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상 벌레와의 사투

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by JEN

새로 찾은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마음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 이 홈스테이도 발리의 여느 집들과 품질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불편하다고 느꼈던 여러 가지 것들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더 이상 개에게 물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그 모든 불편한 부분을 상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니 누군 '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것, 더 이상 개 짖는 소리에 곤두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마음이 편하니 몸의 피로감도 사라지고 짜증을 내는 횟수도 줄었다.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백번, 천 번 들었다.

이사를 마치고 얼마 안 돼 친구들이 나를 보러 내가 사는 동네로 오기로 했다. 기분 좋게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했는데 입술 아랫부분 턱이 욱신욱신 쓰라렸다. 거울을 보니 턱 주변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턱에 여드름이 올라오려나? 자다가 어디에 쓸렸나?라고 생각했고 별생각 없이 나갈 준비를 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 마스크를 챙겼다.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동시에 내가 구한 집에서 다들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턱 주변에서 불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내 이런 비슷한 통증이 볼, 눈두덩이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살짝 보았는데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결국 친구들에게 몸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먼저 카페를 나왔다.




얼굴은 처참했다. 너무 흉해 차마 부모님께도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아마 내 얼굴을 보셨으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을게 뻔하다. 처음엔 벌레에 물린 건가 싶었는데 상처의 모양이 물린 자국은 아니었다. 마치 화상을 입은 것 같은 상처가 얼굴 곳곳에 산재해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상처 부분에 하얗게 수포가 생기더니 고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턱 아래를 시작으로 볼 그리고 눈 위까지 삼발적으로 상처가 생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통이 심해졌다. 단순한 쓰라림을 넘어서 타는 듯한 통증 때문에 정말이지 매일 밤 잠을 설쳤다. 가장 가까운 현지 약국에 가서 상처를 보여주니 모든 것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끄덕이며 '톰켓‘이라는 벌레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는 연고를 주시며 당분간은 통증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톰켓’을 구글에 검색해 보니 ‘아! 이 벌레는!’ 본 적이 있는 벌레였다. 개미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몸통 색이 검은색과 주황색 띠가 교차하고 있어서 ‘특이한 개미네?’라고 생각하며 잡았던 게 기억이 난다. 조금 더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 화상벌레라고 불리는 이 벌레는 몸통에는 페데린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어 피부에 닿으면 화상처럼 붉은 자국과 물집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벌레가 스치기만 해도 피부에 상처가 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벌레를 잡는 과정에서 휴지나 손을 통해 독성 물질이 닿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자는 동안 화상벌레가 내 얼굴을 지나갔거나. 상처 부위와 통증은 꽤 오래갔다. 2주 동안 열심히 약을 발랐고 얼굴의 붉은 기는 꼬박 한 달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흉이 질까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호된 화상벌레 신고식을 맞히고는 또 이사를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리 낸 월세를 되돌려 받을 수 없어 일단은 살아보기로 했다. - 인도네시아는 일단 돈이 지불되고 나서는 어떤 이유에서는 환불받기가 어렵다-

발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풍의 목적으로 뚫어 놓은 구멍(?), 방충망 없이 뚫어 놓기만 한 경우가 많아 이 곳으로 각종 벌레가 들어 올 수 있다.

화상벌레는 보통 습하고 따뜻한 환경을 선호하며 논, 강가처럼 습기가 많은 곳에 서식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집 앞에 논의 면적이 크고 길과 맞닿아 있어서 불빛이 항상 있는 우리 홈스테이로 벌레들이 모여들지 않나 싶었다.

논과 바로 맞닿은 홈스테이, 밤이 되고 전등이 켜지면 벌레들이 밝은 곳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일단 집에 모든 벽과 바닥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리고 침대 역시 모든 커버를 벗겨 샅샅이 살폈다. 또한 발리의 집들은 환풍의 목적으로 통풍구를 뚫어 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뚫린 곳을 종이를 이용해 막았고 문틈도 수건으로 막아놓았다. 그 후로는 마치 루틴처럼 매일 자기 전에 침대 위와 벽을 확인했다. 자는 도중에 피부에 무언가가 기어 다닌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소스라치게 놀라 불을 켜고 자는 자리를 몇번이나 확인했다.

오픈되고 뚫린 곳이 많아 들어오는 벌레를 100% 막는 건 어려웠다.


"휴, 이번엔 벌레가 난리야?"


헛웃음이 나왔다. 다행이게도 얘내들이 번식하는 시즌이 있는지 그 시즌을 지나니 벌레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즌이 지나 화상벌레들이 안 보이면 또 당분간은 잊고 살았다. 그렇게 이곳에 사는 동안 난 몇 번이나 더 화상벌레에게 당하고 잊고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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