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려서 완벽했던 순간
사람들은 어딘가 떠날 때 그날의 하늘은 화창하길 바란다.
날이 흐리다면, 비가 내린다면, 기대에 가득 찬 떠날 때에 기분이 가라앉을까 봐.
내가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며 나를 맞아주었다.
거세게 몰아지는 빗방울이 땅을 적시고,
그 땅에 비치는 도시의 모습,
그리고 빗방울에 파동을 일으키는 땅위에 반사된 도시.
날이 맑았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단 생각 보다.
날이 흐렸기에 더 좋았던 그 순간.
그 흐린 날에 좋았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청춘 일탈> 저자 Kyo H Nam
뉴욕에서의 10일을 보내고 2번째로 향한 도시는 시카고였다.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는 뭉글뭉글한 구름들이 하늘에 얕게 내려앉는 맑은 날씨였다. 30일이라는 장기 여행이기에 거대한 케리어 가방을 체크인하고, 비행 탑승시간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JFK공항의 모습을 잠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처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과 출장을 떠나는 사람들 등등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내 시선을 끌었다. 비행시간이 다 되어 비행기 안으로 탑승하고 시카고로 향하는 기체는 땅에서 날아올랐다.
뉴욕에서 시카고까지의 비행시간은 몇 시간 안되었지만 오후 5시에 이륙한 비행기는 시카고 시간으로 7시가 조금 넘어서 시카고 공항에 착륙하게 되었다. 이미 어둑한 밤이었고 하늘에서는 굵은 빗줄기가 내리며 땅을 적시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시카고스러운 차가운 기온이 나를 애워싸았다. 숙소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타 창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시카고 풍경에 감성에 젓는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미 시간은 8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추운 날씨와 고된 여행에서의 일정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비가추적추적 내리는 날,
나는 운치가 느껴지는 시카고를 만났다.
낭만에 파동 치며, 빗방울에 출렁이며,
운치에 취하며 시카고가 나를 맞이했다.
시카고에서 첫 번째 아침을 맞이했다. 미국 북쪽 끝에 위치한 도시였기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이불 밖으로 쉽게 나서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카고에서의 첫날에 늦장을 부릴 수는 없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문밖을 나서자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고 전날 비로 거리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도시를 여행할 때, 특히 대도시를 여행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나는 시카고 전철을 타고 도시 중심부로 들어섰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미리 계획을 정해두지 않는다. 그날의 분위기와 내 마음과 걸음이 이끄는 곳으로 찾아간다. 이 날 시카고의 흐린 날씨와 도시의 분위기는 내 걸음을 건축물 앞으로 이끌었다. 도시 안에 가득한 가지각색의 건축물들은 전날의 비로 차가우면서 무거운 느낌이 물들어 있었다. 일정한 균열, 칸, 높이, 선,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구조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정교함과 친환경적인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차갑게 보이는 건축물의 내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삼장이 뛰고 있다. 왜 시카고 도시를 건축의 도시라 불리는지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흐린 날씨 곳에서도 내 시선을 통해 뚜렷하게 전달된다.
나의 걸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거리를 나아가자 시카고의 상징인 밀레니엄 공원과 마주하게 되었다. 밀레니엄 공원에는 시카고의 상징적 설치 미술품인 Cloud Gate가 위치해 있다. 은색의 부드러운 선으로 둥글게 만들어져 있는 Cloud Gate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은색 콩의 모습과 비슷하다. 수많은 대중들은 이 설치 미술을 콩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카고를 찾는 여행객과 관광객들이 꼭 찾는 시카고의 랜드 마크로 CloudeGate는 항상 손꼽힌다. 도시의 모습이 겉표면으로 거울처럼 반사되고 표면의 부드러운 굴곡으로 반사되는 풍경에 굴곡이 생겨난다. 마치 제2의 세계가 Cloud Gate를 통해 보이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밀레니엄 공원을 나와 이번엔 시카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카고 강을 따라 걷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한강 같은 느낌이지만 시카고스러운 느낌이 가득하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위로 관광 보트가 틈틈이 강 위를 가로지르고 그 위로 운치 있는 다리들이 이어져 있었다. 강을 애워싼 거대한 고층 건물들의 모습에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무겁게 내려앉는 구름과 전날의 비로 한층 더 시카고 건축의 미가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나를 감탄하게 했지만 한 가지 날 힘들게 만든 건 추위였다. 이미 아침부터 오후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동안 밖에서 걸었기에 휴식이 필요했다. 하늘에서는 어느덧 보슬비가 내기고 있었다. 나는 고층 건물 로비에 있는 커피점에서 시카고의 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구름은 밤이 될수록 더욱더 무거워지며 도시에 내려앉고 있었다.
시카고의 건축물은 구름의 무게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공기는 더 차가워지고 시야는 좁아진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관광객은 이날에 한숨을 내쉰다.
나는 이 도시에 운치를 느낀다.
스멀스멀 시카고 도시의 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거리 가로등에 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축축한 땅위로 빛들이 인사한다. 날이 더 어두워질수록 땅 위로 빛은 진하게 스며든다. 사람들이 하루를 끝나는 시간에 도시는 숨결은 살아난다.
시카고 거리 조명은 대부분 붉은 조명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왜일까? 아마 북쪽 끝에 위치하고 거대한 미시간 호수가 도시 옆으로 고여 있기에 시카고는 여름보다 겨울이 긴 도시여서 있지 않을까? 따스하고 붉은 조명으로 차가운 공기에 따스함을 담아서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밤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에 온기를 전해주려는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늘 위로는 높은 건축물에 꼭대기에서 빛나는 조명과 전광판 빛들이 대도시의 느낌을 물신 내뿜고 있었다. 하늘 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에 빛은 수채화처럼 퍼져나간다. 공기에 빛이 스며드는 게 두 눈으로 확인된다.
하늘에 완벽한 어둠이 찾아오고 날씨는 더욱더 싸늘해졌다. 나는 오늘 일정의 마지막으로 도시의 모습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기로 결정짓고 존 핸콕 빌딩으로 행했다. 존 핸콕 빌딩은 시카고를 상징하는 빌딩 중 하나이다. 빙딩 꼭대기에는 전면이 유리로 된 장소에서 도시의 멋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존 핸콕 빌딩 안으로 들어와 스카이라운지로 입장하는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하려고 했을 때 건물 직원은 내게 오늘 날씨가 흐려서 도시의 풍경을 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대신 라운지보다 조금 아래층에 위치한 바가 있으니 그곳을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나는 라운지로 향하는 입구를 나와 바가 있는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고급진 장식들로 가득한 라운지 바에 들어섰다.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맥주 한잔을 시키고 창문을 바라봤다.
흐린 날씨 속에도 도시의 모습은 뚜렷했다. 땅위로 붉은 가로등 조명들이 빛났고 건물 안에서는 푸르른 색의 빛들이 밖으로 세어 나오고 있었다. 맥주 한잔 치고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아깝지 않은 한잔의 맥주였다. 늦은 밤 고층 라운지 바에서 홀로 맥주 한잔과 어두운 밤에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를 옆에 두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앞으로 시카고는 내게 어떤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해줄지 기대가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