 소식이 몇 번에 걸쳐 들려왔다. 해변이 봉쇄되는 기간도 있었고 주변 식당들의 영업시간도 수시로 조정되었다.
함께 길리에서 발리로 건너온 친구들도 언제까지나 백수로 코로나가 끝나기 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이제는 각자 갈 길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렇게 함께 일했던 썬 강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 인도네시아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몇은 다시 길리로 돌아가 다이빙 샵을 지키기로 했다. 나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혹은 나중에 다시 길리로 돌아가던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는 발리에 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결정하게 된 이상 나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었다.
그동안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었던 인도네시아어 공부를 조금 더 심도 있게 하고 싶어졌다. 태국에 3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이곳에 있을수록 언어, 문화, 종교, 모든 것이 알고 싶어졌다.
만약 발리에 사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곳의 언어를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발리에 있는 대학교에 외국인들을 위한 어학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의해 보니 나 말고도 몇 명의 학생이 더 있었다. 외국인들이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모인 만큼 모든 학생들이 모두 동의한다면 코로나 기간이지만 예외로 오프라인 수업을 열어 주기로, 학교 측에서 배려를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도네시아에서 10년 만에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