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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나요?

준비됐어요!

by 교주

바다처럼 넓은 아마존 강을 배로 가로질러 깊은 정글 속 “호텔”에 당도하였다. 광활해 보이는 아마존은 북적이는 관광객들을 모두 품고도 남는 충분한 여유를 보였다. 가이드는 다음 활동으로 두 시간 정도 걸어서 정글 탐험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 이미 포기한 채 친구들에게 재미있게 다녀오라고 눈짓을 했다. 그때 가이드는 뜻밖의 제안! 걷기 힘든 나에게 배로 물에 잠겨 있는 밀림 속을 누비며 노를 젓게 해 주겠다고 했다. 노젓기! 물에 잠긴 밀림! 훨씬 매력적이다.


아마존의 물에 발을 담그고 서있는 나무 숲사이를 배를 타고 누비며 아마존의 생명체를 찾아보았다. 나무 위에 몸을 걸치고 겨우 등만 빼꼼히 보여주며 넉넉한 오후를 즐기는 뱀. 누가 세상에서 제일 느린 생명체라고 했나? 다가가자 믿을 수 없는 속력으로 몸을 숨기는 스피디 나무늘보. 아마존의 최고 마스코트인양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눈을 껌벅이며 오히려 나를 쳐다보는 이구아나. 민물에 살고 있는 희귀종이란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뚱뚱보 분홍 돌고래!


보물찾기 마냥 나무 숲사이에 보호색으로 무장한 그들을 찾는 것은 원주민의 눈을 빌리지 않고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투시경 같은 원주민의 눈을 대동해도 운이 따르지 않는 날엔 수줍게 숨어있는 그들을 볼 기회조차 없다. 즐거웠다. 하지만 TV나 다른 곳에서 이미 본 친구들이라 별반 아마존의 특별함은 없었다. 그런데 나를 매료시킨 아마존만의 새로움이 있었다. 바로 그 넓은 아마존을 덮고 있는 고요함이었다.


나는 고요함 속에서 아마존의 과거를 상상했다. "첨벙 푸두두!" 앞으로 가기 위해 젓는 노에 밀려나는 물소리와 적막을 깨며 "똑 똑!" 노를 들어 올릴 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나를 느꼈다. 아마존의 고요함은 나에게 행복함과 만족감으로 감싸 안았다. 갑자기 “나는 글 쓰는 사람이야”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내 머릿속을 흔들었다. 나는 30여 년이 넘게 "말"로 살아왔기에 “글"로 표현되는 정체성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학교 때 나는 옆 짝꿍이 늘 어려웠다. 그 아이는 뭔가 조신한 여성의 모습으로 날 압도했고, 가끔 배시시 웃으며 나에게 던지는 단어들이 생소했기에 그때부터 나는 이미 내 어휘력에 미숙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글"과는 거리를 두었다. 대학 때 알고 지내던 한 남사친이 나보고 "글"로 세상을 일깨우는 일을 해야 한다며 비장하게 말했다. 나는 당시 "나는 어휘가 적어 소설을 못써"라고 했다. 그는 소설 말고 연구논문도 세상을 바꾸는 글이라며 내가 별로 공감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살 것인가 생각하며 분주했었다. 그 당시 노매드랜드(Nomadland)라는 영화가 한참 유행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노매드랜드"라는 영화제목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졌다. 한 영화비평을 찾아 읽었는데 매우 쉬우면서도 전문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글에 매료되어 출처를 알아보았다. "브런치"였다. 브런치? 나도 바로 작가신청을 했다. 몇 개의 글을 올리며 그날 나는 "내가 정년 후의 삶이 바로 이거야!" 하며 흥분해 소리를 질렀다.


브런치로 정년 준비를 시작한 후에도 강의로 바빠지자 글을 올리는 날이 들쑥날쑥 해졌고 간격도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자 글 올리는 것이 완전히 중지되었다. 용두사미를 용납하지 못하는 나는 덮어두었던 브런치를 1년 반 만에 열었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겠다고 새로 마음을 다졌다. 글쓰기 훈련을 하는 마음으로 나는 들썩이는 나를 주말마다 컴퓨터 앞에 잡아두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던 글쓰기 훈련이 2년 정도 지나자 처음으로 글 쓰는 것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재미를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나의 정체성은 "글 쓰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 나는 정년 후 새로운 인생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도구가 완성되었다. 나의 목표는 바로 내가 30년이 넘게 대학강단에서 "특수교육"을 강의하며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말을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다.


일반교사들과는 달리 특수교사에게는 학교 내에서 장애학생을 교육하는 일은 그들 임무의 50%에 해당한다. 그들이 잘 가르친 장애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어울려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도록 일반시민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알려주고 인식개선을 시키는 일인 나머지 50%까지 임무를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일을 다 해야 "좋은 교사"라고 늘 강조해 왔다. 이제 나도 시민교육의 임무를 향할 준비가 된 것이다.


과거에 부족한 어휘력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했던 나의 미숙한 생각이 글쓰기 훈련을 통해 바뀌었다. 많은 사람에게 특수교육이 장애아동들 뿐만 아니라 비장애 자녀들의 교육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용되는지 쉽게 설명하고, 장애인이 우리의 이웃임을 알리는 올바른 정보를 주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브런치는 이런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둘도 없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어휘들을 사용해서만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해 진솔하게 쓰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나누고 감동을 주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브런치로 이끌어 준 “노매드랜드” 영화비평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며 나의 글의 통해 또 어느 누군가가 글쓰기에 도전하고 그들의 삶을 나눌 용기가 생긴다면 그것은 나의 목표달성을 초과해서 얻는 나의 또 다른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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