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만난 <집에 대한 이야기>
새로 이사 온 곳에서 지낸 지도 어느덧 몇 달이 흘렀다. 처음엔 화상 벌레에게 호되게 당해서 이사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화상벌레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엔 여전히 불안함으로 남아 있었지만 매일 학교를 다니면서 새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곳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바로 이 집의 최대 장점인 드넓은 논 뷰! 아침이면 싱그러운 초록빛 논이 햇살에 반짝이고 저녁 무렵엔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언제나 장관을 선사했다.
집 앞 논은 실제로 벼를 재배하는 곳이었다. 가끔가다 아주머니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 농촌의 모습이 떠올라 정겨웠다. 이런 풍경 속에서 금빛으로 여물어가는 논을 보면 마음이 참 평온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뿐이었다. 발리는 1년 내내 따뜻한 기후 덕분에 일 년에 2-3번 정도 벼를 수확할 수 있다. 그래서 벼를 수확한 후에도 곧바로 새로운 농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수확시기가 결코 반갑지 많은 않았다.
발리는 한낮이 뜨겁다 보니 이렇게 바깥에서 하는 작업은 동트기 전부터 서둘러 일을 시작한다. 문제는 벼를 수확할 때 기계에서 오는 소음 때문에 아침잠을 항상 설쳐야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수확하고 난 뒤의 작업 중 하나인 ‘논두렁이 태우기’였다.
‘논두렁이 태우기‘는 농부들은 수확을 끝난 후, 논에 남은 벼 찌꺼기나 잡초, 그리고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논두렁을 태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논두렁을 태우면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데 유리했지만 큰 단점이 있었다. 바로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였다. 논을 태울 때 나오는 연기는 주변 공기를 탁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코를 찌르는 타는 냄새로 인해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기도 했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홈스테이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날에는 이 모든 연기가 내 방, 홈스테이 전체를 뒤덮었다. 침대, 옷, 커튼 할 것 없이 온 방에 훈연 향이 베어 머리를 아프게 했고 눈에선 눈물이 났다. 연기에 밴 냄새가 어찌나 강한지 밖에 걸어 놓은 옷은 다시 세탁을 했어야 했다. 이런 날에는 참지 못하고 주변 카페로 피신을 하곤 했는데 집에 돌아와 방을 열었을 때 방안 가득 나는 탄내는 다시 한번 나를 불쾌하게 했다.
실재 발리에 살아보니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한 것들에는 항상 그에 따른 불편함이 따랐다.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쫓겨나듯 카페로 피신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지겨웠다. 무엇보다도 발리에 정착할 생각이라면 가장 먼저 일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주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